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의 한계

입력 2009-11-22 22:57 수정 2009-11-22 22:57
         어느 국가나 부정과 긍정의 두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 하는 것은 보는 각도나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보는 각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요소라도 부정과 긍정을 오갈 수 있다. 기업들은 원산지인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기업브랜드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기업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구성하는 국가의 성격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가 부정적인 경우 마냥 감추려 하거나 관계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월드컵 자체를 무산시켜 버릴 수도 있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에어프랑스의 조종사들이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보름 간 파업을 한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 해 월드컵을 훌륭히 치렀고, ‘아트 사커’를 앞세운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국가적인 대행사를 앞두고’, ‘월드컵을 볼모로 삼고’,  파업을 한다는 식의 언론이나 정부의 몰아붙이기식 행태를 볼 수 없었다. 조종사들의 파업 자체도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권리는 확실하게 주장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프랑스 브랜드의 한 요소로 인식시켰다.


        그 때의 파업을 두고, 브랜드 관련 일을 하는 몇몇 미국 친구들과 프랑스는 ‘파
업이 국가 스포츠인 나라’라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근데 말이지, 그런 점이 바로 프랑스를 만들었고, 프랑스 기업들의 강점인지도 몰라. 특히 브랜드 측면에서는 더욱 그럴 거야.” 그러면서 그 친구는 대표적인 사례로 ‘샤넬’을 꼽았다. 세상사의 제약에서 초연한 듯 보이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파격적이면서도 기품을 유지하는 샤넬의 예술성이 프랑스라는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4년이 지나, 다음 월드컵의 공동 주최국이었던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이 ‘나라의 체면’ 등을 들어서 노동계에 무차별적인 경고 폭격을 퍼부었다. 정부도 나서서 당시의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월드컵은 어느 정권이나 정당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인 월드컵 기간 중에는 단합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노동단체는 지금 해결되지 않는 것은 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해결하면 된다.” “국민은 정쟁, 노사분규를 중단하고 월드컵 성공에 힘을 모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 월드컵 기간 전과 기간 중에 한국에서는 중대한 파업 행위는 없었다. 나는 역으로 그렇게 정부까지 나서서 파업을 하지 않고 화합의 모습을 모이자고 역설한 것이 한국에서의 파업과 불화의 단면을 외국인들에게 더욱 심하게 인식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파업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한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혹은 그런 파업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지닌 국가로 포장할 수도 있다.



        예전에 다니던 광고대행사의 대표께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일사불란(一絲不亂)’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창조성’이 강조되는 광고대행사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줄을 서고,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디지털, ‘창조경영’, 모두가 참여하고 공유하는 웹 2.0의 시대에서 ‘일사불란’이란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된다. 현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일사불란’이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극단적인 두 체제가 대치하며 간헐적인 전쟁 상태까지 불사하는 상황에서는 일사불란한 ‘총화단결’이 필요하다. 전혀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국가나 기업들이 수백 년, 수십 년간에 걸쳐서 이룩한 것을 단 몇 년 안에 따라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한 치의 이탈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체가 자신의 브랜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나 앞서 애기했듯이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유연한 창조적 사고와 실행이 강조되는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GM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하자마자, 적자를 기록한 토요타의 고난은 그들의 성공을 가능케 한 일본적인 ‘일사불란’함에서 찾을 수 있다. ‘QC(Quality Control) 분임조’, 'JIT(Just-in-Time)', '가이젠(改善)‘과 같은 일사불란함을 원칙으로 하는 경영 활동들이 최고의 품질 이상의 자동차,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정말 창조적인 자동차를 내놓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이 깔끔한 진행으로 운영 자체에서는 큰 점수를 받았지만, 한국의 붉은 물결의 거리응원처럼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는 이미지를 남기지 못한 것과 같은 결과와 비유할 수 있다.



        월드컵과 관련하여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버린 그 거리응원의 열기를 한국이 국가브랜드에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자신들의 기업브랜드의 자산으로 수렴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오히려 프랑스의 샤넬이 발 빠르게 한일 월드컵 직후에 ‘서울의 빨간 물결’이란 뜻의 ‘루즈 드 세울(Rouge de Seoul)'이라는 립스틱을 출시하여, 그 열정을 자신의 자산으로 만들면서 제품으로까지 연결시켰다. 그 제품은 비록 이름에는 ’서울‘을 담고 있지만,  한국의 열정보다는 결과적으로 샤넬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개방성과 열정을 강화시켰다.


        기업브랜드에서 국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으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무조건적으로 편승해서도 안 되고, 국가지상주의로 나서서도 곤란하다. 기업브랜드를 가지고, 즉 기업브랜드의 성격을 명확히 한 후, 어떤 부분이 국가와 맞고, 어떻게 그것을 국가와 연계하여 펼쳐 나갈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일사불란' 구호가 만병통치로 작용하는 시대는 지났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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