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를 떨쳐내자

입력 2011-03-18 11:21 수정 2011-03-18 11:21
이노션 사보 창간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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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를 떨쳐내자




        어느 문학평론가는 1960년대 말에 발표한 글에서 한국을 ‘에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했다. ‘에비’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에비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가상적인 존재나 물건’이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데 뭔가 위해를 줄 수 있는 것을 ‘에비’라는 단어로 형상화했다. 마케팅적인 용어로 한다면 브랜딩을 한 것이다. 어린 애들이 무언가를 만지려 할 때 “에비! 에비!”하면서 못하게 하거나, 막무가내로 울 때 “에비 온다, 에비!”하면서 겁을 주는데, 에비가 뚜렷하게 무엇인지는 아이는 물론이고 그 말을 하는 어른들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실체를 모르는 게 오히려 더 큰 공포감을 자아내어 ‘에비’를 외친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에비’라는 브랜드로 만들어 구성원들에게 주입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막아왔다고 그 평론가는 주장했다. 그래서 ‘에비문화’라는 에비 브랜드의 확장까지도 그리 낯설지 않다. 굳이 ‘에비’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어도, 행동에 대하여 얼마나 유무형의 얼마나 많은 제약과 억압이 있었던가? ‘왜’나 ‘무엇’ 때문에 그런지 확실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그저 마음속에 에비를 각인하도록 강요당하면서 새로운 시도나 변화의 포기를 종용받았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트렌드의 변화는 그런 에비문화적인 요소를 떨쳐내는 과정이었다. 세대별로 특성을 잡아내면서, 각각 어떤 에비를 물리치는 용감한 행동을 펼쳤는지 살펴보자.




경제에서 정치와 문화를 거쳐 디지털 세대까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이 경제의 근간이었던 시대에는 당연히 어울린다. 물론 그런 시대에도 가난을 구제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하기는 했다. 의창(義倉)은 역대 모든 왕조에서 설치했던 대표적인 구휼기관이다. 그러나 의창은 거의 항상 관리들의 사복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그런 관리들을 감찰하고 엄중하게 다스리는 훈령을 내리고 실행하곤 했지만, 단기적인 효과만을 거둘 뿐이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할 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쓰였다. 그래서 이 말은 때로 위정자들의 비겁한 핑계로 쓰이기도 했다.


        일제의 침략과 한국전쟁은 한국을 세계 경제로 편입되게 떠민 측면도 있었다.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 위주에서 2차,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위에서 얘기한 나랏님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체념의 ‘에비’를 떨쳐내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구호들이 등장했다. 현재 55세 이상의 세대가 바로 그 주역들로 ‘경제발전 1세대’이다.


        그들의 구호와 정권을 잡은 이들의 면면에서 보듯 수천 년 이어온 가난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은 군대식으로 이루어졌다. 집권자들은 민주주의란 한국과 맞지 않고, 경제발전을 효율적으로 이루는 데 방해요소라는 ‘에비’로 규정했다. 1960년의 4·19혁명은 위대했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이식과 장착을 완성하기에는 나라와 국민 전체의 정치적 민도와 경제 환경이 여의치가 않았다.


        경제발전과 안보를 내세우며 국민을 아무 소리 못하게 억압하던 철권통치가 풀리는 것은 1987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물론 군사정권의 전 시기 동안 꾸준한 저항이 이어졌지만 범국민적으로 불길이 솟아,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은 ‘87년에야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후에 ’386세대‘라고 불리게 된 현재 40~50대 초반의 세대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경제발전과 안보를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에비‘를 철저하게 정서적으로 주입받으며 교육을 받아 왔다. 한편 이론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정치체제와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해서 보다 광범위하게 배운 세대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정서적인 ’에비‘를 과감하게 맞서 부수는 용감성을 발휘하게 된다. 이들을 ’정치민주화 1세대‘라고 부른다.


        88서울올림픽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 땅에 몰린 행사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글로벌이라는 개념이 한국인의 의식 한 켠에 자리 잡는 실질적인 계기가 된 행사이다. 어느 정도의 경제 성과와 정치적인 민주화 토대 위에서 한국인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가와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일었다. 미국의 어느 시사 잡지가 1989년에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기사에서 지적할 정도로 분출되었다.


