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광고주가 되는 길

입력 2011-02-12 06:17 수정 2011-02-12 06:17


매일경제에 실은 글(http://bit.ly/fMBuoq)의 원문.
신문에 실린 글은 워낙 줄여놓아서 뜻이 잘 통하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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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광고주가 되는 길

10년 이상이 된 일이다. 당시 다니던 광고대행사의 CEO를 맡고 계시던 분께 광고주들이 제대로 하지를 못해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며 불평을 마구 늘어놓았다. 광고대행사에서 잘 하던 얘기도 덧붙였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드는 겁니다.” 눈을 감고 그 긴 불평을 쭉 듣고 계시던 그 CEO께서 말씀하셨다. “정 그렇다면 광고주를 좋은 광고주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불평만 해댔지 실제로 어떤 광고주가 좋은 광고주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불평만 내뱉고 다녔었다. 광고대행사 입장에서야 소위 전문가라고 자부하며, 광고대행사에서 하자는 대로 하는 광고주를 좋은 광고주라고 명명하여 광고주 측에서 나올 수 있는 이견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경구를 만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측면에서는 광고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의 방어막을 미리 만들어 놓은 약간 비열한 의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후 과연 좋은 광고주란 어떤 사람들인가부터 세세한 조건까지 규정해 보는 것을 업계 종사자로서 과제의 하나로 삼았다. 계약서상의 ‘갑’과 ‘을’의 존재가 뚜렷이 나누어진 우리 사회에서 사실 주로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갑’은 모름지기 이래야 좋은 ‘갑’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거나 만용에 가까운 화를 자초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는 소리를 업계에서 가끔 듣는데, 좋은 광고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리하여 이야기해주는 경우는 제대로 보지를 못하여, 한때 같은 소리를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느껴 여기에 좋은 광고주가 되기 위한 요건들을 적는다. ‘광고주와 대행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썼으니, 광고주로서 대행사를 제대로 부리는 법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다.

 

판매인가 예술인가? - 전략방향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라

 

지난 해 4월 세계 최대 대행사 중의 하나인 오길비(Ogilvy)에서는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을 찾아라(The Search for the World's Greatest Salesperson)"이란 행사를 주최한다고 발표했다. 평범한 빨간 벽돌 한 장을 파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주어진 과제였고, 예선을 거쳐 최종 3인이 칸느광고제에서 결선을 하는 대회였다. 이는 2009년 창업자인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의 별세 1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행사의 하나로 기획되어 시행된 것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광고인이 되기 전의 다채로운 자신의 경험 중에서 세일즈맨 활동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평생을 통하여 ”사람들은 지난 밤에 TV 광고에서 한 농담 때문에 새로 나온 세제를 사지 않는다. 제품의 혜택을 얘기해야만 팔 수 있다“라고 한 말처럼 실제 제품을 파는 것을 광고의 최우선 목적으로 삼았다.

제품 판매를 광고주가 광고의 목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제품 판매에 이르기 위한 경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여러 광고물들이 시리즈로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집행되는 광고캠페인의 경우 시기나 매체 종류에 따른 각각 광고물들의 역할과 세부 목적은 다를 수 있다. 광고주의 성향이나 당면한 상황에 따라서 또한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든 화제를 불러일으키라고 한다거나, 예술적인 완성도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든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개인적인 기호에만 영합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경우 단편적으로는 있을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광고주는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제품 판매와 같은 궁극적인 목표를 포함한 다른 목적들과 어떻게 융합되어 화음을 연출할 것인지, 바로 전략방향과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광고에서 ‘여러 가지를 얘기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얘기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광고주로서 여러 방향을 준 것은 결국 아무 방향도 주지 않은 것이다.

 

창구를 일원화하고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하라

 

광고대행사를 다니며 얻는 가장 큰 장점으로 다양한 업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그리고 광고주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비자 쪽에서 생각하기가 용이하다. 예를 들면 광고주의 경우 제품 개발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기술의 한계까지도 명확하게 알고 있어서 시각이 제한되어 있는 데 비하여 광고대행사에서는 얼토당토않을 수도 있지만 광고주 쪽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하여 외부 대행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광고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박스를 외부 대행사의 힘을 이용하여 넓혀야 한다. 그런데 대행사를 자신의 박스 안으로 우겨서 집어넣으려 애를 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같은 편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데, 그들에게 자신이 내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라고 강요하면 대행사를 쓸 이유가 없다. 대행사에 특정제품에만 단기간 전담토록 하는 것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특정제품만을 다룬 사람만을 요구하는 것은 대행사를 이용하는 혜택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이다. 다른 소리를 내도록 다른 부문에서의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자신의 제품을 담당하도록 대행사에 요구하는 것이 좋다.

