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은 무조건 싫다?

입력 2011-05-22 14:05 수정 2011-05-22 14:05


일요일 아침이면 자전거를 끌고 한강 둔치로 나간다. 운동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깝고, 나 자신도 ‘자전거 산책’이라고 얘기한다. 집에서 반포대교 아래, 어제(5/21) 문을 열었다는 인공섬과 잠수교를 사이에 둔 곳까지 여유 있게 10분 정도 걸려서 간다. 잠수교 교각 근처의 물을 보고, 동쪽으로 휘휘 한남대교와 동호대교를 지나 성수대교 교각 아래까지 간다. 역시 거기서도 교각을 휘감고 흐르는 물 구경을 잠깐 하다가 서쪽으로 온 길을 되짚어 한남대교까지 가서 다리 아래의 벤치에 앉아 트위터를 보고, 트윗을 올리고, 책을 좀 읽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빵집이나 도너츠 파는 곳에 들러 아침거리를 사가지고 온다. 전체 시간은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  

오늘(5/22) 아침, 한남대교 지나서 동호대교 가는 길에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섰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맞추어서 그랬는지 그 친구는 지그재그 갈지자로 자전거를 몰면서 상대차선까지 들락날락한다. 그 친구를 추월하여 가려는데, 그 친구가 불쑥 방향을 바꾸면서 그 친구 자전거의 뒷바퀴와 내 자전거 앞바퀴가 충돌했다. 자전거만 넘어지고, 몸은 다치지 않았다. 자전거를 수습하여 일으키는데, 그 친구는 두 번 ‘죄송합니다’하더니 아무 일 없었던 냥 먼저 휙 간다. 천천히 뒤따라가는데, 여전히 왕복 양 차선을 오가며 지그재그 운행을 계속 했다. 한술 더 떠 음악에 맞추어 손짓발짓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그 친구를 다시 추월하려는 시점에, 건너 차선에서 우리 쪽으로 오던 사람과 그 친구가 거의 부딪힐 뻔했다. 건너 편 사람이 가까스로 그 친구를 피하며 뒤돌아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며 갔다. 음악에 빠진 친구는 잠깐 섰다가 아무 일 없었던 냥 다시 페달을 밟을 태세를 취하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 친구에게 가서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얘기했다. “차선을 지켜서 가요. 봐요? 위험하잖아!” 건성으로 “네, 네”하는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고등학생은 아니고, 20대 후반정도로 보였다.  

그 친구를 뒤로 하고 성수대교까지 가서 교각 아래에 가서 이번 비로 불은 물을 보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큰 소리로 노래를 하며 지나갔다. 이전과 똑같이 지그재그로 자전거를 몰면서 지나갔다. 말을 듣지 않는 게 노엽기도 하고, 위험을 자초하고 다른 사람까지 위험스런 상황에 빠트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자신을 죄는 상황에서 저런 자유를 느끼고 즐기기 위하여 나왔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자유스런 호흡을 하기 위하여 나왔는데, 평소에 부딪혀야 하는 상황과 다름없이 줄맞춰서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움직이라고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전 회사에서 사장님과 팀장들 몇몇이 휴일에 번개등산을 갔다가 하산 길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울렸다. 돌아가면서 건배제의를 하는데, 한 팀장이 ‘일사불란(一絲不亂)’을 구호로 외쳤다. 사장님이 정말로 역정을 내며 불쑥 말씀하셨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일사불란’이야. 광고회사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지. 일사불란해서는 안 돼!” 분위기가 어색해질 정도로 역정을 내셨다.  

그 때의 말씀이 맘에 드셨는지, 그 사장님께서는 이후에 그날의 에피소드를 들어서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회사의 경쟁력은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전략적 조합 능력에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일사불란’을 그렇게 싫어하셨을 수도 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이 잘되어 있는 것을 내부에서까지 강조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모기업의 브랜드전략 실행에 관한 계획을 짤 때, 너무 와일드한 계획이 아니냐고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회사와 같은 큰 조직을 한 발짝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열 발짝을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아주 급진적, 곧 래디컬(radical)한 계획을 내놓아야만 겨우 가능합니다.” 비슷하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도 했다. “한번 발만 떼면 한국의 기업들은, 그 조직이 누구보다 빨리, 상상할 수도 없게 신속하게 움직여 목표를 달성합니다.” 실제 그런 ‘속도의 한국’을 떨친 한국 기업들의 사례는 아주 많이 찾을 수 있다.  

요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는 ‘틀을 깨는’, 각자가 규칙 없이 어디로 튈 줄 모르게 마구 해야 하고, 일단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실행에 옮기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부터 계급이나 부서에 따른 ‘일사불란’이 알게 모르게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실행단계에서 아이디어의 주창자들이 ‘지적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실행에 간섭하는 경우도 많다. ‘일인백색’의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하고, ‘일사불란’한 실행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아침의 지그재그 자전거 친구는 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것을 생각하고 실제로 끌고 나온 것 자체로도 큰일을 했다. 어느 정도의 자유의 바람을 호흡할 수 있었다. 그걸 굳이 다른 차선을 넘나들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무엇보다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최소한도로 일사불란해주어야 하는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 친구가 무사히 별탈없이 자전거 산책을 만끽했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에는 차선은 지키면서 자전거를 타길.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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