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전자전시회에서 배운다

입력 2011-10-03 14:35 수정 2011-10-03 14:35
전자산업 전시회의 부침과 시사점

대표적인 산업전시회로 자동차와 전자를 들 수 있다. 모터쇼라 불리는 자동차 전시회를 근래 2년간 자주 다니는 편이다. 예전에는 전자전시회를 십여년간 자주 다녔었다. 전자산업의 전시회는 규모나 영향력에서 부침(浮沈)이 모터쇼보다 심한 편이라는 게 다른 점이다.

시기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전시회를 보면 먼저 매년 1월초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라고 불리는 가전전시회가 그 해의 문을 연다. 이어 3월에 독일의 하노버에서 Cebit이라는 정보통신 부문의 전시회가 있다. ‘90년대 초까지는 시카고에서 열리는 역시 가전제품 전시회가 있었다. 1월의 라스베가스의 가전전시회를 겨울 가전전시회, 시카고를 여름 가전전시회라고 하면서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얘기 듣기로는 지역의 역사도 오래 되고 하여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라스베가스의 전시회보다 훨씬 영향력도 크고 많은 참관객들이 왔다고 한다. 이어 9월에는 베를린에서 IFA라고 불리는 가전제품 전시회가 열린다. 마지막 전시회로 11월에 열리는 정보통신에 초점을 맞춘 컴덱스(Comdex)가 있었다. 물론 이들 미국과 유럽의 국제적인 전시회 이외에도 바르셀로나와 뉴올리언즈에서는 무선통신 전시회가 열리고, 홍콩이나 한국에서 열리는 전자 전시회도 규모 면에서 상당히 큰 편이다.

위에 든 전자 관련 전시회 중 컴덱스와 시카고 여름 가전전시회는 이미 없어졌다. 그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를 보면 전자업계가 어떤 흐름을 타면서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시회도 하나의 기업이나 상품과 같은 브랜드의 일종으로 보았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왜 시카고 전자전시회는 없어졌는가?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시카고를 흔히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 부르는데, 다르게 ‘관문도시(Gateway City)'라고도 한다. 5대호와 이리(Erie)운하를 비롯한 수로와 동서 및 남북으로 미대륙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들이 시카고 주변을 통과한다. 원래 시카고라는 도시 자체가 축산산업의 유통 중심지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소떼를 몰고 남부로부터 온 카우보이들이 길을 개척하며 시카고는 자연스럽게 축산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부가산업이 함께 발전하면서 지리적으로 미국 중심부에 위치했다는 강점을 살려 다른 부문에서도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덩치가 큰 가전제품들 유통의 허브도 시카고를 둘러 싼 중서부였다.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스토어 체인인 베스트바이(Best Buy)의 본사는 시카고의 북쪽 5대호 연변에 위치한 미니애폴리스에 있다. 미니애폴리스하면 추위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시카고도 미니애폴리스 못지않게 겨울이 혹독하게 춥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전전시회를 일 년에 두 차례 하기로 결정하면서 연초의 겨울철 가전전시회를 라스베가스에서 하고, 아름다운 여름과 편리한 교통을 만끽할 수 있는 여름 가전전시회를 시카고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보통 라스베가스에서 당해연도의 신제품 발표가 이루어지고, 시카고에서는 중간 점검 및 영업 위주의 전시회를 꿈꾸었으나, 시카고에서의 여름 전시회는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시카고 여름 가전전시회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있다. 첫째, 날씨와 관련하여 라스베가스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을 나는 시카고 입장에서야 여름은 그저 아름답고 쾌적했겠지만, 라스베가스의 1월 날씨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둘째, 전자제품의 신기술 개발 속도가 1년 두 차례에 걸쳐 신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해의 시작에 맞추어 신제품을 내놓은 업체들이 여름에 같은 제품들로 다른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환락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라스베가스는 전시회 이외의 즐길 거리에서 시카고를 압도했다. 굳이 시카고와 라스베가스 둘 중에서 일 년에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를 고르라면 라스베가스를 고를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요는 전시회를 기획할 경우 시간을 철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것도 자신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참가자의 입장에서 과연 적당한 것인지, 경쟁 전시회와 비교하여 우월한 면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 시간이 갖는 기후 환경과 전시할 수 있는 물품들의 상황까지 함께 검토하여야 한다. 그리고 본행사로서의 전시회 이외에 참가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경쟁 전시회가 열리는 도시와 비교하여 그 ‘+α'를 명확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도시가 다를 경우 도시브랜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도시의 관광부처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컴덱스와 CES의 엇갈린 운명 

