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모에 걸린 바코드

입력 2011-03-23 23:16 수정 2011-03-23 23:16


서보명 교수의 <대학의 몰락>(동연 간, 2011)을 읽었다. 처음 살 때는 표지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다 읽고 덮은 다음 보니 심상치 않다. 학사모에 바코드가 달려 있다. 바코드는 모든 것을 정해진 방식에 의하여 수치(數値)화해 기록한다. 그 기록으로 추적하고, 평가한다. 제품을 뺄 것인가, 더 공급할 것인가가 바로 결정이 된다. 효율성과 효용성의 총아이다. 그래서 가장 비인간적인 비유의 상징물로 쓰이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 바코드가 새겨질 날이 온다고들 예전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실제 많은 산부인과에서 신생아들의 손에 갓 태어난 그들에게 나올 수 있는 정보들을 수치화한 바코드가 새겨진 팔찌가 채워지기도 한다. 부모는 신생아를 안고 그저 부푼 마음으로 아기를 안고 떠난다. 자신의 품에 안긴 아기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항목의 정보를 병원에 남기고. 산부인과에서 신생아에 대해서 어떤 항목들을 체크하고 기록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에 그 항목들 중 몇 가지를 입시나 입사시험의 평가요소 중 하나로 집어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요컨대 태어났을 때 체중, 예정일과의 차이, 산모의 진통 시간, 입원 일수,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갔는지 여부 따위가 들어간다면 출산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그 변화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그런 변화를 만들 사람들이 떠들어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가 타이틀을 붙이고 나올 그런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아도 제대로 반박하기 힘들다. 하물며 그들이 정부와 언론의 대대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나올 경우 그 변화에 따르지 않으면 뒤쳐진 것 같고, 예전에는 그런 기록에 의한 평가도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원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바코드가 발명된 것은 꽤 오래 되었다. 1952년에 미국에서 정식으로 특허를 받았지만, 슈퍼마켓에서 쓰이기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이후 바코드는 유통업계, 이어서 당연히 전체 마케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제품의 흐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 바로 드러났다. 기다릴 필요가 없이 판매대에서 빠지게 되었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바코드야말로 유통과 제조업체 사이 힘의 균형의 변화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테스트 마켓이 본격적인 제품 출시의 사전 필수 절차가 되고, 출시에 맞춰 대단위의 전방위적인 마케팅 투자를 강요한 요소라고도 생각한다. 

바코드를 읽어 가격비교를 하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앱을 설치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찍어 다른 곳과 가격비교를 한다. 그들이 과연 가격비교한 결과를 보고, 실제 제품의 구입을 연기하는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마도 제품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행동 변화와는 관계없이 제품에 대한 구매의사는 거의 파악이 된다. 개별 사용자의 인구통계학적인 정보는 없지만, 그들의 데이터를 모으면 인적 프로파일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생생한 소비자 행동 자료가 축적이 되는 것이다. 그 앱의 힘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해당 상품에 대한 이제 단순한 가격 비교를 넘어서,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다른 정보 소스와 연결시켜주는 QR코드도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얼마 전 “QR코드가 정말 마케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인가, 그냥 패드로 지나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를 하나 보았다. 기사를 쓴 친구는 전자의 혁명적인 변화에 표를 던졌다. 나는 그에 대해서 반대 입장이다. 우선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보는 이미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QR코드로 통해서 본다고 하더라도 구매를 더욱 축발시킬 강력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마케터의 경우에 일반 바코드에서 파악되지 못하던 소비자의 정보가 첨가된다는 이점이 있다. 이 역시 아주 한정적이다. 아마도 바코드로 이미 빨라진 호흡을 더욱 빠르게 촉진하는 정도의 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거칠게 얘기하면 이미 너무나 많은 분석 요인에 몇 가지가 더 부가되는 정도의 영향에 그치리라 예상한다. 그런 것들을 마케팅의 혁신이요 혁명이라고 얘기해야만 되는 게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대표적인 분야로 나는 소위 뉴로마케팅을 든다. 소비자의 뇌파나 뇌신경의 반응까지 이제 수집과 분석의 대상으로 곧잘 나타난다. 그런 사례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을 볼 때마다 생체에 바코드가 찍힌 칩을 삽입, 부착하는 매트릭스와 같은 SF영화나 소설이 생각난다. 그렇게까지 해서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 생산성의 향상?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톱니바퀴처럼 생긴 거대한 기계가 왜소한 인간을 물체에 붙여 끌려가는 모양새를 만든다면, 매트릭스는 물체와 인간의 구분을 흐리는 이상으로 물체에 정신까지 뺏겨 조종당하는 인간을 그려낸다. 결국 인간은 사라지고 숫자, 곧 데이터만 남게 된다. 마케터들은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면 될 수 있는 한 많이 모으려 한다.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분석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평가를 하고자 한다. 줄을 세우려 한다. 결국 바코드에 새겨진 줄과 같은 형태로만 존재하게 될 수 있다. 서보명 교수는 대학계에 나타난 그런 현상들을 보여 준다. 책 표지의 학사모는 바코드를 걸기 위한 소품일 따름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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