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마케팅이 될까?

입력 2012-01-28 06:55 수정 2012-01-28 06:55
올해의 색과 동물을 활용한 마케팅
        모두 알다시피 올해는 용의 해인데, 그것도 보통 용이 아니라 흑룡(黑龍)이란다. 2012년 올해가 임진(壬辰)년인데 천간(天干)의 ‘임(任)’이 ‘오행(五行)’에 따른 색상으로는 검은 색 ‘흑(黑)’이요, 방향으로는 ‘북(北)’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호랑이해에 ‘백호(白虎)’, 그 3년 전에는 ‘황금돼지’해라고 한 것도 그렇게 천간의 색상과 그 해의 띠 지지(地支) 동물을 맞춰 이른 것이었다. 백호의 해인 2010년과 황금돼지 해인 2007년에 모두 다른 해보다 높은 출산률을 보였다.
        2007년의 황금돼지 이전에 천간과 지지를 엮어서 얘기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해 그 이전에는 어땠는지 간단하게 확인을 해봤다. 흑룡과 대비하여 12년 전 용띠 해에는 어떠했는지 2000년 1월의 신문기사들을 검색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검색사이트를 통해서는 2000년 1월 한 달 동안 ‘백룡(白龍)’을 언급한 기사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도 약간 후배뻘의 1966년 여자 후배들에게 ‘백말띠 여자’라 드세다며 농담반진담반으로 얘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천간의 색상을 따져본 적이 없다.
흑룡, 백호, 황금돼지는 마케팅 술수인가?         많은 사람들이 ‘황금돼지’로부터 시작하여 올해의 ‘흑룡’까지 동물을 수식하는 행위 자체가 마케팅 활동을 위한 술수로 해석한다. 분명히 그런 영향이 있다. 원래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데서 출발했다.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매촉진(Promotion)의 마케팅 4P가 그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순환하는 행위를 단순화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제품을 만들고, 알맞은 가격을 매겨서, 구입하기 쉬운 장소에 갖다 놓고, 널리 알려서 파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었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진화하고 다양하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욕구를 알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열심히 소비자조사를 한다. 그러나 상품은 소비자 욕구보다도 훨씬 진화되고 다양해졌다. 소비자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능을 가진 신제품들이 나온다. 지극히 세밀하게 나누어진 제품들 때문에 소비자들은 오히려 힘들어한다.
        퇴근길에 달걀 한 줄을 사오라는데 막상 매장에 가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가격만 생각하고 갔는데, 같은 가격대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외치는 달걀들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었던 것이다. ‘닭장에서 길렀는지, 놓아서 기르는 방사(放飼)를 했는지’, ‘수탉과 함께 키웠는지에 따른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 ‘인공사료를 먹였는지, 유기농 모이를 먹었는지’, 모이에서도 ‘녹초, 홍삼, 목초 중 어떤 것을 먹였는지’, 거기에 달걀을 낳은 시간, 달걀을 낳은 닭의 나이, 하루에 몇 개를 낳는 닭인지 등등의 요소들이 들어가니 복잡하기 그지없다. 거의 모든 제품들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TV를 살 때도 예전의 크기, 가격, 제조사에서 이제 ‘LED인지 LCD인지'와 같은 빛의 방사형식에, '3D’에 'Smart'기능여부까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 신용카드까지 어떤 것이 가장 혜택이 큰지 맞추어 결정해야 한다. 요는 이제 피곤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욕구를 기업들이 제품 차원에서는 앞질러 가고 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제품 간 구별을 하기가 힘들다.