        문화개방과 해외여행의 자유화 등은 한국인들의 그 욕구를 다양하게 지원해 주었다. 약간은 한풀이적인 성격을 가진 기성세대의 해외여행이나 유흥문화와 대비되어 자연스럽게 인생의 한 배움 과정으로서 해외문물을 익히는 세대가 나왔으니 이들이 바로 지금의 30대들이다. 해방 이후 금기시되었던 일본문화상품까지 ‘90년대 개방되면서 이들은 문화 관련한 금기의 ’에비‘가 어떻게 쉽게 깨질 수 있는 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스스로가 즐길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류(韓流)‘의 성공은 이런 개방된 문화를 즐길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 세대를 ’글로벌문화향유의 1세대‘라고 명명했었다.


        바로 위에서 얘기한 샴페인 이야기가 증명되었다며 다시 봇물 터지듯이 나온 게 바로 1997년의 IMF 위기 때였다. 그 절망적인 상태에서 한국 사회와 경제에 한줄기 빛으로 작용한 것이 바로 ‘디지털’이었다. 한국이 디지털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IMF의 경제식민체제를 일찍 졸업하는 데는 ‘IT강국’을 표방한 정부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지만, 비교적 집약되어 새로운 유행이 빨리 퍼지고 공유될 수 있는 시장 형태와 국민성이 큰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세계 최고의 디지털기업으로 등극한 기업을 고객으로 브랜드전략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 기업의 변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시장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을 가질만한 자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앞서 가던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양쪽에 엉거주춤하게 한발씩 걸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그 기업은 과감하게 디지털로 일로매진할 수 있었다.


        소비자 측면에서 디지털의 선두에 선 이들이 있었다. 바로 IMF를 10대 중반 이전에 맞이했던 지금의 20대이다. 이들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과 함께 자라났다.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는 이들을 ‘디지털 1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컴퓨터나 핸드폰은 마구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침대에서 자신의 옆에 재우는 인형과 같은 생활의 일부이다.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전문가들이나 다루는 기기라는 인식이나, 극히 한정된 기능 외에는 감히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행태와 같은 ‘에비’가 이들에게는 아예 없었다. 사용설명서도 없이,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는데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기들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 윗세대에게는 경이롭고 용감하게 비추어졌다. 이들 자신에게는 그런 얘기 자체가 매우 의아하게 들리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에비’를 아예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행태가 용감하다고 전혀 생각해보지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앞 세대의 자산을 이용한 용감함

        

        가장 용감한 행위는 디지털 1세대가 디지털 기기들을 다루는 것처럼 본인은 용감하다고 의식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나온다. 우리가 무언가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몸도 굳고 부자연스러워지며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엇박자가 나기 쉽다. 그리고 용감한 행위 자체가 절실한 필요에서 나와야 한다. 절실하게 필요하면 꼭 이루고, 어떤 난관이든지 극복하며 새롭게 시도해 보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그것이 바로 용감한 행위이다. 용감함은 책상 위의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용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용감하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체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갖추지 않은 채로 용감한 것은 만용이다. 무언가 바탕이나 원재료가 있는 상태에서 용감함을 통해 성취가 가능하다. 현재 20세 이후의 세대를 ‘경제발전 1세대’, ‘정치민주화 1세대’, ‘글로벌문화향유 1세대’, ‘디지털 1세대’로 분류했는데, 이들 각 세대는 그 나름의 절심함과 함께, 세대를 가르는 성취를 이루는 데 쌓인 기반을 충분히 활용했다. 정확히는 앞선 세대의 성취가 뒷 세대의 기반이 되었다. ‘경제발전 1세대’는 전후의 절박한 상태와 유례없는 교육열과 사회적 지위상승의 욕구가 어우러졌다. 실전과 준전시상태를 통해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린 군사문화도 역설적으로 한몫했다. ‘정치민주화 1세대’는 발전된 경제가 전해준 생활의 여유가 정치적 자유를 외치고 그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글로벌문화향유 1세대‘는 검열을 거친 반쪽짜리 사상이나 예술이 아닌 다양한 그림을 백지에 그릴 수 있는 정치적 자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디지털 1세대‘는 단순한 디지털기기보다 디지털을 통해 소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세대는 한때 신세대였다. 신세대는 어떤 사회이든지 항상 존재한다.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던 ‘에비’를 용감하게 떨쳐내고 모두들 그들 나름의 화두를 만들고 이루어간다. 우리 사회의 중추로서 트렌드의 중심을 잡는 세대의 나이는 계속 어려졌다. 경제발전세대는 30대, 정치민주화는 선배들과 연계된 20대 대학생들이었다면 글로벌 문화향유는 20대 초반과 10대 후반이 그 흐름을 이끌었고, 디지털은 10대가 최선두에 서있었다. 과연 새로운 세대는 어떤 용감성을 발휘하여 화두를 발견하고 이루어갈 것인지 바로 앞의 트렌드로서, 그리고 장기적인 트렌드를 파악하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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