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3 이별기

입력 2011-10-06 11:21 수정 2011-10-06 11:21


“앗!” 외마디 비명의 끝을 제대로 맺기도 전에 아이폰은 손끝을 살짝 스치며 절벽 아래로 수직낙하하고 있었다. 다행히 꼬불꼬불 도로가 절벽을 끼고 돌고 있어, 떨어진 아이폰이 도로 옆에 엎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뛰어 내려가 보니 유리가 조각조각 박살이 나 있었다.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살짝 건드릴 때마다 잔 유리조각들이 떨어졌다.  

지난 6월 칸의 국제광고제에 참가했다가 이전 회사의 선배를 만났다. 광고주를 모시고 왔다는데, 아는 분이었다. 모두 칸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니스에서 오후 늦게 비슷한 시간의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남아서 함께 니스 주변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니스 해안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서 경치를 찍다가 아이폰을 떨어뜨린 것이다. 

처음에는 선배와 이전 광고주와 함께 있어 그랬는지 별 일 아닌 것처럼 대범하게 행동했다. ‘아이폰4로 바꾸라는 신의 명령이네요’ 식으로 농담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되었다. 가까이는 국제광고제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과 요약한 메모들, 보다 크게는 연락처가 다 망가진 아이폰 속에 있는데 데이터가 복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프랑스에서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 도착하여 아이폰 수리센터라도 찾아보아야 제대로 걱정할 것인지를 따질 수 있는 문제였다.  

워낙 대범한 척을 해서 그런지 선배와 이전 광고주 일행은 아이폰 사건은 이미 잊은 양 느긋했다. 15분 정도 비행기 출발 시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앞선 내 비행기 시간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 시간에 딱 맞추어 공항에 도착했다. 혹시나 비행기를 놓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를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유럽의 동료 혹은 친구나 서울의 직원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지 걱정되었다. 전화번호를 아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회사 사무실 전화번호도 헷갈리기까지 했다. 어쨌든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번 세기 들어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중전화를 써본 적이 없으니, 생각할수록 더욱 불안만 해졌다. 틈만 나면 접속하던 인터넷이 안 되니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것 같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공항 터미널 안을 오가고 있었으나 혼자만 완전히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려서 그 조바심이 극에 달했다. 귀국 비행기로 갈아탈 시간이 충분했는데, 공항내 셔틀버스를 타러 뜀박질을 하고, 버스가 설 때마다 내부 벽에 붙은 신호판과 외부 건물을 비교하며 안절부절했다. 출발 2시간 전에 탑승수속을 하고, 인터넷 접속을 하여 서울에 메일과 메신저로 휴대전화가 없단 사실을 알리면서 겨우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처음 해외 출장을 다닌 ‘80년대 말부터 휴대폰이 꽤 보급이 되었지만, 로밍이 되지 않던 ’90년대 말까지 출장지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지 연락처를 본사에 알리는 것이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주재 사무소가 있으면 주재원의 전화번호와 팩스, 그리고 숙박하는 호텔의 전화번호와 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90년대 중반 이후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휴대폰을 현지에서 빌려 그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현지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으면 본사에서는 출장자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주재원이 있으면 그를 통하여 어떻게 알아보지만, 그마저 없는 지역에서는 출장자의 선처(?)만을 바랄 뿐이었다. 출장자도 긴급하게 본사와 연락을 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뒤에 현지에서 휴대전화를 빌려서 서로 연락하는 것은 용이해졌지만, 비용이 워낙 비싸서 최대한 절제하여 압축된 통화를 하곤 했다. 그래서 출장자와 본사나 주재원 등의 연관된 인사들까지 모두 전화번호를 비롯한 사전준비 및 점검목록이 길었다.  

나름 철저한 사전준비와 점검에 힘입어서인지 출장을 다니면서 예기치 못한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당황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출장에서 봐야 할 일 자체를 완전히 어그러뜨린 적도 없었다. 아무리 복잡하고 급하게 닥친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대략 필수적으로 알고 갖춰야 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머릿속에 작성하곤 했다. 그런데 로밍폰을 빌려 나가는 것이 일반화되고, 이어서 자동로밍이 되면서 꼼꼼함이 사라졌다. 항상 연락이 되겠지 하면서 설렁설렁 준비를 하곤 했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칸 국제광고제에 2009년 처음 참가했다. 한국, 중국, 인도의 아시아 3개국의 휴대폰 사용 현황을 비교하는 세미나의 연사로 나섰다. 특히 한국인의 발전된 휴대폰 사용 실태가 핵심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드골공항에 도착하여 보니, 로밍이 되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하다 유럽 대부분 지역은 자동로밍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자동로밍이 되는 지역으로 출장을 주로 다니면서 유럽의 프랑스도 당연히 자동로밍이 되리라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한국의 발전된 휴대폰 사용실태를 얘기하면서, 휴대폰의 사각지대로 스스로 찾아들어간 셈이었다. 결국 광고제 현장에 도착해서 현지 번호의 휴대폰을 빌렸다. 그런데 한국을 출발한 직후 한 메이저 언론매체에 필자에 관한 뉴스가 크게 취급되어 나왔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문자로 연락을 주었는데, 하나도 받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씹어버리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때 어쩔 수 없이 씹게 된 상황을 말씀드리며 용서를 빈다. 사전에 체크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찰이자 게으름 때문이었다.  

니스 언덕에서 추락한 아이폰은 서울의 아이폰 수리센터에서 복구불가 판정을 받았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취할 방도가 없다고 한다. 인간으로 치면 뇌사상태도 이미 벗어난 경우란다. 새로이 하얀 색 아이폰4를 사면서, 바탕화면이 조각조각 난 이전 아이폰에서 유심카드를 뽑았다.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곡(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바로 집에 와서 아이폰4의 개통 소식이 오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개통 연락이 오고, 새로운 교당의 새로운 제단에 최초의 제물을 바치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아이폰4를 노트북과 연결시켰다. 다행히 칸에 가기 직전 들렸던 뉴욕에서 동기화를 해놓았기 때문에, 칸에서의 자료 빼고는 모든 것을 복구할 수 있었다. 십자가만, 불상만 새로운 것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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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명복을 빕니다. 이코노미스트 잡지에서의 이 모습대로 하늘에서 프리젠테이션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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