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빌딩과 냉장 수송 와인

입력 2011-02-16 22:13 수정 2011-02-16 22:13


며칠 전 오후에 서울대에서 열린 브랜드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김에, 그곳에서 가까운 낙성대역 근처의 선배 사무실을 방문했다.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로 나름 절친한 사이라 생각하는데, 몇 번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만난 지 한참 되었다. 그 선배가 확실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후배로서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인사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며 얘기할 겸 들르기로 했다. 일러준 대로 역에서 나와 작지만 깨끗한 빌딩 앞에 섰는데, 빌딩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빌딩>. 바로 옆에 보쌈집과 분식집, 호프집이 줄지어 있는 가운데 있는 빌딩에 어떤 연유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했다.

 

선배가 저녁을 함께 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이름은 빌딩의 주인이 직접 붙였단다. 박민규 선생님이란 분인데, 현재 그 빌딩에 있는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시다. http://www.iphilos.com의 연구소소개 부분을 보시길 바란다. 간단히 말하면 서울교육대학 ‘68학번으로서 그때부터 어린이 철학교육에 매진해, 1986년에 현재의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를 창립했고, 2003년에 현재 위치에 빌딩을 지었다.

 

박민규 소장님이 교사 생활을 얼마동안 하셨는지는 듣지 못했으나, 그 형의 얘기로는 ‘70년대 말부터, 학교 밖에서 어린이 철학교육을 시작하셨단다. “그 때 어린이 철학교육을 해서 생활이 어떻게 되었지요?”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올라서 물었다. “고생하셨지. 10여년을 고생하시다가, ’80년대 말부터 경제적인 문제가 풀렸대. 3년 열심히 하니까, 나중에 이렇게 빌딩까지 지을 수 있는 돈이 생겼다고 하더라.” 어린이 철학교육이란 ‘70~80년대 정말 돈도 안 되는 외길을 개척하고 걸어오셨다는 데서 정말 존경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선배는 어린이들의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만들고, 가르치는 일을 한다. 어린이 한 명에게 1주일에 한 시간 반만 학원에 나오도록 해 교육을 시킨단다. 프랜차이즈 식으로 학원을 다른 지역에 개설하는데, 역시 다른 과목의 학원을 다니면 안 되고, 36시간에 걸쳐 교육방식 지도를 받아야만 한단다. 당연히 그 선배도 경제 형편이 좋을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빌딩의 주인께서는 3년 동안 임대료를 받지 않고 공간을 제공해 주셨다고 한다. 작년부터 선배의 형편도 좀 나아져 선배 나름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임대료를 드리고 있단다. 놀랍기도 하고,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형도 그렇게 버티고 오신 것도 대단해요.” 웃으며 대답한다. “명분이 있고 옳은 일을 하면 어떻게든 되더라.”

 

바로 다음 날 와인수입상을 하고 있다는 친구를 또 오랜만에 만났다. 군대동기로 만난 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금융 계통에서 줄곧 일을 했는데, 서울과 뉴욕에서 7~8년 주기로 우연히 한 번씩 만나곤 했다. 마케팅 관련하여 자문 받을 일이 있다고 다급하게 전화가 왔는데, 조언보다는 오랜만의 만남 자체가 좋아서 나갔다. 그리고 어떤 연유로 와인수입을 업으로 하게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아는 분이 강권하다시피 맡겨서 할 수 없이 와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와인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고 한없이 겸손을 떤다. 와인이라고는 입으로 마시는 것 밖에는 모르는지라 계속 물어보다보니 겸손함 뒤에 쟁여 놓았던 와인 이야기와 지식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말 첫머리는 ‘내가 와인에 대해서 모르지만 말이야~’로 시작한다.

 

약간 취기가 올라서 말했다. “내가 와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말이야,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어. 운송비가 세 배 차이가 나지만 꼭 냉장 컨테이너로 운송을 해.”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원칙에 위기가 있었단다. 물량이 제대로 모여지지 않아서 컨테이너 반만 채워서 가져오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보통 컨테이너 운송비용 대비 6배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 된 것이다. 양이 얼마 안 되니까 그것들은 보통 컨테이너로 해서 비용을 줄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단다. 결국은 그의 원칙을 지켜 냉장 수송을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는 미쳤다고 했을지도 몰라. 근데 그렇게 하니까 손님들 보는데 뿌듯하고, 와인에 미안하지 않고, 무엇보다 내게 떳떳하더라고. 이왕 하는 것인데 와인의 맛을 최대로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피해서야 되겠어! 그렇게 하니까 당장 손해를 보는 듯해도 장사는 되더라구.” 아마도 그 원칙마저 지키지 않았을 때에, 당장 사는 것 같아도 결국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브랜드를 한다는 것은 광의의 의미에서 바로 그렇게 선배처럼, 그 선배를 도와준 소크라테스빌딩의 주인처럼, 와인을 냉장 수송으로 들여오는 친구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여 원칙을 저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로 브랜드가 필요하다. 머릿속 원칙은 있어도 그것이 문자 혹은 형상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면 인간은 잊어버리고 쉽사리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그런 원칙을 나타내는 기재로 협의의 브랜드가 구별 이외에 내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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