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과 카누의 차이를 아시나요?

입력 2011-10-02 23:59 수정 2011-10-02 23:59


유유자적 지내시던 선배 한 분께서 카약을 시작하셨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카약과 카누의 차이점을 물어보셨다. 딱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웅얼대자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문자답 식으로 얘기해 주셨다. 선배 분 말씀으로는 두 가지 차이가 있었다. 카약은 양쪽 번갈아 노를 젓고, 카누는 한쪽으로만 노를 젓는 게 크고, 다음은 카약은 허리 아래를 배 속으로 집어넣으며 그 위는 닫혀 있는 반면, 카누는 그냥 열려 있다고 한다.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조금 부럽기는 했다. 

<아날로그로 살아보기>(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김정민 옮김, 율리시즈 펴냄)을 읽었다. 그 중 조지 다이슨(George Dyson)이란 과학 기술 역사학자이자 인터넷 논객이란 사람이 카약과 카누의 차이를 가지고 한 비유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를 만드는 법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 책에 나온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카약은 예전에 북태평양에 살았던 알류트족이 만든 것인데, 그 섬에는 나무가 없어서 해변으로 밀려온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아 뼈대를 만든 다음 짐승의 가죽을 씌워서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민족인 트린기트족은 이와 반대로 밀림 속에 살았기 때문에 크고 단단한 나무를 찾아 통째로 베어낸 뒤, 잔가지들을 다 쳐내고, 사람이 들어가 앉을 만큼 속만 잘 파내면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카누였다. 

이어 그는 우리들은 오랫동안 카약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는데, 오늘에는 카누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맞다. 예전에는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서 자그마한 정보라도 소중하게 모아서 얼기설기라도 엮어서 뭔가 형태를 만들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감싸는 논리를 개발했다.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후 상당 기간이 지난 ‘98년 말까지만 해도 브랜드에 관한 자료 모은 것을 보여달라며 사람들이 찾아 왔다. 그러면 세부 주제별로 분류는 했지만 클리어파일 한 권에 모아 철해 놓은 것을 주었다. 받는 사람은 힘들여 모은 것을 너무 쉽게 얻는다고 감사하며 미안해했다. 어떤 주제는 한 두 아티클 정도 있곤 했다. 그렇게 겨우 구색만 맞추어 놓은 것들로 브랜드 자료라는 카약 한 척을 만들어 놓은 냥 했다.  

다음 해부터는 클리어파일이 모자랄 정도로, 정확히는 쏟아지는 정보들을 취사선택하여 프린트해 보관하는 것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브랜드 관련한 정보가 쏟아졌다. 다이슨의 말에 따르면 “불필요한 정보들을 쳐내야 그 속에 숨어 있는 지식의 몸통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쳐내지 않으면 지식의 몸통은 고사하고, 정보들 속에서 익사하게 된다. 

‘90년대 초에 하버드대학교에 있는 동양학 관련 연구소로는 세계 최고의 기관임을 자부하는 옌칭연구소에 동양사학과 동기 친구와 함께 들른 적이 있었다. 당시 하버드대학교에 유학 중이던 한 분이 옌칭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그 분 덕에 예칭연구소 자료실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자료들을 보며 “학부 다닐 때 이렇게 자료가 많았으면 열심히 공부했을텐데”하며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을 하자, 같이 간 친구가 바로 받아쳤다. “자료 없다는 핑계대고 제대로 공부 안 하고도 버티었지, 이렇게 자료 많았으면 우리는 학부 때 이미 죽었다.”  

학부 때 리포트나 논문을 쓸 때면 얼마 안 되는 자료 모으는 데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자료 수집을 중지하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그 때까지 모은 나무를 엮어서 동물 가죽천으로 씌울 틀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버릇은 회사 일을 하면서도 계속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인가 나무조각 모으는 것은 끝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통으로 카누를 만들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떠내려온다. 그것들로 카누를 만드는 모드로 바로 전화되지 못하는 까닭은 세 가지이다. 

카약만 만들다 보니 카누라는 것을 모른다. 세상의 배는 카누 밖에 없는 줄 안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로, 카약의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파내서 버려야 하는데 자꾸 갖다 붙이려고만 하는 것이다. 셋째, 어디를 어떻게 파야 할지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새로운 것을 개념 정도 인지하고 있고, 기존의 것을 부정만 해서는, 정작 어떻게 과거의 것을 극복하며 새로운 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인지 세부 방법을 알 수 없다. 새로운 것을 정확하게 알고(正), 극복하기 위해 부정하며(反), 그래서 결국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合). 카약이 필요할 때가 있고, 카누가 빛을 발할 때도 있다. 상황은 바뀐다. 결론은 두 가지 모두 본질을 궤뚫으며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정반합’의 과정을 작동시켜야 한다. 

* 약간 비슷한 맥락에서 “정보의 양과 통찰력의 관계”란 제목으로 2007년 초에 쓴 졸문이 있습니다. 시간되시면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bit.ly/nfMKZD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62명 34%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122명 66%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