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오길비와 마틴 소렐

입력 2010-05-15 16:08 수정 2010-05-15 16:08


데이비드 오길비와 마틴 소렐

 

1999년 상반기 세계 유수의 커뮤니케이션 회사와 파트너쉽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저 회의 한두번만 하고 끝난 곳도 있고, 가능성이 보이거나 열의가 있는 곳과는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곳이 오길비앤매더(Ogilvy & Mather)였다. 그리고 명성과 능력과 향후 우리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로까지의 관계 진전 가능성, 특히 플래닝 분야에서의 탁월한 성과와 역량 및 성취 면에서 오길비는 단연 다른 광고회사보다 앞서 있었다. 무엇보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가진 창립자인 데이비드 오길비의 후광은 다른 광고회사들이 범접할 수 없게 했다.

 

오길비 뉴욕의 플래너들과 함께 하던 일이 거의 마무리되던 그 해 7월의 어느 날, 당시 미주법인의 누군가가 데이비드 오길비가 타계했다는 말을 전했다. 급히 오길비 뉴욕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선을 타고 레퀴엠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시 CEO였던 쉘리 라자러스가 프랑스의 데이비드 오길비의 저택으로 급히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의 부고면을 가득 메운 오길비의 생애를 소개하는 기사들과 함께 추모의 글들도 보았다. 며칠 후 장례식이 끝나고 쉘리 라자러스가 창립자를 떠나보낸 자신들의 슬픔과 그를 함께 해준 광고주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글을 보았다. 누군가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에서 외쳤던 “20세기가 이렇게 한국을 뜨는구나”하는 외침처럼 “20세기의 광고”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20세기의 광고를 만들고 상징했던 인물의 운명과 함께 은퇴식을 거행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데이비드 오길비의 뒤를 이어 세계 광고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른 이는 당시의 엄밀한 척도에서 광고인이 아니었다. 광고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소위 ‘관리쟁이’, ‘돈놀이하는 작자’로 광고의 본령에서 벗어난 서얼이나 중인으로 취급했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개인적인 감정까지 잔뜩 섞어서 그를 ‘가증스런 똘마니(odious little shit)'이라고 했다. 그런 광고계 전체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제이월터 톰슨(JWT)에 이어 결국 오길비앤매더까지 사들여 WPP라는 최대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기업을 일구었다. 누군가는 블랙홀과 같은 WPP의 확장공세에 ’이제 광고계는 광고인의 손을 떠났다‘며 길게 탄식했다. 실제 WPP와 같은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계의 표준이 되다시피 하면서, 21세기 광고계의 지형이 ’90년대 중반 갖추어졌다. 그리고 데이비드 오길비는 ‘가증스런 똘마니’의 팬으로 돌아섰고, 사과편지까지 보냈다. 세계광고계의 반공식적인 대관식이 거행된 셈이었다. 그를 추인하듯이 영국 정부는 그에게 데이비드 오길비가 그렇게 원했지만 받지 못한 기사작위를 주었다. 그렇게 ‘21세기 광고계의 황제’로 등극한 이가 바로 마틴 소렐(Martin Sorell)이다.

 

데이비드 오길비가 세상을 뜬 그 해 가을에 어느 마케팅 관련 잡지에 실린 마틴 소렐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브랜드의 중요성과 같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었고, 그에 대한 마틴 소렐의 견해가 주요 내용이었다. 전통적인 광고인들의 ‘관리쟁이 마틴 소렐’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던 자로서 한숨과 비웃음을 교차시키며 그 기사를 보았다. 그런 선입관을 떠나서도 사실 마틴 소렐이 그 인터뷰에서 한 말들은 데이비드 오길비와 같은 20세기형 광고계의 대표 인물들이 보인 것과 같은 선각자나 구루(Guru)의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게 원론적인 것을, 누군가가 준비한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줄줄이 읊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 띄엄띄엄 본 그에 관한 기사나 들은 전언은 모두 마케팅 관련 기업들의 합병과 이합집산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마틴 소렐이 5/12~13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42회 세계광고대회의 첫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Changes and Conquences(변화와 그 영향)”이란 주제대로 광고계를 둘러싼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하여 “거시적인 세계경제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인구문제, 경쟁의 본질, 수요와 공급 체계, 조직 내외 관계와 커뮤니케이션, 글로벌화의 정도, 사회 속의 기업, 정부의 역할” 등 다양한 요소와 국면을 일목요연하게 큰 그림 속에서 정리하여 보여 주었다.

 

정말 놀라웠다.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하는 얘기들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나의 일고 연결하여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끈 강연이었다.

 

그의 강연을 듣고 나오는데, 작년 초 김대중 전대통령이 ‘3대 위기’로 그 때의 상황을 규정한 것이 생각났다. ‘민주주의, 남북관계, 서민경제’가 우리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3대 위기로 얘기한 것을 가지고, 뻔한 얘기 아니냐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맞다. 누구나 느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그렇게 세 가지로 정의하고 서로 어떻게 연계되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실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요, 인사이트(Insight)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매체나 소통의 도구들이 하루하루 나타나는 21세기에 광고인은 무엇을 해야 하고, 광고는 또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Changes and Consequences"라는 주제에 맞게 길을 보여준 마틴 소렐이 데이비드 오길비와 같은 어찌 보면 실무형의 ‘20세기 광고의 아버지’ 뒤를 이어, 비즈니스 마인드와 시각을 갖춘 21세기 광고계의 ‘Man of Wisdom'으로 내게 각인된 시간이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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