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케팅과 불량 청소년

입력 2009-01-16 02:53 수정 2009-01-16 02:53
 

문화마케팅과 불량 청소년




1월 14일 강원도 원주에서 충청남도 예산을 오가며 두 개의 강의를 했다. 오전 10시 30분의 첫 강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서 문화 관련 단체 인사들을 대상으로 2009년의 트렌드에 관해 2시간 정도 얘기를 했다. 주로 연극 극단, 지역 예술인 모임, 국악이나 클래식 연주단체의 행정이나 기획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에게 리더쉽을 함양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단다. 그 일환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리더쉽은 물론이고 공연 기획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초빙을 받았다.




다른 무엇보다 소설 토지의 산실로 간다는 것이 내 마음을 끌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시절 깊은 산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며 읽었던 토지의 추억이 처음 강의 장소를 들으면서

바로 봇물 터지듯이 밀려왔다. 꿈속에서 토지의 배경 속으로 나 자신이 들어가고, 인물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잠꼬대를 하고, 달랑 두 권만 가지고 들어갔다가 3권 이후를 가져다 달라 부탁을 한 후 내린 대설에 끊어진 길을 보며 얼마나 눈을 원망했던가! 그리고 간신히 길이 뚫렸을 때 자동차 소리만 나면 문을 열고 나가서 혹시나 책이 왔을까 설레던 그 장면이 아롱다리 되살아났다. 일정만 확인하고는 바로 승낙한 데는 그 추억이 반 이상의 역할을 했다.




토지문화관에 대한 얘기나 글을 접한 적이 있어서 궁금했던 것도 바로 승낙한 데 큰 역할을 했다.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발자취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글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그 공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장소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박경리 선생의 족적이나 체취는 맡기 힘들었고, 작가들을 위한 숙소 방까지 들어가 볼 시간이 되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도 똑같이 나왔을 그리고 생전의 박경리 선생이 그렇게 신경을 쓰셨다는 식당의 밥을 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강의 자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소비자들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그것을 예술 문화 방면에서의 소비와 그 단체의 책임자로서 어떤 식으로 이용(?)을 하고, 활성화 시킬 것인가 고민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그러나 트렌드와 실제로 그 분들이 문화공연 등을 기획하고 마케팅을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부분에서 아무래도 공연예술 마케팅 분야의 지식이 떨어져서 바로 적용시키거나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원주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충청남도 예산의 덕산온천으로 달렸다. 불량청소년 상담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을 위한 일주일 교육 프로그램 중 2시간짜리 한 섹션을 맡았다. 처음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는 바로 불량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하라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아주 낯선 일이기는 했지만 두 청소년 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의미 있고 도전할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바로 승낙을 했다. 나중에 불량청소년이 아니라 상담 선생님들이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날자 때문에 힘들겠다 싶었는데, 앞의 강의와 4시간 차이가 있어서 대략 맞출 수 있었다.




지방이라서 교육 등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많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신조가 있어서 지방 강의 요청에 아주 적극적으로 응한다. 될 수만 있으면 거절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강의로 하루를 완전히 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몇 군데의 지방 강의를 연결시켜서 하루에 처리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이번 원주-덕산 오전과 오후 연속 출강은 거리가 좀 멀기는 했지만 '운수 좋은 날'로 들어갈 수 있다.




덕산에서의 강의는 불량 청소년들과 대화하고 부대끼며 어루만져 주실 분들을 위하여 광고회사에서는 청소년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어떻게 하는가 알려드려 청소년 연구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강의의 목적이었다. 주로 사회복지사나 선생님들로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직접 강의도 하셔서인지 수강생으로서 강의에 임하는 열의와 강사에 대한 예의를 나타내시는 것이 남달라 신이 나면서 뿌듯했다.




강의에서도 고백했지만 청소년들은 조사하기가 가장 힘든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을 제대로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은 내 자신이 과문하기도 해서이겠지만 제대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 제일기획에서도 세대별 특성보고서와 같은 형식으로 내기도 했지만, 단편적인 보고서들만이 나와 있었을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제품을 사는 좋은 말로 소비주체, 약간 부정적으로 얘기한다면 돈을 빼낼 대상으로서만 청소년들을 보았지 다각적으로 이들을 조명하며 이들의 속으로 들어가서 한 몸이 되어보려는 태도가 부족했다.




관찰보고서 방학숙제를 하라고 꾀어서 데려왔는데, 많지는 않았지만 박경리 선생 친필 원고 따위의 소설 토지 관련 정보나 물품에는 전혀 관심 없이 그저 시간만 때우려 무기력하게 탁구를 치다 바둑판 놀이나 하면서 애비의 강의 시간 끝나기를 기다렸던 두 청소년은 덕산에서 활기를 되찾았다. 덕산의 교육 주관처의 호의로 덕산스파의 하루 숙박권과 야외온천과 풀의 할인권을 얻을 수 있어서, 애들을 그 곳에 풀어 놓으니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며 오전 토지문화관 주변의 얼어붙은 땅과 오후 덕산 온천스파의 김이 펄펄 나는 야외온천의 물 만큼이나 문화와 지금 청소년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마케팅이란 개념이 강조되면서 경제성이 최고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을 수동적인 계도나 지도의 대상으로, 거의 잠재적인 불량성을 가진 이들로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들이대는 문화는 훈시가 되고, 거부하는 청소년들은 더욱 불량스럽게 보인다.




이 사이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텐데....큰 숙제 하나 받아가지고 온 하루 강의여행이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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