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wo Peters(4)-아넬과 달리(Dali)

입력 2010-02-01 05:44 수정 2010-02-01 05:44


‘80년대 중반 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짧은 일화이다. 어느 미국인 관광객이 스페인에서 조용한 음식점에 갔다. 갑자기 일군의 사람들이 몰려오며 왁자지껄해졌는데, 그 중심에 그 유명한 천재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있었단다. 달리는 함께 간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말로는 부족한 듯 냅킨에 무언가를 휙휙 갈겨쓰기도 하고 급기야는 식탁보에 크게 그림을 그려 넣으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옆에서 그것을 즐겨보던 미국인 관광객이 체면불구하고 달리 일행이 자리를 뜨면 바로 냅킨과 식탁보를 챙기리라 마음을 먹고 천천히 천천히 음식을 들면서 기다렸단다. 마침내 음식이 전부 치워지고, 달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그를 따라 달리의 일행들도 우루루 일어나서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인 관광객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달리의 일행 중 마지막으로 나가는 젊은 친구가 식탁보를 걷으면서 달리의 낙서가 한 점이라도 들어간 냅킨까지 모조리 걷어 가지고 일행을 뒤쫓아 가더란다.  

“I've got a great idea(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어)." 피터 아넬과 함께 있는 동안, 철자 네 개로 된 ‘four letter words'의 욕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들 외에 문장으로는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그에게서 그 말이 나오면 그의 스탭들이 바빠졌다. 그 때부터 그가 내뱉는 말을 간투사와 같은 의미 없는 단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야했다. 그의 말을 바로 그림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90년대 초, 광고 생활 초년병 시절에 꽤 유명세를 탔던 카피라이터 하나와 바로 일을 하게 된 동료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누군가가 그런 유명한 인물과 함께 일을 하니 얼마나 좋겠냐며 부러워했다. 그러자 부러움의 대상이 된 친구는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 유명짜한 인물을 쫓아다니면서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을 노트에 적고, 그것을 일이 끝난 후에 컴퓨터로 쳐서 다음 날 모든 스탭에게 배포하고, 다시 말을 받아 적는 것일 뿐이라고 피곤하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디자이너 출신의 역시 유명한 크리에이터를 쫓아다니던 친구가 대꾸했다. “야, 나는 그 양반이 말 하는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 넣어야 해!” 아무래도 말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 

아넬의 경우도 비슷했다. ‘99년 여름에 우리는 디지털을 기치로 내세워 삼성전자의 슬로건을 무엇으로 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방향은 정해 놓았는데, 마지막 창의적이고 신선하게 말로 풀어내는 것이 꽉 막혀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디지털 기술이 아닌 대중 디지털‘을 어떻게 함축된 표현으로 나타낼 것인가? 삼성은 제품 종류도 어느 기업보다 많고, 이용하는 소비자층도 넓을 수 있다는 얘기를 반복하여 하는 와중에 아넬이 예의 ’I've got great idea'를 외쳤다. 우리가 얘기했던 삼성의 차별점과 그리하여 다른 비전을 얘기하면서 그가 ‘great idea'로 꺼낸 것이 바로 ’Digital'과 ‘All'을 결합시킨 ’Digitall'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만 그 때도 그는 스스로 자기가 낸 아이디어에 도취하여 입에 침을 튀기며 자신이 낸 ‘Digitall'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 큰 몸에 큰 제스처를 사용하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자인하는 친구를 바로 불러서 적합한 타이포로 만들어 오도록 지시했다. 그가 디자이너 친구에게 지시하는 사이 그의 서가를 힐끗 보는데 <One Digital Day>란 책이 그의 등 뒤에 바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w the Microchip Is Changing Our World‘란 부제가 붙어 있는 그 책은 인텔(Intel)사의 후원으로 1997년에 100여명의 사진작가가 전 세계 100여 곳에서 거의 동시에 마이크로 칩이 들어간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사진에 담아서 낸 작품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제 그대로 마이크로칩, 바로 인텔이 만드는 마이크로칩이 세계에 어떻게 활용되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켰는가를 자연스럽게 부각한 사진집이다. PR용으로도 좋았고, 사진집으로도 아주 훌륭했으며, 디지털 세계에 대한 실상과 비전을 알려줄 수 있는 책이기에 나도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전략을 짜면서 인상 깊게 본 책 중의 하나였다.  

아넬에게 ‘Digitall'이 당신 등 뒤에 있는 <One Digital Day>에서 그린 세계를 연상시킨다고 얘기하자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큰 몸집으로 껴안을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You're a genius!” 그러면서 어떻게 자신의 책들로 가득 찬 넓고 높은 서가에서 그 책을 발견할 수 있었냐고 몇 차례 물어 보았다. 내가 보기에 그의 ’Digitall' 아이디어는 그 책에서 힌트, 좀 고상하게 영감을 얻은 것임에 틀림없다. 신의 계시처럼 아이디어가 그의 머리로 들어와서 극적으로 발표하는 것처럼 했지만, 실상 그 아이디어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생각해 두었던 것일 수 있다. 그의 그런 행동을 단순히 ‘연기’를 했다고 혀를 차고 말기보다, 치밀한 사전 준비와 어쨌든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눈을 돌리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카소, 제이 르노, 줄리아니,무하마드 알리, 플라톤의 동서고금의 인물들과 예술, 철학, 역사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담론을 가능케 하는 지식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사무실 빌딩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4면이 책들로 가득 찬 넓고 높은 서가가 위치한 서재였다. 몇몇 책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직접 읽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니 전략적 바탕을 이루는 인문학적인 지식이란 측면에서 아넬은 피터 김이 완전히 무시할 정도의 허당, 날탕은 아니었던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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