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정에서 아버지는 서커스단 내에서 철권을 휘두르는 서커스단장을 겸하는 피에로와 같은 역할을 해온 경우가 많았다. 수입과 운영을 책임지지만 그는 보통 서커스단 내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단원들이나 가족들과의 소통에도 젬병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애써 예전 가부장의 권위로 포장을 하려니, 소통할 대상과의 거리는 더욱 넓어질 뿐이었다.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과 전제적인 체제가 붕괴되고 사회 전체에 자유의 바람이 불면서, 한국인들은 그저 무섭기만 했고 그래서 피하려했던 아버지를 연민어린 슬픔과 결부시켜 쳐다볼 수 있는 감성을 갖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95년 삼성생명의 ’효(孝) 캠페인‘의 문을 연 ’아버지‘였다.

자식이 우등상을 타와도 칭찬의 말보다는 그저 ‘상장을 액자에 넣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기만 하고, 약수터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소리에도 그저 속으로만 좋아할 뿐이다. 자식의 입시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냥 출근을 하여 종일 안절부절하고, 첫 월급을 받아 내의를 사온 자식에게 괜히 내의 있는데 사왔다고 타박을 하고, 딸의 결혼식에서 혼자 눈시울을 붉히는, 자신의 감정 표현에 너무나도 서툴렀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희끗희끗해진 아버지의 머리를 보고 깨닫는 자식의 안타까운 슬픔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자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디지털 통신의 시대를 맞아서 자식들과 아버지의 소통은 광고에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이동전화를 해지하지 않고 계속 문자를 보내고 음성메시지를 전하며, 소통하는 아버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슬픔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다른 유형의 아버지들이 광고에 나타나고 있었다.
화상통화를 대표선수로 3세대 이동통신의 시대를 열었던 ‘07년의 쇼(SHOW) 광고에서 시골의 아버지는 새로운 디지털 통신 기기를 신기해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말과 비교될 수 없는 고장 난 기기들의 실제 영상이 아들에게 어떤 효과를 거둘 것인지 이미 간파를 했다. 며느리가 보일러 놔드릴 때까지 기다리는 ’침묵의 소통‘의 시대가 갔다. 또한 뭐든지 아끼며 그런 근검정신을 강조하고, 자신들을 위한 소비에는 눈을 감고 자식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주려는 그런 일방적인 희생의 시대도 저물고 있음을 새로운 유형의 아버지들이 보여준다.

‘공부해라’, ‘아껴 써라’, ‘저축해라’만 강조하던 아버지가 ‘재미나게 사는 인생’, ‘인생을 즐겨라’, ‘그것을 가져라’고 경쾌하게 외친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자식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감정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90년대 중반 삼성생명의 아버지는 ’07년에는 자식을 결혼시키자마자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자유(Freedom)’을 외치며 떠난다.

슬픔이 수반되거나 그리로 수렴되는 우리의 감정 코드의 중심에 가족이 있고, 아버지가 있었다. 그 아버지마저 이제는 즐거움의 코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사회 변화의 메가트렌드로서 ‘두려움’에서 ‘즐거움’으로의 키워드의 전환을 얘기한 바 있다. 예전에는 독재의 억압적인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부장적인 전제로 겁을 주어 두려워서 못하게 막는 데 치중한 것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즐겁게 추구하는 쪽으로 크게 사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얘기였다. 그런 메가트렌드의 변화가 광고에 나타난 감성코드에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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