대행사의 인원들은 제품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에서는 광고주보다 전문성이 떨어질지 몰라도, 광고물 디자인이나 스포츠 행사 진행 등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적인 영역들에서 대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거기에 집중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업무에서의 전문성을 사기 위하여 대행사를 쓴다. 대행사 내부에 다양한 업무의 전문가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소규모 대행사의 경우 외부 자원을 조직하여 쓴다. 바로 그 외부의 다양한 자원을 쓰는 노하우가 바로 자신의 전문 분야인 대행사들도 많다. 그런데 대행사를 쓰면서 각 분야마다 직접 개별적으로 세세히 관여하는 광고주들이 꽤 있다. 세부적, 전문적인 분야를 맡기고 큰 방향을 잡는 전략에 관한 고민을 하라고 대행사를 쓰는 것이다. 그런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대행사를 대표하는 1차 창구를 설정하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보통 어카운트서비스(Account Service), 한국과 일본에서는 AE(Account Executive)라 불리는 이들이 대행사에서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을 광고주로서 대행사에 파견한 전권대사처럼 활용해야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고객들과의 새로운 접점과 매체가 속속 출현하는 환경에서 이런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브랜드는 기본이다

 

“결정은 내가 내리지만, 책임은 당신이 지는 거야(I make a decision, and you take the blame)!" 오래 전 미국의 광고업계 잡지에 실린 카툰에서 광고주가 대행사 직원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파트너쉽’이란 미명으로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의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관계가 그럴싸하게 포장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소비자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욕구나 문제를 얘기하는 ‘인사이트(Insight)'에 관한 대가로 인정받으며 현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 리사 포티니 캠벨(Lisa Fortini Cambell)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광고대행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와 대행사의 미래에 관하여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대행사 초년병이라도 우리는 광고주에게 가면 의례 CEO나 최고마케팅담당자인 CMO를 만나곤 했거든. 근데 차차 만나는 광고주의 직급이 내려오더라고. 그러니 의사결정권자의 뜻도 제대로 알 수도 없어 광고주 맘에 드는 광고를 만들기 힘들어지지. 그리고 어쩌다가 만나니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며 항상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예외적으로 약간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최고의사결정권자로 CEO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대행사에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해버리는 광고주도 꽤 있다.

‘90년대 중반의 어느 한 광고주 CEO는 보통 시사할 때만 광고대행사 사람들을 만나는데, 자신이 의견을 말하면 만든 대행사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 없이 받아 적기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한번 조심스럽게 대행사의 제작담당 임원이 CEO의 지적사항을 이미 감안했다고 응답을 했다. 시사 프리젠테이션은 거기서 끝나고, 회사로 들어온 임원에게는 광고주로부터의 출입금지 통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행사 사람들이 맘대로 말할 수 있는 여건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상궤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대행사 사람들 이제는 거의 없다. 예전에는 기인 수준의 사람들이 좀 있기는 했다. 그런데 미리부터 겁주고, 틀에 가둘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카툰에서 보았듯이 최종 결정은 광고주가 한다. 맘대로 놀게 하고 광고주로서 취사선택하면 된다. 필요한 응징은 나중에 얼마든지 가혹하고 아프게 할 수 있다.

“광고는 매년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데, 왜 광고대행사에 해마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거죠?”하고 묻는 광고주 CEO에게 대행사 CEO가 대답했다. “그걸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게 우리의 일이거든요.” 여기서 광고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광고물이 아닌 테마, 바로 광고의 컨셉이다. 그 컨셉의 기본은 브랜드이다. 대행사가 지키고 있었던 것은 바로 기업의 영혼이자 존재이유를 담고 있는 브랜드였던 것이다.

이 대화가 광고주에게 주는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 브랜드를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광고대행사에게 무엇을 지킬 것인지 전략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줄 수 있다. 둘째, 명료하게 정의된 브랜드에 따라 바꿀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세부 전술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 전술적 규정에 따라 각 분야별 전문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동원할 수 있는 책임을 광고대행사에 지울 수 있다.

정리하여 보면, 대행사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기업을 운영하거나 제품마케팅을 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브랜드라는 근간을 중심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방향을 명확히 하고, 세부 전술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의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그에 따라 대행사에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고, 단일한 창구를 만들어 최대한 전문성을 존중하여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했다. 너무 당연하기에 오히려 지켜지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대행사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루어 보겠다.

(※ 근래 ‘광고대행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광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현재 상황과 사실 맞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광고주’와의 관계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기존의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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