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새기는 애프터서비스

입력 2008-09-10 22:24 수정 2008-09-10 22:24
 

브랜드를 새기는 애프터서비스




얼마 전 중국 내륙부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여행 준비를 하는데, 공교롭게 몇 년간 잘 썼던 카메라가 여행 떠나기 사흘 전에 고장이 났다. 애프터서비스 수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새로운 것을 사는 수밖에 없었는데, 온라인 쇼핑으로 사는 것이 가격이 쌌겠지만, 역시 그럴 여유가 없어서 떠나기 전전 날 대형 전자 매장에 가서 사버렸다.




가격 대비하여 성능이나 디자인이 상당히 괜찮았다. 기존 디지털 카메라를 제법 오래 써서 바꾸어볼까 하는 욕구가 있었는데, 어쩐지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9일간의 여행에서 이틀이 지나 3일째에 갑자기 카메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렌즈 부분이 줌아웃되면서 켜져야 하는데, 전혀 버튼 기능이 먹지 않아 켜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 접속을 하여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으나, 근무시간이 지나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기계음 응답이 나왔다. 근무 외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고장접수를 하라고 하여, 시도를 했더니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접수가 가능하단다. 가뜩이나 카메라 고장으로 그 날 하루는 여행의 큰몫을 차지하는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돌아다니는 발걸음조차 뭔가 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돌아다니면서 짜증이 나 있었는데, 오로지 그 원인이 된 고장접수를 위하여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따위를 적고 있었다. 그 회사에서는 고객 정보를 수집하고, 그를 마케팅 활동에 이용한다는 당연한 목적이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까지 회원가입을 강요하고 정보를 넣으라고 하는 것은 분명 역기능만을 초래했을 것이다.




응급조치라도 취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여행을 시작했다는 상황을 밝히고 로밍을 했으니 전화를 달라고 번호를 남겼다. 하루 종일 전화는 오지 않았고, 저녁에 숙소에서 인터넷을 체크해보니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인사말과 함께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넣고 켜보라는 컴퓨터 고장 났을 때 껐다가 다시 부팅해보세요 정도의 대책만 제시했다. 몇 차례 더 뭔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조치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으나 이후에는 아무 답이 없었다.




귀국한 후 다시 전화를 하니 서비스센터로 카메라를 가지고 찾아오란다. 서비스센터에서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제품이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증명서만을 떼어줄 따름이었다. 그 증명서를 가지고 제품을 구입한 매장에 가서야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매장에서는 우리보고 그래도 운이 좋았던 편이란다. 일찌감치 고장이 나버려 회사에서 할 말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쉽게(?) 환불이 가능했단다.




한때 카메라 제품에 대한 브랜드전략을 짜는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조사도 하고 담당자들도 많이 만났는데,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고 이번 일을 겪으며 파악한 카메라의 특성은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특성처럼 카메라도 그 순간에서의 중요성이 어느 제품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매우 감성적인 제품이다. 포착된 순간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정만큼이나 그 순간을 잡지 못했을 때의 절망과 배신감이 크다. 감성적인 측면과 더욱 가까운 브랜드의 근본적인 성격을 그리 강조하고 다녔으면서도 그동안 카메라를 전자제품의 일종으로 화소나 반응 속도 따위의 기능적인 요소에만 매달렸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애프터서비스 과정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아마 그 과정을 만든 사람들은 실제로 일반 소비자들이 겪는 것과 같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선별된 시험과정을 거친 제품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것이며, 혹시나 고장이 났을 경우도 특별한 조치를 받은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오지와 같은 중국의 여행지에서 작동이 되지 않는 카메라는 그 자체로 절망의 나락과 같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안타까움의 정도가 제대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란 없었다. 사실 6일이라는 남은 시간은 뭔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짐작컨대 해외에서의 고장에 대해서 전화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인터넷 고장 접수를 받는 사람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마도 고객응대요령이나 허다한 고장들에 대한 상세한 답변 가이드라인이 문서로 있었겠지만, 진정으로 고객의 안타까움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문자화 시켜 규정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게다.




애프터서비스를 단순히 고장을 접수하고, 고쳐 주거나 교환 혹은 환불하는 것으로만 규정해서는 곤란하다. 제대로 된 애프터서비스가 주는 감동은 새로운 제품을 손에 넣은 것보다 훨씬 극적인 장면과 감정을 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새겨지는 브랜드의 자국을 남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카메라 건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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