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가는 혁명의 브랜드

입력 2011-02-20 22:23 수정 2011-02-20 22:23


1789년 프랑스혁명을 생각할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바스티유감옥에서 간수의 머리를 꼬챙이에 끼워서 나오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이 거칠게 표현된 그림, 길로틴과 그에 의한 처형이 주로 행해졌다는 역설(逆說)적인 이름의 콩코드광장, 초기 혁명 지도자 중 하나인 쟝-폴-마라가 욕조 안에서 ‘암살의 천사’라고 후에 어느 시인에 의해 명명되기도 한 샤를롯 코르데에게 살해당한 직후의 모습을 묘사한 걸작 ‘마라의 죽음’도 떠오른다.(그림참조) 내게는


중학 시절 어느 학생 잡지에 연재되었던 ‘베르사이유의 장미’란 만화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런데 만화는 말할 것도 없고, 위에서 얘기한 이미지나 장소들 모두 혁명정부부터 시작하여 이후의 프랑스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프랑스혁명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정된 바 없다. 공식적으로 프랑스혁명의 상징 역할을 현재까지도 오래도록 하고 있는 경우는 ‘마리안느(Marriane)'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성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의 프랑스풍 과자도 있듯이, 마리안느는 예전의 우리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영희’처럼 보통의 프랑스 여인을 지칭한다. 그래서 혁명의 주축인 민중의 대표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내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마리안느는 몇 차례의 프랑스혁명 때마다 약간씩 다른 모습으로 혁명을 지도하고 상징하고 나중에는 기억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1830년 혁명을 배경으로 한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히로인으로 등장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프랑스 전체에 무려 3만 개가 남는 마리안느 상(像)이 최초의 프랑스혁명 이후 세워졌다고 한다. 심지어 1999년 9월에는 프랑스 정부의 로고로까지 등장했다. (그림 참조) 프랑스혁명의 상징으로 마리안느가 가장 효과적으로 오랫동안 남게 된 배경에서 브랜드적으로도 몇 가지 원용할 부분이 있다.








 

1. 익숙한 것을 이용하라

프랑스혁명은 당시로서는 역사적인 지각변동을 갖고 온 사건이었다. 혁명정부는 그것을 표현하고, 사람들이 실감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존의 그레고리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혁명력을 제정했다. 혁명력은 1년을 12달로 하기는 했지만, 한 달을 30일로 했고, 1일을 10시간, 1시간을 100분으로 하는 혁명정부가 자랑하는 십진법을 적용토록 했고, 종교축일이나 휴일을 모두 없애 버렸다. 당연히 엄청난 혼란을 불러 왔고, 결국 1806년에 나폴레옹이 다시 그레고리력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은 나폴레옹이 내린 가장 인기 있는 결정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위에서 얘기한 대로 ‘마리안느’는 프랑스인 모두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평민들에게 자신과 같은 그야말로 ‘장삼이사(張三李四)’, 이웃집 여인네 같은 마리안느는 생활 속 혁명을 표상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새롭게 한다고,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만든다고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기존의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새롭게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도 거부감을 최소화한다.

 

2.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라

혁명 초기 마리안느는 카톨릭의 성모 마리아를 모델로 했다. 혼란 와중에 균형을 잡고,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기대하며 화가들이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급진적인 쟈코뱅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마리안느는 가슴을 풀어헤친 야성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혁명이후의 반동시대에 마리안느는 조용한 모습으로 좌상(坐像)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들라크루와의 명작에서 보듯이, 시대 상황에 맞춰 마리안느는 민중을 이끄는 격한 혁명의 기수로 돌아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968년의 드골을 실각시킨 학생혁명에서 젊은 대학생의 모습으로 시위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는 1999년의 세련된 모습으로까지 진화했다.

‘제품은 변하고 없어지지만, 브랜드는 영구적이며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브랜드에 관한 모든 책에 비슷하게 실려 있고, 관련 강의를 하면 자주 언급되는 구절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브랜드에 관련된 어떤 요소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브랜드 에센스라고 잡아 놓은 의미도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바뀐다. ‘50년대의 ’안전‘과 ’80년대의 ‘안전’과 21세기의 ‘안전’은 공통된 부분이 크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 캐릭터로 유명한 장수 브랜드의 대부분이 시대 유행이나 사회상에 따라 캐릭터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안느의 유연한 변화는 눈여겨 볼만하다.

 

3. 압도적인 상징물 하나를 세워라

19세기말과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으로 꿈을 안고 오는 이민자들에게 긴 여행의 끝이 났다며 뉴욕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며 맞이한 거대한 구조물이 바로 뉴욕항 어귀 리버티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다. 정식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횃불과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축하 선물로 모금을 통하여 주조해 기증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제작할 때 모델로 삼은 게 바로 실제 인물은 아니더라도 마리안느였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의 상징물로 세계인들에게 인식이 되어 있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혁명의 동지로서 이국땅에 현신한 마리안느가 먼저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계속 남아 있는 한, 마리안느를 내세운 프랑스인의 자부심도 함께 할 것이다.

 

1999년에 마리안느를 가지고 만든 프랑스 정부로고에는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이라고 하는 “자유·평등·박애”가 새겨져 있다. 위에서 시각적 측면에 주로 초점을 맞춰 마리안느가 강력한 브랜드로 긴 세월을 두고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을 얘기했는데, “자유·평등·박애”란 인류가 추구할 의미를 바탕에 두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미가 먼저이다. 운용하고 효과적으로 알릴 도구는 그 다음에 고민해도 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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