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와 중국 브랜드 살리기

입력 2008-09-21 14:54 수정 2008-09-21 14:54
 

개고기와 중국 브랜드 살리기




        갈수록 국가간의 경계나 거리와 같은 ‘정치/자연지리’적 특성은 지도책에서나 온전하게 존재한다. 예전 고등학교 과목의 ‘인문지리’적인 속성은 서로 변화하면서 점점 닮아 가고 있다. 특히 식생활 분야에서는 다양한 나라나 지역의 음식을 위치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해당 지역이나 국가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음식들이 있다.




        미국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귀임하여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와 같은 맛이 나오지 않아, 가끔 미국 출장을 가면 꼭 찾아서 먹는 음식들이 있다. 향이 강한 맥주와 함께 하는 십여 가지에 이르는 생굴(Oyster)이 그 첫째요, 드라이한 와인에 곁들이는 육즙이 흐르는 뉴욕식 스테이크가 두 번째이고, 디저트로 진한 커피나 꼬냑과 어울려서 드는 치즈 케이크가 바로 그들이다. 한번은 어느 미국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한 자리에서 전채 생굴로 시작하여 디저트 치즈케이크까지 세 가지를 모두 같이 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친구의 갸륵한 마음을 읽고 고마움을 표시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아무래도 돌아다니면서 찾아 먹는 재미가 아쉬웠고 양도 부담스러웠다.   

 
       반대로 미국 주재 시절 한국에 출장을 오면 동료들을 채근하든지 해서 될 수 있는 한 맛을 보고야마는 음식들이 네 가지 있었다. 우선 간장게장, 낙지볶음, 장어구이 등의 해산물 요리가 거기에 속한다. 생선회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깊은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별로 따져서 찾아가지 않았다. 생선회 전문점이 미국에도 많이 생겨나다 보니, 한국의 아주 고급 횟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등한 급의 회를 미국에서도 맛볼 수 있었던 까닭도 있다. 위에 든 세 가지 간장게장, 낙지볶음, 장어구이는 지금은 확실히 모르겠지만 내가 미국에 머무르던 시절만 해도 전문점이 없었다. 전문점만의 고유한 노하우(knowhow), 그리고 대량으로 요리를 하기에 가능한 맛을 여러 가지 메뉴 중의 하나로만 취급하던 미국의 한국음식점에서는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와서 찾았던 음식은 바로 개고기 보신탕이었다. 미국에서는 주지하다시피 법적으로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다. 위에서 든 간장게장 등은 맛이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이름에 든 것과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 맛을 볼 수는 있었다. 이에 비해 보신탕은 염소나 꿩 등으로 비슷한 양념을 한 음식이 있기는 했지만, 그 진정성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금지된 것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까지 덧붙여졌으니, 한국에 출장을 와서 그 열망의 정도는 네 가지 중에서 가장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한겨울에 와서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졸라서 서울의 동료들을 당황하게 한 것은 미안하지만 그 친구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지금도 맛있는 개고기집이 있다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강제로 금지 당했던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어릴 때부터 어른들 따라서 개고기를 먹으러 다니고, 누군가의 추천에 솔깃하면서 딴에는 열심히 쫓아다닌 내가 경험한 최고의 보신탕은 한국 땅에서가 아니었다. 북한 정부가 중국 북경에서 경영하는 한식집인, 이름도 그윽한 ‘해당화(海棠花)’에서였다. 뻘건 기름이 뜨고 내장양념을 취향에 따라 섞어 먹게 되어 있는 해당화의 단고기 탕은 진하나 자극적이지 않고, 단맛이 드나 느끼하지 않고, 고기가 풍성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최고의 맛이었다. 3년 전에 단 한 번 맛을 보고는 이후로 북경에 들려도 맛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책상을 제외한 모든 다리 달린 것과 비행기를 빼고 모든 공중을 나는 것들을 재료로 만든다는 중국 요리이지만, 중국에 올 때마다 내게는 그 단고기 탕에 대한 그리움이 다른 모든 요리에 대한 기대를 앞선다.


