욕망의 끝과 맹세에 대한 약속

입력 2016-06-21 13:37 수정 2016-08-02 17:48
미녀가 제출한 「이렇게 하겠습니다」는 봉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내가 보지 않는 것은 실망하지 않고 부담감만 주면 족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진시황」을 닮기 마련 아닌가?

공선생이 내놓은 봉투도 그렇게 했다. 보지 않을 「맹세서?」를 왜 받느냐고 할지 모르나 말로만 하고 그치는 것과는 삶에 있어서 천양지차가 잇는 법이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잘 되면 10%는 내놓겠습니다.」하는 각서는 수없이 받았고 그 금액은 1000억원도 없었지만 부질없었다.

잘안된 경우도 있었지만 잘 되면 한결 같이 「언제 봤느냐」였다.

끊임없이 팽(烹)당하는 인생이 되면서 인연을 맺지 말아야 겠다와 억울?함을 되갚아 줄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내게 잘 하겠다며 가져간 운명에 대한 지혜는 배신할 경우 거의 반드시 병 또는 몰락으로 이어졌다.

큰 회사의 경우는 혈족의 혈투, 정신 병원 입원, 감옥행, 몰락 등의 결과를 나타냈다.

「저 회사는, 저 친구는,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새벽부터 밤까지의 대부분을 기도하며 지냈다.

더불어 잘 사는, 세계에서 일등하는 대한민국이 되게 해 달라고, 국민은 바르고 건강하게 살고 해외로 끊임없이 뻗어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다만 악행을 일삼고 낯을 감언이설로 녹여먹고 함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오래 살면서 큰 아픔 속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공선생은 이러한 나의 일상을 잘 알고 있었고 「무섭다」는 표현을 써왔다.

언젠가 공선생이 「무섭다」고 했을 때 <왜 도망가지 않느냐?>고 하자 「오금이 저려서 도망 못가겠다.」고 했다.

공선생은 내 옆에서 오사장의 회사 잘 돼가는 과정을 지켜봐왔고 가정이 행복함 속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정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해 왔으며 지금 그 첫 단추를 꿸 시기에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공선생은 10년이 넘도록 한결 같은 자세로 내 옆에 머물러 오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을미년 청명이 지나고 부터 공선생은 날마다 기강원엘 드나들었다.

거의 기강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기도에 매달렸다.

"제 손주지만 사회에 내 놓겠습니다. 사람으로써, 한국과 국민을 위해 큰 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면 태어나자 마자 데려가 주십시오."

공선생의 기도가 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정성을 보탰다.

드디어 공선생의 손주가 태어났다.

곡우, 아침 8시에 유도분만을 통해 잘생긴 아들을 낳은 소선은 다음 날 부터 걸어다닐만큼 건강했다.

 

공선생의 손주는 을미(乙未)년, 경진(庚辰)월, 병인(丙寅)일, 임진(壬辰)시, 대운 5의 명이었다.

공선생의 기도가 통했을까?

천하대격(天下大格)의 손주를 얻은 공선생은 기쁜 표정보다는 정중하고 엄숙한 얼굴이 됐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한정희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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