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Dell)의 스마트폰은 될까?

입력 2010-01-24 23:40 수정 2010-01-24 23:40


델(Dell)의 스마트폰은 될까?

한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을 해보자. 언제 처음 당신의 컴퓨터를 장만했는가? ‘장만’이 너무 심한 언어일 수도 있겠다. 언제 처음 컴퓨터를 보았는가? 언제 컴퓨터를 써보았는가? 컴퓨터가 아주 가까운 생활 속의 기기나 단어로 쓰였을 때는 언제였는가? 

’86년 말 군대에서 우리가 관리하던 필름을 비롯한 군대교육 기자재를 컴퓨터로 쳐서 DB에 입력시키라는 명령과 함께 작은 TV와 같이 생긴 기기가 배급되었다. 그 컴퓨터라는 놈을 갖고 놀기 시작하면 계속 거기에 매달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말년 병장으로서 낙엽도 조심하라는데 컴퓨터도 조심해야 할 품목의 하나로 들어갔다. 실제로 부대에 보급된 컴퓨터는 담당자가 정해져 있어서, 그 친구 이외에는 아무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품목이었다. 당시에 보급된 컴퓨터가 바로 마케팅 사례로도 많이 나오는 ‘Wang Computer'였다.

 ‘87년에 복학을 하였는데, 리포트를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여 내는 놈들이 있었다. 격세지감을 너머서 과연 그래도 되는가 싶었다. 교수님께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는 놈도 있었다. 그 다음 해 학부 졸업논문을 쓰는데, 대부분 원고지를 가지고 낑낑대면서 한 줄 잘못 쓰면 맨 처음부터 다시 쓰곤 하는데, 몇몇 워드프로세서를 쓰던 놈들은 한자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논문을 쓰던 무렵 컴퓨터를 사러 간다는 친구를 따라서 용산 전자상가에 갔다. 한 가게의 아저씨가 “요즘 미국 대학생들이 이것 가지려고 미친다 아닙니까?!”하고 보여준 것이 나중에 생각하니 바로 애플 컴퓨터였다.  

화면에 픽토그램과 같은 그림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매직 버튼이었다. 힘겹게 학교에서 방학특강으로 ’베이직‘이니 ’도스‘니 하면서 배우던, 글자로만 화면이 메워지던 기존의 컴퓨터 프로그램과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실제로 컴퓨터를 사는 것은 감탄을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당시의 컴퓨터는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컴퓨터는 학생들이 가장 힘겹게 결정을 해야 하는 최고의 고관여제품이었다.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결정한다고 해도, ’사양‘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양에 대해서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사양을 만들면, 제조업체에서 그런 사양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결국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이 떠밀려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니 복잡하고 험난한 구매 단계를 거친 후에도 구매자는 자신의 결정이 잘 내려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힘들다. 이런 컴퓨터 구매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고충을 구매과정을 단순화, 맞춤식 사양을 제공하면서 해결해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여 탄생한 회사가 바로 ’델(Dell)'이었다.  

‘90년대 초 다른 친구들의 경험과 기사 자료 등을 통하여 내가 느낀 ’델‘은 컴퓨터와 관련하여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자신들의 사양을 강요하지 않고, 내 얘기와 고충을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무료전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컴퓨터 회사였다. 감히 전화조차 걸기가 두려운 IBM이나 기술용어만 잔뜩 늘어놓으며 킥킥 댈 것 같은 HP와는 다르게 진정 소비자 편에 서 있는 컴퓨터 회사였다. 대학생이었던 마이클 델이 자신의 기숙사에서 창업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런 친밀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Direct selling' 이라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의 뒤에는 바로 이런 소비자들이 느끼고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혜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델은 전화를 통한 판매나 웹사이트를 판매 채널로 활용하는 데 선구자였다. 그러니까 창업자의 스토리와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과 실제 행동 및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혜택이 잘 어우러지며 델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99년 미주에 주재하면서 법인으로부터 받은 노트북 컴퓨터가 ’델‘이었다. 노트북 관련하여서는 ’90년대 초의 전설이 실재가 되어 다가왔다.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의 품질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전 한국에서 쓰던 노트북에 익숙해져서 이기도 했겠지만, 크고 무겁고 키보드 감촉이나 기능 등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후 더 높은 등급의 사양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지만 불만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 불만을 토로하자 IT쪽의 친구가 말하기를 델이 다른 브랜드보다 훨씬 가격이 싸단다. 싼 가격도 델이라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괄구매한 것을 받아서 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직접적인 혜택은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헤결을 의뢰하고 의논할 사람도 델이 아닌 IT 친구들이다. 델의 브랜드 강점이 전혀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델이 정점에 오르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든 해가 바로 2005년이다. 그해 초에는 포춘(Fortune)지에 의하여 ‘Most Admired Company'로 뽑혔지만, 그해 말에는 비즈니스위크에서 델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해였다. 유감스럽게도 이후에 델의 수익성이나 평판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델이 갑작스럽게 성공했던 많은 브랜드들이 그랬듯이, 초기의 그런 브랜드 스토리와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이 느끼는 혜택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덩치를 키우고 새로운 분야를 컴퓨터 분야에서 넓혀나간 것은 좋은데, 자신의 브랜드와 전혀 연계를 매지 못하였다.  

델이 구글과 손을 잡고 중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각국에 출시할 예정이라는 스마트폰의 자세한 성능이나 가격 등의 마케팅계획에 대하여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그러나 오로지 브랜드 관점에서 얘기하면 델의 스마트폰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지금까지 델이 얘기하는 델 스마트폰의 새로운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델이 왜 굳이 스마트폰까지 진출하고 그것을 팔아야 하는 이유를 던혀 발견할 수가 없다.

 

델을 떠나서 사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여 제품을 내놓을 때, 그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강하게 얘기한다고 해봤자, ‘거기가 앞으로 불같이 일어날 분야야(그래서 우리가 ’빨리 진출해서 돈을 벌어야 돼!)’ 정도의 얘기 밖에 하지 못한다. 돈을 향한 ‘탐욕’이나 ‘도전’의 자세가 브랜드가 된다면 모르겠으나, 다른 브랜드들은 그저 약간 진화된 신제품 이상의 그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물리적인 속성과 감성적인 혜택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브랜드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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