1999년 11월에 당시로서 세계 최대의 컴퓨터 IT산업 관련 전시회인 컴덱스(Comdex)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다. 필자가 처음 컴덱스를 직접 참관한 해이기도 하다. 전자전시회에 제너럴모터스(GM)의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자동차 장착 통신장비인 ‘온스타(OnStar)’의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GM의 자동차와 함께 수많은 소위 닷컴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컴덱스는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였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다음 해 1월초에 열린 가전제품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는 GM외에도 몇몇 자동차 업체들이 전자기술이 장착된 자동차들을 전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전자 관련 산업의 영웅들은 바로 닷컴 기업들이었다. 컴퓨터가 빠진 상태에서 전시된 TV나 냉장고와 같은 제품들이 갑자기 전통문화재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HDTV를 비롯한 소위 디지털TV가 선을 보였지만, 언제 수요가 폭발할 지는 요원한 상황이었다. 그 해 가전전시회 다음 달 초에 열린, 세계에서 광고비가 가장 비싼 미국 프로미식추구 결승전인 슈퍼보울은 아직도 ‘닷컴보울’로 불린다. 그 정도로 닷컴 기업들의 광고가 줄을 이었다. 가전전시회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컴퓨터가 전자제품의 중심으로 떠오른다고들 얘기했다. 컴덱스의 위상은 MS의 빌 게이츠가 키노트 연설의 연사로 나서서 태블릿 PC를 소개하는 2000년 11월의 컴덱스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필자는 아이패드와 함께 태블릿PC가 자주 언급되는데 왜 2000년의 MS 태블릿PC 얘기가 나오지 않는지 무척 궁금했다. 당시에 보았던 태블릿PC의 기능과 현재의 태블릿PC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데 말이다.

당시 MS 입장에서 먼저 본다면 그들의 야심찬 작품에 대한 다른 기업들의 호응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 갔다’고 혀를 차는 제품들이 가끔 있다. 혁신의 선두주자라는 타이틀이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길을 만들 테니 따르라’ 혹은 독불장군식의 전시는 지양해야 한다. 컴덱스라는 전시회 자체가 디지털의 총아와 같은 제품이나 기술의 경연장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2000년을 정점으로 기울기 시작한 데는 물론 그 다음 해의 9·11과 같은 예기치 못한 엄청난 사건의 여파도 있었다. 특히 2001년은 9·11 바로 두 달 후의 직후여서 컴덱스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소비자들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간 요인이 더욱 컸다.  

“이번 컴덱스는 제게는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Mobile Internet’이란 것이 큰 주제였는데 사실 그 주제는 지난 1997년부터 꾸준히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큰 컨셉트의 제시 없이 단지 더 빠르고 더 작아지고 더 편리해진 ‘Mobile Internet’기기의 전시장으로 그친 느낌이 들어 실망스러웠습니다. 인터넷 쪽 일을 하는 한 후배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만큼 인터넷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는 답장이 왔습니다. 이는 그간 기술자들 세계의 얘기로만 머물던 인터넷 기기들이 소비자들이 쓰기 편리하도록 상품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2000년 컴덱스 직후 몇몇 지인들에게 쓴 메일의 일부이다.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이란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시작된 것만 같은 주제가, 2000년에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미 1997년부터 제기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전시되었던 모바일 기기 자체는 발전을 했지만, 초고속/모바일 인터넷망과 같은 인프라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전시회라고 하더라도 생활 속에 구현될 수 없는 제품들과, 그런 제품들을 전시하는 전시회의 생명은 길 수 없다. 컴덱스가 언제 제대로 구현될지 모르는 미래의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가전전시회는 가정 속의 매일 쓰는 제품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시키며 그 영역을 넓혔다. 결국 라스베가스 가전전시회는 컴덱스까지 삼켜버리는 미국 내 최대의 전자 관련 전시회 지존의 위상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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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 토요일(10/1)자에 실린 글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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