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적은 사장님?

입력 2011-06-28 11:09 수정 2011-06-28 11:09
 <럭스멘>이란 잡지에 실은 글입니다. 잡지에 실은 제목을 그대로 싣습니다. 원래 제가 잡은 제목은 온건하게 아래와 같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연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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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경영자의 역할




        지난 5월 중순의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하는 6명이 모인 어느 저녁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그 모임에 참석한 정치인 출신이 있었다. A의원이라고 하자. 정치인답게 원래 말씀을 재미있게 하고 사교성이 뛰어난데다 참석자 중에서 연배가 가장 높아서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주도했다. 갑자기 A의원이 바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모회사의 대표에게 말했다. “김 대표, 머리 좀 숙여 보소.”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김 대표란 양반이 고개를 숙이자, 바로 얘기를 이었다. “그래, 소갈머리가 많이 비었네. 앞머리가 좀 있어서 본인은 아직은 괜찮다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빨리 머리카락 이식수술하소.”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 만들기




        아무리 넉살 좋은 정치인에 연배가 높기는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 무례한 듯이 보였다. 그런 ‘도발적’ 언사에 사람 좋은 너털웃음만 짓고 있는 김 대표의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게 보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짐을 받듯이 “꼭 하쇼“라며 재촉하던 A의원이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나도 이게 뒷머리서 이식한 거요.“ 김 대표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A의원은 그런 분위기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자신이 이식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실제 절차와 이후의 효과 및 지속적인 관리방법까지 종합브리핑을 외부에서 온 중요한 전화를 받으러 나갈 때까지 자신의 머리를 교보재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잠깐 A의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목표고객이 되었던 김 대표가 말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는데 말이야,“하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었다. ”여자로 치면 자신의 코가 성형수술한 거라고 먼저 얘기를 하는 건데. 진짜 이 양반이 내 머리카락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구나,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   


        비교적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곧 커뮤니케이션이 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인이지만, A의원의 그 날 대화 방식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첫째, 그는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취하게 하면서 대화로 이끌어 들였다.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게 된 김 대표는 그 순간부터 왜 자기가 고개를 숙였어야 했는지 그 대답이 궁금해졌을 것이다. 둘째, 보통의 초면 자리에서 누구도 직접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탈모(脫毛) 이슈를 직접적으로 거론함으로써 예의 바른 상대방 김 대표의 감정선을 심하게 자극했다. 소갈머리 얘기가 나오며 김 대표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 대답을 듣기 전에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면으로 보면 A의원은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다. 셋째, A의원은 자신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숨김없이 들어내 보였다. 그를 통해 상대방 김 대표는 A의원과 동료의식을 갖으며,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넷째, 필요성만을 얘기한 데서 A의원은 과학적인 지식까지 곁들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A의원은 다음과 같이 전형적인 ‘기승전결(起承轉結)’형의 스토리텔링기법을 보여주었다.




- 기(起) : “머리 좀 숙여 보소” -> 호기심 유발,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임

