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에 호소하기 전에

입력 2009-11-09 08:26 수정 2009-11-09 08:26
 

"미래를 향해 달리는 새 시대의 미국인 개척자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I am the new American pioneer, looking forward, never back.)"




        갑자기 미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2009년 하반기 들어서 컬컬하게 연륜이 묻어나는 노인이 낭송하는 미국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리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를 배경으로 깔며 개척정신을 강조한 리바이스(Levi's)가 앞장을 섰다. 리바이스는 “앞을 향해 달려라(God forth)"라는 태그라인을 붙인 캠페인을 온라인을 선두로 내세워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공격적으로, 그야말로 ‘캠페인(Campaign)'이란 단어의 뜻에 맞게 전개하고 있다. 리바이스 측의 말인즉슨 이런 어려운 시대에 리바이스와 미국이 공통적으로 지닌 개척정신을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어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란다.



        골드러시 시대의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탄생한 리바이스의 기원을 연상시키며, 그것을 미국과 일체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비록 골드러시 시대가 남북전쟁 이전으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존재했고, 전쟁 이후에도 흑인들의 인권이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미국인들에게 골드러시는 이제는 잊혀진 ‘모험과 개척’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단어이다.


        인쇄광고에는 “이 나라는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들이 만들지 않았다(This country was not built by men in suits)"라는 카피와 함께 등장하는 청바지를 입고 들판을 달리는 여성의 모습이 실렸다. TV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여성을 포함하여 주로 유색인종, 흑인 어린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했다. 한때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에 의하여 극적으로 부각되고 오랜 세월을 풍미한 기존의 틀을 깨는 반항적인 이미지로서의 청바지가 즉각적으로 연상된다. 황금의 꿈을 안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몰려갔던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어쨌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개척정신의 표상으로 큰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자 노력했고, 그것이 미국의 정신이고, 리바이스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함께 리바이스와 같은 개척정신으로 이 불황을 이기고자 하는 메시지도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




"하루하루 더 강건해지는 미국(America. Growing stronger everyday.)"




        뱅크오브어메리카(Bank of America)는 미국은 이미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박물관, 스포츠 경기장, 농촌 마을 길가의 가게들에 빠르게 불이 밝혀지는 광고의 초입 장면이 그런 미국 경제의 부활을 상투적이지만 힘 있게 전달한다. 그리고 은행이 그 부활을 위해 행하는 역할을 얘기한다.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여름 초입에 이 광고물을 만들어 놓았고, 적합한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오래도록 기다려온 미국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서는 순간에 은행은 자신들이 매일 30억 달러에 이르는 대출을 여러 방면에 해주면서,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고 얘기한다. 올해 칸느광고제에서 필름 부문 심사위원장을 지낸 데이비드 루바(David Lubars)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완전히 움츠려 들었다가 뭔가를 해볼 기회를 찾기 시작하는 적절한 순간”을 찾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바로 지금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The American renewal is happening right now.)"




        GE는 한 걸음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 ‘미국을 되살아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제조업이란 것이 우리의 신념’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GE는 ‘고용을 창출하는 첨단 기술’을 통하여 ‘제조업의 미국’을 실현시키며 미국 경제의 회복에 기여한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토마스 에디슨에 기원을 둔 첨단기술의 산실로서 GE를 역설하고 있다.


        이들 세 기업이 각각의 분야에서 미국을 대표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창립 정신 혹은 배경에 기원을 둔 브랜딩은 기업브랜드의 가장 전통적인 접근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 기업들의 행적과 현재의 실적이 그들의 그런 외침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바이스는 1990년대 초 이래 자신의 창립 유산과 정신에서 벗어나, 패션에 기반을 두고 청바지 쪽으로 진출한 게스(Guess)나 캘빈 클라인(Calvin Klein)과 같은 기업들을 쫓아서 어울리지 않는 ‘유럽적인 섹시함’을 추구하였다. 뱅크오브어메리카는 작금의 금융공황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제공한 대표적인 은행으로, 큰 논란 속에 정부보조금을 타냄으로써 가까스로 연명하는 데 성공했다. GE의 경우 ‘중성자탄 잭 웰치(Jack Welch)'라는 전임 회장의 별명처럼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해내는 전범을 만든 기업이다.


        한창 잘 나가거나 어느 한 시절에 이들 기업들은 미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애를 썼다. ‘천박’, ‘방만’,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미국의 어두운 면들에서 자신들은 다르다고 외쳤다. 그런데 이들 기업들이 미국 경제가 호황으로 접어들 기미를 보이자, 그 선두에 서서 공헌하는 것처럼 소리를 높이는 것이 진실성과는 거리가 있다. 꼭 과거사를 들추는 것은 아니지만 큰 소리의 반성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자성의 소리는 냈어야 한다. 그럴 때 미국 대표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찾을 수 있고 미국의 긍정적인 요소를 자신의 브랜드로 수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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