        기업들의 제품력 차이도 줄고 있다. 정보 흐름의 속도가 빨라지고, 유통 쪽의 힘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제품으로 차별화하여 자신을 드러낼 부분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마케팅의 핵심 부분이 4P중에서 프로모션으로 이동하고 있다. 거칠게 비유를 하자면 제품, 가격, 유통 부분에서 제조사들이 다른 기업과 다르게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광고를 포함한 프로모션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마케팅 활동의 ‘소재’이다. 비슷비슷한, 제대로 알 수 없는 수많은 제품들에서 내 브랜드를 재미있고, 친밀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선택하도록 하는 게 마케팅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쇼핑해야만 할 것 같은 들뜬 분위기,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행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들이 스포츠마케팅, 스폰서쉽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마케팅의 새로운 소재와 무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 해의 간지(干支)와 연결하여 그 해의 동물을 수식하는 것 역시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본다.
왜 하필 검은 색일까?
        “요즘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블랙 스파이더맨처럼 블랙 자동차와 블랙 가전제품의 열풍이 뜨겁다. 스파이더맨이 검은 옷의 유혹에 사로잡히듯 업체들도 매혹적인 블랙으로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더워 보이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블랙은 봄과 여름엔 금기시되는 색상으로 꼽히지만 올해에는 명품의 대표 색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황금돼지 해인 2007년 5월15일 모신문에 실린 기사 중 일부이다. 이 기사 내용처럼 당시 블랙, 검은 색은 절정, 요즘 말로 하면 색상의 종결자였다. 원래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검은 색, 즉 ‘흑(黑)’은 꺼리는 색상이었다. 서양의 ‘black'과는 사뭇 달랐다. 서양에서도 검은 색, 블랙이 단순한 색상을 넘어서 ’black market'이나 에드가 알렌 포(Edgar Allen Poe)의 소설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처럼 범법의 세계나 불길함의 상징으로 쓰인다. 스탕달(Stendhal)의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에서처럼 성직자를 상징하는 고귀하고 깊이 있는 색상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성직자와 연계된 검은 색상을 표현하는 글자가 따로 있었다. 바로 천자문의 세 번째 글자인‘검을 현(玄)’이다. ‘검을‘ 현이 아니라 ’아득할‘ 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를 우주의 색상이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흑(黑)‘은 현실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는 색상이었다. 영화로도 나온 ’흑사회(黑社會)‘가 대표적이다. 수호지에 나오는 흑선풍 이규(黑旋風 李逵)도 검은 색이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백의민족(白衣民族) 한민족에게 검은 색은 지나치게 외래적이었으며, 선택의 대안이 없이 주어진 것이었다. 일본의 교복이나 제복으로 들어왔고, 한국전 이후 조악한 염색이 더해져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이들에게는 반항의 색상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1970년대 초 당시 대학생이었던 사촌형의 친구들이 같은 과 여자 친구에게 검은 색 옷만 입고 다닌다며, ’네가 에디뜨 피아프냐? 전혜린이냐?“하며 농담처럼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둘 다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 예술인들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검은 색은 ‘가난’, ‘반항’, ‘이단’의 상징과 같았다. 위에서 인용한 모신문의 기사 마지막 부분에 필자의 말이 인용되었다.