북경의 개고기 금지 조치




        북경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가족들과 함께 휴가로 중국에 갔다. 올림픽이 열리는 북경과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서남부의 윈난(雲南)성 지역으로 갔다. 쿤밍(昆明)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인터내셔날 헤럴드 트리뷴(IHT :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신문을 보는데 “No doggy hotpot this season"이란 헤드라인으로, 이번 여름에 북경의 식당에서 보신탕, 원문에 더 어울리게 번역하면 ‘개장국’을 금지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의 비슷한 상황이 생각났다. 중국은 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서만, 외국 기자나 관광객들이 주로 묶는 호텔 근처의 식당들을 대상으로 내린 조치라고 한다. 1980년대의 한국에서는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금지조치를 시행했다. 1983년 소위 브루셀라 파동이라고 하여 개고기에 대하여 기생충과 세균이 가득하다고 흑색선전을 언론을 통해서 했다. 이어 보신탕 음식점들을 폐점시킨다는 행정고시를 했는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 여론을 의식하여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보신탕이란 용어만 쓰지 않으면 계속 영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보양탕, 영양탕, 사철탕 등으로 관련 단어들이 풍성해지는 예기치 않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사실 서울 올림픽 기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개고기를 먹는데 특별히 힘들거나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음식으로서 원할 때면 항상 먹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시가 느닷없이 개고기 음식점에 대한 위생검열을 실시하면서 이제까지 개고기가 어정쩡한 상태로 팔리고 있었다는 것과, 비위생적으로 처리되고 내놓은 것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새삼 알려졌다. ‘새삼’이라고 한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자신이 준법정신과 위생관념이 무디어서인지 개고기 이외 대부분의 음식에 대해서 나는 적법성과 위생상태의 기준을 들이대지 않고 대충 최종적인 맛만 따지고 먹는 편이다. 


        아직도 개고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찬반 양측 모두 내 자신 고개를 끄덕일만한 논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특히 소위 ‘서구인(西歐人)’의 시각을 들어서 반대하고, 그리고 그에 대해 ‘민족’을 들어 격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만 좀 피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울 올림픽과 20년 후 북경 올림픽에서의 개고기 금지 조치는 개고기를 팔고 거기서 그것을 먹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에게 ‘후진적(backward)'으로 비추어 질 것이라는 발상에서 오로지 나왔기 때문에 한숨이 먼저 나온다. 

 
       기사에 의하면 이번 북경 당국의 금지 조치에 대해서 온라인상에서 찬반 토론과 투표가 벌어졌는데,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외국인들은 반반으로 비슷하게 나누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국인인 이 기사의 작성자 푸크시아 던롭(Fuchsia Dunlop)은 자신은 영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에서 개고기를 먹었던 경험과 그 맛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 기회를 원천봉쇄 당했다면서 아쉬움을 표시했다.




콤플렉스와 자기중심주의가 엇갈린 중국




        사실 이런 모습은 이번 북경 올림픽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개고기 관련 똑같은 양상이 벌어졌던 1988년 서울에서나,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64년의 동경에서도 벌어졌다. 그 기저에 서구로 대표되는 외국에 대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콤플렉스에 대한 반동은 극단으로 치우쳐서 지나친 자기중심으로 흐르기도 한다. 마치 개고기 논쟁에서 ‘외국’과 ‘민족’의 평행선을 그으며, 감정적으로 논쟁의 단계를 넘어서 치닫듯이.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동아시아 3국에서 벌어졌던 그런 상징적인 사건들을 보자.


        동경올림픽 때는 당시까지 상당한 숫자로 존재했던 유곽 곧 창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이슈로 제기가 되었다. 처음 집창촌을 폐쇄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다가 거센 항의에 부닥치고 결국 창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진과 예방조치로 대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이슈가 제기된 까닭은 단 하나, 부끄러운 일본의 모습을 외부 세계에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위정자들과 국민들에게 동경올림픽은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의 이미지를 벗어나 세계 사회의 일원으로 일본을 자리 매기고자 하는 눈물겨움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외국’ 손님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은 싹부터 없애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타자에 대한 사양지심의 지나침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자리였다. 한 가지 꼭 덧붙일 것은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지만, 그 때의 ‘외국’은 오로지 서구 세계였다.


        한국의 경우는 양극단으로 치우쳐서 과공(過恭)과 독선(獨善)의 형태로 동시에 나타났다. 일본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피해의식과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양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방문자들의 행동 자체를 나의 잣대에 맞추어 제한하려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내 안마당에서의 체면 차리기와 자존심 싸움은 판정시비나 지나친 로비로 과열되기도 했다.

 
       남대문시장 뒷골목과 달동네의 철거 대상 주택을 찾아 들어가고, 학생운동그룹과 인터뷰를 하고, 코를 막고 오징어를 구어 대는 모습을 연출한 미국의 NBC방송국에 대해 정부 당국 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필요 이상의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피해의식과 자존심이 묘하게 합성되어 지나치게 표출된 경우였다.


