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마셜 맥루언

입력 2007-10-31 18:51 수정 2007-10-31 18:51
다시 읽는 마셜 맥루언

 

      지난 9월 중순에 개최한 디지털 포럼에서의 '웹 2.0 시대의 소비자'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면서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을 다시 읽게 되었다. 나는 맥루언이라는 이름 자체를 들어보지도 못했다가 뒤늦게 1995년에 삼성그룹의 해외 커뮤니케이션 전략 작업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당시는 그가 한 얘기 중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라는 개념이 무엇보다도 와 닿아서 그것을 삼성이 추구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의 핵심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지금 보면 치기 어려 보이고 얼굴이 후끈거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행위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하고, 자동차도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자랑스럽게 천명하였다. '바퀴는 발의 연장'이라는 맥루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한 미국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근래 짬짬이 맥루언을 다시 읽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바로 "The medium is the massage!"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고정된 단어의 뜻을 넘어서 소통될 수 있는 말의 세계를 확장시킨 맥루언의 통찰력과 천재적인 언어감각이 빚어 낸 일반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The medium is the message'가 의미에 초점이 많이 가 있다면, 마사지는 사람들의 몸에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느낌을 준다.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 중의 하나로 영국 캠브리지(Cambridge)대학의 영문학 교수였던 이보 암스트롱 리처드(Ivor Armstrong Richards)을 들 수 있다. 암스트롱은 '단어란 저마다 고유한 의미(원칙적으로 단 한 가지의)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의미와 목적에 적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유 의미에 대한 맹신'이라고 반박하며 '단어란 그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령 독자가 매우 복잡한 글을 읽고 있다면 눈으로는 그 단어를 읽고 있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거의 잠재 의식적으로 다른 의미들을 떠올리며 저울질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리처드의 충실한 학생이었던 맥루언은 리처드의 이런 견해에 감명을 받아 '단어는 한 곳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는 인상적인 아포리즘을 남겼다.

 

      고정된 단어의 뜻을 넘어서 언어가 기능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맥루언의 모색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여러 모습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그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제와 신부가 마이크를 사용하면서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개탄하다시피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마이크를 미사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라틴어가 거의 자동적으로 미사에서 쓰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라틴어는 실제로 일종의 배경음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웅얼거리는 라틴어는 거의 잠재적인 요소로, 풍부하고 거의 마술에 가까운 다층적인 표현을 제공하였으며, 라틴어라는 배경음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자들이 자유롭게 명상에 잠기거나 기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의 유명한 표현을 또한 빌리면 라틴어라는 거의 알아 듣기 힘든 '쿨' 매체를 마이크를 통하여 증폭되는 자국어라는 '핫' 매체가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72년 일기에서 미사가 "더욱 길고, 더욱 활기없고, 더욱 어색하게" 변해 가고 있다고 적었다.

 

      너무나도 단정적이고 틀에 박힌 단어의 사용은 이렇게 듣는 사람들이 놀면서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 버린다. 광고물을 보고하며 결정할 때 아무래도 경영자들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서 자로 잰 듯이 모든 단어나 그림들이 딱 부러지는 의미를 가지고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경우 그러한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면 할수록 광고 자체는 맥루언이 미사를 두고 얘기한 것처럼 활기가 없어진다. 요즘같이 창조적인 소비자들의 시대, 소비자들이 맘껏 상상할 수 있고 놀 수 있는 단어와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 성공적인 광고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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