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실행이야, 이 바보야

입력 2012-05-28 10:36 수정 2014-02-17 22:56


















‘Ignore us. Ignore human rights.'라는 카피를 단 국제인권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세계적인 인권보장을 위한 광고포스터 중의 하나이다. 광고물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흑인 아이가 사정없이 매를 맞고 있는데, 백인들을 위주로 한 주위 사람들은 눈을 돌리고 외면하고 있다. 시리즈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탈레반이 반혁명분자라고 해서 사람을 총살시키는 장면이 이어진다. 역시 주위의 사람들은 애써 총살 장면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를 무시하세요. 인권을 무시하세요.‘라고 직역할 수 있는 카피는 좀 의역하면 ’당신의 외면이 인권의 무시를 가져옵니다.‘ 식으로 될 수도 있겠다.




특정의제나 사건에 대한 무시나 외면은 많은 경우, 그것을 저지른 사람 특히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인들에게는 암묵적인 동의로 이해되는 수가 많다. 그것을 정치적 수사로 가장 잘 표현하고 이용한 이가 바로 리처드 닉슨이었다.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란 표현으로 그는 조용히 있었던 이들을 실제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지지자로 포장을 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그렇게 표현했던 이들이 계속 침묵하기를 원했다. 단지 자신에게 표를 던질 때만 침묵을 아주 제한적으로 깨주기만을 원했다. 그런 제한적인 의사표현과 행동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90년대 후반 아니면 200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미군TV방송(AFN)에서 본 광고였다. 어느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세면대 주위에 몰려들어 한 마디씩 한다. ’저것을 어째!‘, ’누가 저렇게 한 거지?‘, ’고장났나봐?‘ ’사람을 불러야 하는 것 아냐?‘ 등등. 한 젊은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웅성거리며 주위를 섰던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세면대로 가서 수도꼭지를 잠그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냥 화장실을 나간다. 세면대 주위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의도한 카피 나레이션이 나온다. ’투표에 참여합시다.‘ 참여해서 표를 던지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말로만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선거참여 독려 광고였다. 정말 간단한 일인데, 어렵게 만드는 절차와 형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위에서 입방아를 찧고, 이론 나부랭이를 가져다대는 교수 비슷한 타이틀을 단 윤똑똑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1970년대 중반에 판문점이 있는 대성동에서 남북한 간에 국기게양대의 높이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서로 판문점을 중간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국기게양대가 고만고만한 높이를 유지했는데, 어느 날 북한에서 갑자기 획기적으로 높여버렸다고 한다. 생각치도 못하게 높여, 그에 대응하게 게양대 높이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검토하게 되었다. 국내 유수 대학의 권위 있는 교수들과 한국군과 미군의 공병대의 전문가들이 동원되었다. 공학, 물리학, 기상학 등 다양한 이론에 바탕을 둔 수식이 나오고, 치열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북한 측의 게양대보다 높게 올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전문가 그룹의 구석에 실무자로서 참가한 당시 청계천에서 공사판 비계도 세우고, 그런 힘든 일을 해결해주는 하청업자 한 양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양반이 자신이 한번 해보겠다고, 돈만 얼마 먼저 주면 할 수 있겠다고 했단다. 어차피 안 될 것 하면서 그 양반에게 돈도 주고 일을 맡겼다. 그는 바로 쇠파이프 같은 것들 기존 철탑과 연결하여 쑥쑥 올려버렸단다. 서비스로 원래 약속한 것보다 몇 미터 더 올려버렸다나? 그리고 받은 돈 가지고 없어졌다고 한다.



이 얘기는 ‘70년대 혜성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진 제세산업의 창업자인 이창우 선생의 자서전격 기록인 <옛날 옛날 한옛날>이란 책에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당시 미군 공병대에서 카투사 사진병으로 근무하며 그 진행 상황을 보았던 선배에게서도 들었다. 그 선배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기술자 아저씨를 '도비꾼'이라고 했다. 도비꾼은 사전을 찾아보니 원래는 통나무 벌목하고 나르는 사람이라는데, 이제 통나무뿐만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 기계와 같은 물품을 나르고 설치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것 같다. 그 형이 '도비꾼'이라고 했을 때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현장에서 구른 베테랑을 일컬었다. 




도비꾼들은 어느 분야에나 있을 것이다. 마케팅 분야에도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분들 많다. 그런데 갈수록 그런 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이론적인 검토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 장애물을 넘지 못하니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왕년의 현장과 경험만을 들먹이며 이론이나 아랫사람의 얘기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는 도비꾼과 같은 무리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느 때는 'Street smart'해질 필요가 있다. 그보다 먼저 이론적 검토보다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가 있다. 그냥 행동하면 쉬운데, 이론적 검토한다고 시간만 다 쓰고, 결국 불가능하다고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세계적인 광고회사인 TBWA의 CEO인 쟝 마리 드루(Jean Marie Dru)는 공저일망정 책도 많이 쓰고, 강연하는 것을 나도 몇 번 봤을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하고 다닌다. 그의 말들 중 가장 인상적으로, 내가 다른 자리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 딱 하나 있다. “브랜드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Brands are not nouns but verbs)."란 말이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브랜드가 상징하는 한 단어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그것이 단순한 표식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행에 옮기기 전에 타당성 검사를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행동방식을 정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가 아닌 행동을 막기 위한 조사가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사립대학교에서 국가기관의 대학으로 이직한 아는 교수 한 분을 이직 직후에 만난 적이 있었다. 생활이 어떻게 다른가 묻자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국가기관이라서 그런지, 여기는 모든 것의 기준이 ‘감사’야. 무엇을 하려고 해도 그게 감사에 걸릴 것인지 아닌지로 타당성을 따지는 거야. 그러니 뭘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타당성 조사, 성과 예측을 요구하며 그를 통해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달라는 분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한 목적을 생각해 보길. 빌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에게 했던 선거 캠페인 구호를 약간 바꾸어 외쳐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실행이라구, 바보야(It's the action, stupid!)"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59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455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