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나타난 'Brave'의 사례

입력 2011-03-05 09:43 수정 2011-03-05 09:43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킨다

- 역사에서 찾는 "Brave“의 유형

2004년 7월 섭씨 30도가 훨씬 넘는 햇빛이 호텔 밖으로의 발걸음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듯이 무더운 미국 남동부의 재즈의 본고장이라는 뉴올리언즈에 며칠 머무르고 있었다. 매년 미국광고협회(4A: American Association of Advertising Agencies)에서 주최하는 광고에서 전략 부문을 담당하는 어카운트 플래너(AP : Account Planner)들을 위한 ‘어카운 플래닝 컨퍼런스(Account Planning Conference)’가 그 해 바로 뉴올리언즈에서 열렸다. 당시의 주제가 바로 ‘Brave Thinking(용감한 생각)’이었다. 첫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친구가 기후에 빗대어 “대체 7월에 뉴올리언즈에서 컨퍼런스를 하겠다는 것보다 더 용감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는가?”하고 농담을 해서, 청중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다는 자체로 뭔가 상당히 용감한 행동을 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느낀 친구들이 꽤 되었을 게다.

그 해의 컨퍼런스는 사실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어카운트 플래닝의 역사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 AP들이 광고의 발전에 얼마나 공헌했었던가 하는 발표들과 시상 등이 이어졌는데, 그렇게 용감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AP들이 과거의 영광스런 시기를 회고하며 위안을 얻는 자리로 컨퍼런스가 열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해 8월말 뉴올리언즈가 전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뉴올리언즈는 카트리나라는 태풍에 의한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도시 안에서 곪고 있었던 인종과 사회적 갈등이 모두 표면으로 드러나 버렸다. 도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관광깨 수가 급감했고, 인구도 1/4 이상이 줄었다. 태풍이 보통 8월말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하지만, 어쨌든 그 전해 7월 우리가 컨퍼런스를 하고 있는 동안 이런 태풍이 닥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섬뜩했다. 정말 그 1년 전 우리가 용감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란 극히 낮은 확률로 발생할 우려가 있었던 태풍이 올 지도 모르는데 뉴올리언즈로 가서 컨퍼런스에 참가했다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걸고, 버리며 얻는 용감함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그의 의형제인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고 친히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의 아이들까지 유비의 별칭인 유황숙이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초반에 위세를 떨쳤지만, 결국 오나라 육손의 불공격에 크게 패하고 오나라 국경에 위치한 백제성으로 후퇴하였다. 시름에 잠긴 유비는 병이 들어 결국 백제성에서 죽음을 맞게 되어 제갈량을 비롯한 중신들을 그리로 불러 유언을 남긴다. 죽음을 앞둔 유비는 제갈량이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한다.

“만약 내 아들이 보좌할 만한 인물이라면 그를 보좌해주고, 만약 재능이 없다고 여겨지면 자네가 직접 성도의 주인이 되도록 하게.”

이 순간이 예순 셋의 나이로 40년간 전장을 누빈 유비가 가장 그 용감함을 발휘했던 순간으로 본다. 유비는 그의 자식과 나라를 걸고 유언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그의 모자란 아들 유선의 안전과 제갈량의 충성을 확보했다.

사실 유비는 낯 두껍고 속마음을 감추는 ‘후흑(厚黑)’의 대푲 인물로 꼽힌다. 그런데 이 후흑은 무언가를 버림으로써 이루어진다. 유비가 가장 잘 버린 것은 자신의 체면이었다. 조조와 둘이 식사를 하면서 ‘천하의 영웅은 나 조조와 당신뿐’이라는 조조의 지적에 유비는 속마음을 들켜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 때 마침 천둥이 치자 유비는 천둥소리에 놀라 그랬다며, 천둥소리 따위에 놀라는 소인배로 자신을 비춰 결국 조조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도 유비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눈물을 흘려서 모면하는 눈물신공을 발휘하는데, 그 역시 자신의 체면 따위는 대의를 위하여 아낌없이 버린 용감한 행동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자신을 버려서 더 큰 일을 도모하고 이루어내는 용감함을 보여준 사례는 꽤 많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같은 사자성어의 주인공인 춘추시대 월나라의 패자인 구천(句踐)이 군주 중에서는 대표적인 예이다. 오나라 왕 합려(闔閭)와의 1차 전쟁에서 자신의 즉시전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사형수들을 적군 앞에 내보내 스스로 자결을 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한 행위로 오나라 군대의 얼을 빼놓은 후 양동작전으로 승리를 거둔다. 그렇지만 섶 위에서 자면서 복수의 칼을 갈은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夫差)에게 패하게 된다. 천하의 미녀인 서시를 바치고, 최고의 보물을 바치며 신하의 예를 지극정성으로 하면서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결국 쓸개를 핥으며 기회를 노린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켜 22년 동안의 오월 두 나라의 긴 싸움을 마무리하며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자로 떠오른다. 사형수이지만 자신의 부대원들과, 미녀, 보화, 왕으로서의 특권까지도 버릴 줄 아는 용맹을 지닌 구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터 건달들의 다리 사이를 기어갔던 한신(韓信)은 결국 산을 뽑는 힘과 하늘을 덮는 기개를 지닌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중원의 주인으로 만든 영웅이 되었다. 사마천(司馬遷)은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서 남성을 거세당하는 궁형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에서는 궁형을 내릴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는 선택권을 주었고, 대부분의 경우 자결을 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하면서 궁형을 선택했고, 결국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사마천이 당시의 여느 남성들과 같이 자존심을 내세워 자결을 하였다면 그의 이름은 한무제(漢武帝) 때 죽임을 당한 숱한 관료들 중의 하나로 단지 재판기록에나 남았을 것이다.