        일반 국민들이 싫어하는 나라의 하나로 미국을 자연스럽게 들먹일 수 있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서울올림픽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언론이라면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포장했던 한국 언론들이 NBC에 대해서는 잔칫집에 와서 재 뿌리는 격이라는 식의 객관적 사실보다는 국민정서에 입각한 보도를 주로 했다. 이에 더하여 몇몇 미국 선수들의 철없는 해프닝과 칼 루이스를 비롯한 몇몇 슈퍼스타들의 안하무인격의 행동이 미국 이미지에 투영되면서 한국 관중들이 농구 경기에서 미국이 아닌 소련을 응원하는 형태로 극적인 모습을 보이게까지 되었다. 정작 당사자인 미국은 가만있는데 뒤늦게 당황한 언론과 정부가 나서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사태(?)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 개인적인 견해로 미국의 한국에서의 이미지에 굵은 한 획이 그어진 시기였다. 그 선은 이후 미국을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두 갈래로 나누는 것으로 더욱 짙게 그려졌다.


        피해의식과 자기중심주의의 절정은 이번 올림픽을 주최한 중국이다. 위에서 언급한 개고기 금지, 폭력이 난무하는 노점상 단속, 북경 시내의 전통 가옥 지역인 후퉁(胡同) 지역 철거, 100만이 넘는 지방 출신 농공(農工)들의 소개(疏開), 주민의 편의는 철저히 무시한 채 서민주택가의 모습을 가리는 데만 급급하며 무지막지하게 세워버린 도로변의 차단벽은 외국인의 눈만을 의식하여 자국인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안중에 없이 취해진 것들이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올림픽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익 캠페인을 전개했지만,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중국은 사회개혁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인 공익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TV공익광고 캠페인의 두 주제가 ‘공중도덕’과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공중도덕은 교통질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중국인의 오랜 병폐라고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타파가 주목표였다.


        이런 면에서 100만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은 그 숫자와 존재 자체만으로도 중국인에게는 공익 캠페인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처럼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외국인들은 그 엄청난 숫자와 존재감을 ‘친절’에서 ‘과공’ 그리고 더욱 심하게  ‘감시’체제의 일종으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이외에 안전을 구실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선수단의 불편은 안중에 두지 않는 자세, 티베트를 비롯한 인권과 정치 문제에 대한 극도로 민감한 반응은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피해의식만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브랜드를 곧게 세워 아픈 상처를 극복하라




        사실 피해의식과 외국인들에 대한 의심스런 눈길에 대해서 중국인들은 세계 어느 누구보다 잘 합리화시킬 수 있을 만한, 동정을 살 수 있는 역사적 상흔을 크게 가지고 있다.


        1840년의 제 1차 아편전쟁 이래 중국은 서양 제국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예속 상태에 들어갔다고 평가한다. 그 질곡으로부터 정치적인 해방을 선포하는데 100여년이 걸렸다. 1949년 10월 국공내전을 끝내고 천안문광장에서 거행한 중앙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의 선포가 바로 그 이벤트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주도의 냉전시대에 양측 모두에서 경계와 소외의 대상으로 세계무대의 주변부에 있을 수밖에 없던 시절을 겪었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그러한 고립상태와 경직된 체제 속에서 뒤늦게 세계경제체제로 편입되면서 낙후된 이미지 속에서 좌충우돌의 시기를 겪었다. 이번 북경올림픽은 그런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으로 등장했음을 선언한 중국 국가 마케팅의 장(場)으로 먼저 기억될 것이다.

 
       국가나 기업이나 올림픽 마케팅의 성패는 폐막 이후에 올림픽으로 고양된 이미지를 얼마나 길게 하강 속도를 늦추며, 하강 자체도 최소화하는가에 있다. 특정한 사건이나 이미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평가와 영향이 달라진다. 장이모(張藝謀) 감독이 개막식에서 보여주었던 4대 발명품을 비롯한 중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중국의 찬란한 역사와 자존심의 정수로서 평가를 받다가, 곧 서구인들의 눈에만 맞추었다는 중국 내부의 비난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땅은 넓고 물품은 많은 지대박물(地大博物)에 세계 최고의 역사와 그에 따른 허다한 문화상품 등 얘기하고 싶은 꺼리가 너무 많은 국가이고 이번 올림픽으로 그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하나의 큰 브랜드로 묶을 것인가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하여야 할 때이다. 그저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대한 듯한 밋밋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이상의 슬로건을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그 브랜드를 실행하여 보여줄 때, 앞서 얘기한 콤플렉스 및 피해의식과 그 반발로서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렇게 했을 때 해당화의 단고기를 금지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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