- 승(承) : “소갈머리 없네. 이식하소” -> 도발적 자극으로 관여도 극대화

- 전(轉) : “나도 뒷머리에서 이식을 했소” -> 동료로서의 연대감 형성

- 결(結) : “하기도 쉽고 자신감이 생겨요” -> 구체적 행동 방법과 효과 약속




        위와 같은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매체의 종류를 떠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근간이 되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15초 밖에 안 되는 짧은 TV나 라디오 광고에서도 과연 어떤 기승전결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 한쪽의 일부분만을 차지하는 인쇄광고에서라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하루에 수십 개 날리는 단문 SNS 메시지 중 하나라도 어떤 스토리 흐름을 갖고, 어떤 더 큰 맥락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신제품의 출시를 위해 발표회를 하고, 신문에 광고를 한다 치자. 발표회와 신문 광고에 별개의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고, 이 둘을 합한 전체 출시계획을 관통하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승전결의 각 단계마다 행동의 목적이나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위 A의원의 예를 보면 ‘호기심’, ‘자극’, ‘연대감’, ‘방법 제시와 확신 주기’의 순으로 진행이 되었다. 처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알게 되는 ‘인지(認知)’에서 ‘구매’와 ‘평가’까지 이르는 과정을 따라 커뮤니케이션이 마케팅 단계별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헌하여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꿈을 키워주는 소통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로 ‘소통(疏通)’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러나 깊게 의미를 파헤쳐 가면 커뮤니케이션보다 소통이 훨씬 넓고 깊은 영역과 울림을 가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와 같은 뜻을 담은 '코뮨(commune)'이라는 한정된 지역이나 모임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초점이 있다. 이에 비해 막힌 것을 ‘트다’의 ‘소(疏)’와 그래서 비로소 연결한다는 ‘통(通)’으로 이루어진 ‘소통’은 단어 자체에 실천을 촉구하며, 보다 넓고 먼 곳을 지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자신이 끝없이 꿈을 꾸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스스로 실천에 옮겼던 <어린 왕자>, <전시조종사>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앙뜨완 드 쌩떽쥐뻬리(Antoine de Saint Exupery)의 말이다.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것은 낮은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제한된 범위에서의 일방적인 ‘통(通)’이다. 아무리 작은 일을 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큰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하여 큰 계획을 완성하는 데 어떻게 공헌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큰 그림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있을 때, ‘작은 일’이란 없다. 모두가 성심껏 역할을 하며 하나하나가 큰 일이 되고, 그런 큰 일이 전체 그림을 더욱 크게 이루게 한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도버해협을 건너서 쳐들어오는지 감시하여 연락을 취하는 우리로 치면 봉수(烽燧)대원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뽑았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도 이들 봉수대원들이 등장한다. 이후 나폴레옹이 유배되고, 프랑스는 내부의 혼란과 쇠약해진 군사력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지만 프랑스를 바라보는 영국 동부해안의 봉수대원들은 묵묵히 원래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단다. 이후에도 수십 년을 봉수대원으로 지내고 은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거야 국경초소대원 정도로 생각해서 밀입국자도 그 시절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증기기차 시절에는 석탄을 퍼서 집어넣는 화부(火夫)가 기차에 있었다. 디젤기차로 바뀌고 나서도 이들 화부는 기차에 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단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일들은 현재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싸고도 흔히 볼 수 있다. 전문화와 첨단화라는 미명하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계속 출현하고 있다. 그에 맞추어 기업들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조직을 창설한다. 광고회사의 경우도 그런 요구에 맞추어 별도의 대응조직을 만들곤 한다. 예를 들면 ‘SNS마케팅팀’과 같은 조직이 들어선다. 환경변화에 따른 기민한 대응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들이 기존의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과는 별동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두 가지 방향으로 사태가 벌어진다.

 
       첫째는 다른 마케팅 활동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한정된 영역에 관한 명령만 주어진다. 즉 어떤 맥락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천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한 달내에 만들 것’과 같은 지시만 떨어지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주위의 다른 상황이 변해도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 결과적으로 비효율성은 물론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게 된다. 한편으로는 내부 재유경쟁체제에 철저하여 똑 같은 목표를 다수의 부서에 주는 경우가 있다. SNS마케팅팀에도, 전통매체를 주로 다루는 광고팀에도 ‘한 달내에 10만대를 팔 수 있는 실행계획’을 짜가지고 오도록 하는 식이다. 둘 간의 조율은 상층부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아주 기계적으로 ‘두 부문 모두 예산을 50%씩 삭감하여 실행’하는 식의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만 따르게 만드는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어 버린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적을 내부에 키우는 셈이다.




생각하게 하라




        ‘순전한 무사유(無思惟)-Sheer thoughtlessness'.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의 하나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쓴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찌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급 관료 중의 하나로 지목을 받았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종전 후 유럽을 아르헨티나로 피신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비밀경찰인 모사드의 끈질긴 추적에 결국 1960년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강제 송환된다. 그의 재판과정을 <뉴요커>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지켜본 기록을 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볼 때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에 근면하고 성실하게 임했던 관료였다. 그에게 죄를 부과할 수 있을까? 거기서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묻는다.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하여 전혀 성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는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도 ‘순전한 무사유’에 바탕을 둔 성실함은 파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숨결을 도외시한 채 오직 숫자로 표시된 소비자조사 결과만을 따라 짠 마케팅 계획, 응대 매뉴얼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고객센터의 전화응대원 등이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라. 식스시그마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대표적으로 식스시그마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업으로 모토롤라를 들었다. 그런데 이미 ‘식스시그마가 모토롤라에게서 상상력을 제거해 버렸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던 상태였다. 실제로 모토롤라는 아날로그적인 제조품질은 높혔을지 몰라도 식스시그마의 성공적인 사례로 떠오른 후 디자인이나 성능이나 기존 시장의 경쟁제품을 뛰어넘는 성공작을 내놓지 못했다. 비슷한 경우를 한국의 어느 기업에서도 본다. 철저한 조사로 유명했던 그 기업은 광고의 사전조사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부터 효과적인 광고물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실무자들의 광고물을 만드는 목적이 사전조사를 통과한다는 내부 행정적인 데 우선순위가 주어진 결과였다.

 
       제도나 장치로 얽어매기보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행동으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나 시대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서 언제나 통할 수 있고,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이를 위해 큰 그림을 보여주고, 창대한 꿈을 공유하도록 한다. 기승전결의 스토리는 어쩌면 자유로운 생각과 큰 꿈 위에서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올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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