 

용감함도 3S를 갖춰야

 

위에든 인물들과는 다른 부류의 용감함을 보여준 사람들도 물론 있다. 2차대전 때 말레이지아에서 용명을 떨쳐서 '말래야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야마시따 도모유키가 일본 육군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어느 시험에 "고지의 전황은 불확실한데, 어떻게 점령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오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고지의 상황은 모른다. 고지를 향하여 전진!" 전쟁에 돌입하기 전의 일본의 정보활동은 정말 뛰어났다. 그런데 실제 전쟁에 돌입해서는 야마시따와 같은 무모한 저돌성만 빛나게 되었다. 처음의 승리에 너무 도취한 측면도 있고, 자원 자체가 워낙 부족해서 정신력만을 강조하다보니, 꼭 해야 될 부분을 스스로 잊어버린 면도 있다. 태평양에서의 승패를 가린 미드웨이에서의 패배 역시 정보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인의 무사도, 정신력, 애국심에 바탕을 둔 용맹함은 모두들 높이 산다. 그렇지만 어느 전쟁사학자는 일본의 용맹성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신도(神道)에 기반을 둔 종교적 신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는 데 가치를 높게 두어, 결과적으로 전략적 차질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심하게 얘기하면 전체 전략의 큰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개인적 구원 차원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반어적 이기주의가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군의 또 하나의 약점은 바로 보급이었다. 전방의 소총수 하나를 위하여 미군의 경우 18명이, 영국군은 8명이 지원을 해주는데 반해서, 일본은 거의 동수가 배치되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아예 없애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얘기를 보면, 상륙 자체보다 그를 위한 물자들의 확보와 수급에 걸린 시간과 노력이 실전에서의 전투력 그 자체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당시 보급을 맡은 장군의 표현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와 같은 도시 전체를 옮긴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 말이 정말 실감이 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디트로이트와 같은 도시를 옮겨서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하여 그런 도시를 확보하라는 식의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잘 나갈 때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삐끗하면 바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계획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맥아더는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략의 3요소를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 Situation : 전황 파악 위한 정보력

- Support : 적절한 지원과 보급

- Spirit : 넘치는 사기와 정신력

제대로 된 용감함을 위해서 정확한 상황의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거기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목적지를 방향을 수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자원들을 조달하는 ‘지원’ 작업을 하게 된다. 그 전 과정을 통하여 일관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감함을 만드는 열정과 의지이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무뎃뽀(無鐵砲)’ 정신을 부르짖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말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인데, ‘지원(Support)'과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이런 말은 사전에서나, 영화에서나 보았으면 한다.

 

2004년의 컨퍼런스 둘째 날, 중간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재항(Jaehang)!'하면서 외치듯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나를 부르나 하면서 귀를 의심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미국 친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서 있었다. 1997년 가을에 마지막으로 보고, 이후에 소식도 서로 전하지 못한 브래들리 피칵(Bradley Peacock)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서로 동시에 ’Oh, my god'을 외치며 껴안았다가, 팔은 서로 엉긴 채, 상반신만 약간 뒤로 제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껴안는 동작을 몇 번 반복했다.

재즈와 함께 뉴올리언즈를 대표하는 것이 동성애이다. 철학을 하고,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힘껏 내는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자와는 다르게, 성행위 자체에 큰 비중을 두는 동성애자가 범람하는 도시 중의 하나인 뉴올리언즈의 남자 화장실에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펄쩍펄쩍 뛰면서 껴안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껴안는 동작을 반복했다. 남에게 동성애자로 비추어진다는 우려 따위는 몇 년 만의 재회를 위하여 버렸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욱 진한 우정을 만들었다. ‘용감한 생각’을 주제로 내세운 뉴올리언즈의 컨퍼런스에서 우리가 한 가장 용감한 행동이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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