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체와 분리를 통한 신제품 만들기

입력 2012-01-12 15:17 수정 2012-01-12 15:17
“으음 멋진데! 일본인은 천재야!”흥분에 못 이겨 일어나면서 로스트로포비치가 외쳤다.-<러시아통신>, 요네하라 마리 지음, 박연정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11) 190쪽 -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출신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를 그렇게 흥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도쿄에서 숙박한 호텔에서 처음 이 그를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대상을 보고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는 바로 파리에 있는 그의 집에도 그 기기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그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에서 카탈로그를 받아서 신간센(新幹線)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열차 안에서 그렇게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상세하게 연구했다고 한다. 그 제품은 무엇이었을까? 비데,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쓰는 ‘변기부착식 비데’이다. 원래 유럽, 다시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프랑스식 비데는 화장실 안에 변기와 별도로 존재했다. 보통 호텔의 화장실 안에는 변기, 세면대, 욕조, 그리고 비데가 있었다. 스페인, 이태리, UAE등 비데를 목격한 곳에서는 어디나 비슷했던 것 같다. 요네하라 마리는 밀라노의 어느 싼 호텔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쓰면서, 비데만은 방 안에 설치한 것을 보았다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로맨스어(라틴어가 분화하여 이루어진 언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권의 비데에 대한 집착’을 말하기도 했다. 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변기와 분리되어 사용하는 비데’에 대한 집착이다. 효용 측면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변기부착식 비데의 장점을 이렇게 역시 흥분하여 외쳤다고 한다.
“아아, 뭐가 감동적이냐 하면, 이 발명의 결과 욕실 면적이 획기적으로 절약되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야. 이제까지 응가를 엉덩이에 묻힌 채 비데까지 이동해야 했던 심각한 희비극에서 인류를 해방해줬다는 것이지.”
공간이용의 효율성이 개선되고 실내 청결 유지를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며, 일상적인 행위의 편리성과 존엄성을 높인다는 제품의 특장점을 바로 광고로 옮겨도 될 만큼 명료하게 표현했다. 그런 장점을 가능하게 만든 아주 근본적인 제품의 소위 콘셉트가 있다. 역시 로스트로포비치 본인이 프랑스식의 기존 비데와 비교하여 정확하게 집어내었다.
“벌써 몇백 년이나 비데를 애용해온 프랑스인이 찾아내지 못한 것을 일본인들은 일순간에 이루어냈어. 비데와 변기를 합체하다니 정말 혁명적이지 않나!”
여기에서의 핵심 단어(Key word)는 '합체‘이다.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연결하거나 합쳐보려는 시도와 노력이 새로운 것들을 만든다. 그런 발명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프랑스인은 그 손쉬운 방법을 고안치 못하고 몇백 년이나 희비극을 연출하면서 비데를 썼단 말인가? ’몇백 년‘에 그 해답이 있다. 요네하라 마리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몇백 년을 이어온 일상적인 풍경이므로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굳이 고칠 시도는 커녕, 고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전자 부문의 신제품이란 건 없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의 상품기획, 신제품 개발이란 사실 일본 전자회사의 제품을 가져다가 똑같이 만들려 애를 쓰는 게 주업무에요.”
1989년 삼성전자 신입사원 입문교육에서 부서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상품기획 그 중에서도 신제품 개발 쪽을 맡고 있는 분이 강사로 오셔서 한 말씀이었다. 그 시대에야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분이 자부심과 자괴감이 섞인 묘한 분위기로 얘기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제품이 하나 있긴 합니다. 이걸 발명이라고 하기는 뭐한데, 어쨌든 세상에 없던 제품인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크게 히트를 친 제품이에요.”
느슨했던 강의실 안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공학도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신입사원 동기들의 눈빛이 강사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제품은 바로 ‘짤순이’입니다. 사실 짤순이는 세탁기에서 탈수 기능만 뺀 거죠. 세탁기를 살 경제 형편이 되지 않았던 한국인들에게 빨래하는 데 가장 힘들다고 한 부분이 바로 빨래를 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빨래물을 넣고 돌리기 위해서는 기계가 어느 크기 이상이 되어야하지만, 탈수기능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내놓은 것인데, 엄청나게 히트를 칠 줄은 몰랐죠.”
탈수기는 변기부착식 비데의 ‘합체’와는 반대로 ‘분리’가 핵심 단어이다. 항상 붙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분리시키면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변기부착식 비데만이 있는데, 나중에는 더욱 전통, 고급적이고 깔끔하다 장점을 내세우며 변기와 분리된 비데가 다시 신제품으로 나올 수 있다,
브랜드, 특히 브랜드 확장과 신제품의 개발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브랜드 확장은 또한 자신의 브랜드 영역을 정의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브랜드 영역의 정의와 확장 관련하여 ‘합치고 쪼개거나, 쪼개고 합쳐라’는 말을 한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로 시작한 espn이나 일본의 ‘100엔샵’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둘 다 기업이지만 신제품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을 쪼개고, 무엇을 합친 것일까? [출처] 합체와 분리를 통한 신제품 만들기|작성자 박재항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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