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일으켜라-그러면 뜨리라

입력 2008-09-15 02:46 수정 2008-09-15 02:46
 ※ 9/13 조선일보에 실은 기고문입니다.



논란을 일으켜라-그러면 뜨리라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게 가장 심한 징벌은 '무관심'이라고 한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언론에서 전혀 다루어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존재감조차 없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게 잊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호감'이나 혐오스런 존재로라도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언론에 오르내릴만한 화제가 될 일들을 스스로 벌인다. 언론의 구미를 자극하고 이어서 사람들이 입방아 소재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사회 관습과 상식에 어긋나는, 즉 상궤를 벗어나는 일들을 벌여야 한다. 그렇게 일부러 자신을 구설수에 오르게 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이어 일련의 계산된 반응을 이끌어 내는 행위를 소음을 만들어 낸다고 하여 노이즈(Noise)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연예인들의 '열애설', '파경설', '은퇴설' 등의 주로 연예 스포츠 관련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는'~설'들 중 다수는 스스로 자가발전시킨 노이즈 마케팅인 경우가 많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정치인들의 성희롱 추문이나 음주, 폭행 등도 치밀하게 계획한 것은 아니겠지만 잠시나마 주목을 끄는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냈다.


      실제로 의도하여 연출한다는 측면에서 노이즈 마케팅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영화 마케팅에서이다. 삭제될 것이 뻔한 줄 알면서도 아주 선정적인 화면을 삽입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사례였다. 심의에 걸려서 몇 장면이 잘려 나갔다는 자체가 화제가 되면서, 관객들을 유인하는 데 톡톡한 효과를 거두었다.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없이 '민족주의'나 '애국심'과 같은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영화 외적인 논쟁으로 비화된 '디 워'의 경우는 실제 의도를 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나, 결과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통하여 흥행 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보통 개봉 후 3일 내에 모든 것이 결판이 난다는 영화라는 제품의 독특한 성격이 바로 노이즈 마케팅이 영화계에 범람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다. 단기간에 인구에 회자되면서 호기심을 유발하고, 영화관을 찾게 만들면서, 그 관객들이 더욱 큰 노이즈를 연쇄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키는 것이 영화 흥행의 대박공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좀 긴 호흡이 필요한 것 같은 기업이나 제품의 마케팅에서도 노이즈 마케팅의 사례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걸렸던 "선영아 사랑해"와 같은 사랑 고백이나 "문대성 한판 붙자"와 같은 싸움을 도발하는 듯한 문구의 플래카드도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통념상 은밀하게 행해져야 할 행동을 공개적으로 벌였다는 의외성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을 매체로 활용한  "낸시랭 실종사건"같은 경우도 '실종'이라는 단어가 갖는 쇼킹함과 함께 노이즈 그 자체를 구현하는 듯한 낸시랭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성격이 합쳐져 기대 이상의 파장을 몰고 왔다.


      노이즈 마케팅은 사회적 이슈와 연결시켰을 때, 그 반향이 더욱 커진다. '수녀와 사제의 키스', '피 묻은 군복', '탯줄이 붙어 있는 신생아' 등의 일련의 베네통 광고는 각각 '종교', '평화', '생명'이라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고민을 하여야 할 이슈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노이즈의 크기만큼 이나 긴 생명력을 가지고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든 한국에서의 사례들은 개인에 초점을 맞춘 차원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

 
      그런데 노이즈 마케팅에서의 더 큰 문제점은 소음을 불러 일으켜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뒷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멍석은 깔았고 구경꾼들은 모았는데 정작 그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 격이다. 소음이 크면 클수록 모인 사람들의 기대감은 부풀려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 실망의 정도도 훨씬 크고 오래 간다. 애초의 마케팅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소음 이후의 계획을 더욱 치밀하게 세워 두어야만 한다.


      예전 해외에서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당시 함께 일했던 한 미국 친구에게 "우리는 조용하게 소음을 일으켜야 해(We should make a noise very quietly)"란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우리가 일으켰던 소음은 충분히 컸고, 멀리멀리 퍼져 갔고, 오래 지속되었다. 소음 그 자체가 노이즈 마케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깊은 강이 멀리 흐른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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