박재항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블랙은 디자인을 중시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성격이 강하다”며 “블랙에 대한 역발상이 흥미롭고, 단일 색상으로 통일된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면서 블랙 제품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뉴요커라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망라한 ‘뉴요커의 조건’이란 리스트가 국내외 웹사이트에서 2000년대 초 인기를 끌었다. 그 중 하나로 ‘옷장 안에 검은 색 코트만 여러 벌 갖고 있으면서, 다양한 색의 코트가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게 있었다. 필자가 뉴욕에 있던 시절 뉴욕 사람들은 왜 그렇게 검은 색 옷을 즐겨 입냐고 물어본 한국 친구들도 몇 있을 정도였다. 실제 즐겨 입는다. 웬만해선 비오는 데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 뉴요커의 특징이기도 한데, 검은 색 옷을 좋아하는 것은 갑자기 비가 와도 겉으로 보이는 피해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용성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은 색을 세련된 색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검은 색 터틀넥 스웨터도 같은 의도로 생각한다. 실용성을 내세운 최고의 세련된 멋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 서구에서 앞서 간다고 하는 뉴요커나 잡스와 같은 사람들의 기호 색상으로 검은 색이 백의민족의 나라 젊은 층부터 영향을 미치며 한국에서도 검은 색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트렌디 색상의 변화
        2000년대 중반 검은 색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색상으로 각광을 받기 직전에 한국을 뜨겁게 달군 것은 빨간 색이었다. ‘Be the Reds'란 20세기 같으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법한 도발적인 구호 아래 대부분의 국민이 빨간 색 유니폼을 착용했던 2002년 월드컵이 당연히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이어 빨간 색 화려한 꽃문양의 가전제품들이 선보였다. 나이가 먹을수록, 눈에 띄려면 화려한 빨간 색 계통 의상을 착용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되었다. 더 이상 빨간 색 스웨터를 입고 쑥스러워 하는 최불암 선생과 같은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 국회의원들과 같은 정치인들의 넥타이 색상을 보면 대다수가 빨간 색 계열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의 정치적 공포에 기초한 관념조차 뒤집어엎으며 대세를 이루었던 빨간 색이 트렌디 색상 대표로서의 위상을 검은 색에게 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빠른 성공이 급격한 몰락을 초래한다. 갑작스런 열풍은 최초의 충격만큼 사람들의 면역성도 강하고 빠르게 형성된다. 빨간 색의 경우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색상을 주인공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대중적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붉은 악마’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빨간 색으로 기업이 원하는 특정사항, 즉 고급스러움이나 특별함을 전달하기는 힘들었다. 빨간 색이 갖출 수 없던 고급감을 충족시키며 새로운 트렌디 색상의 지위를 차지한 게 바로 검은 색이었다.
        가전업계는 전통적으로 색상에 따라 제품군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Brown goods'와 ’White goods'였다. 한글로는 ‘백색 가전’이란 말은 많이 썼는데, ‘갈색 가전’ 혹은 ‘흑색 가전’이란 말은 쓴 적이 없다. 아마도 예전에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같은 생활 가전용품들의 비중이 낮았기 때문에 ‘백색’이란 접두어를 붙여서 호칭한 데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백색 가전제품들에 제조업체들은 계속 트렌디한 색상을 입혀 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빨간 색 꽃문양이 들어갔다. 더위를 물리치는 에어컨에 고급감을 앞세워 검은 색상을 입혔다. 백색 가전에 화려한 트렌디 색상을 입히고자 하여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반대로 백색 자체가 트렌디한 색상으로 떠올랐다.
        한국 마케팅의 역사에서 2011년은 20년 동안 변화 없이 유지되던 라면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색상 측면에서 본다면 흰색의 최고 트렌디 색상 등극을 의미한다 해도 무방하다. 작년 10월 아이폰 4S 예약 판매에서 32기가의 백색 제품이 최고 인기였다. 16기가의 역시 백색 제품이 그 뒤를 쫓았다. 삼성전자에서도 갤럭시 화이트 시리즈를 내놓았다. 한국 승용차에서 흰색과 은색의 비중이 50%를 넘는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흰색과 은색 계통 승용차의 비중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 흰색의 물결이 있기에 붉은 색 승용차 광고가 특별한 조명을 받는다. 주류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다른 색상까지 빛내게 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 흰색은 올해의 주인공 색상 자리를 유지할 것 같다.
        내년은 뱀의 해. ‘흑사(黑蛇)’의 해인데, 어감이나 이미지상 화제 거리로 만들 것 같지는 않다. 내후년 갑오(甲午)년 말의 해가 재미있다. ‘갑’은 푸른색이니 바로 ‘청마(靑馬)’의 해가 된다. 펄쩍 뛰는 푸른 말의 기상에 ‘청마 유치환’ 선생에 갑오경장과 동학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라는 것까지 할 수 있는 꺼리가 많아서 벌써부터 설렌다. ------------------------------------<럭스멘> 올해 2월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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