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맞았어요

입력 2007-10-14 17:50 수정 2007-10-14 17:50
눈이 맞았어요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몇 마디를 따서 집어 넣는데, 촬영 진행은 보통 판에 박힌 듯한 포맷을 따른다. 방송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PD나 기자가 질문을 하고 나는 그 PD나 기자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TV에 비추는 모습을 보면, 정면이 아닌 약간 비스듬하게 얼굴이 잡히게 된다. 중간중간 기자나 PD는 내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리듬을 맞추어 고개를 끄덕끄덕 해준다. 그런데 그렇게 약간씩 끄덕거리는 고개짓이 상당한 자신감과 함께 얘기하는 데 탄력을 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약간 포맷이 다르게 앵커와 스튜디오에서 대담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경우는 앵커의 질문을 받는 순간만 살짝 앵커를 보고 나의 얘기는 계속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PD가 카메라 옆에 서서 큐싸인을 주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카메라 렌즈에서 그 옆의 PD에게 가곤 한다. 그랬다가 바로 잘못을 깨닫고 카메라 렌즈로 다시 시선을 옮기면 여지 없이 '시선이 왔다갔다 한다'는 지적과 함께 NG가 나오고, 다시 촬영을 하게 된다. 결국은 수 차례 다시 촬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대본이 있어서 그것을 그대로 외우거나 힐끗힐끗 보면서 읽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본능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개짓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내가 눈을 깜빡거릴 때, 비슷한 간격으로 박자를 맞추어 깜빡이는 그런 반응을 보고 싶은 것이다. 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지도 않는, 무표정 무뚝뚝한 눈을 크게 뜬 채로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와 눈싸움을 해서는 백전백패이다. 그 카메라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흡사 뭔가 반응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할 도리 밖에 없는데 그런 비위는 없으니, 나의 눈은 옆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대화술을 가르쳐 준다는 책을 보면 말을 하거나 들을 때 '상대방의 눈을 보라'는 내용이 항상 거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눈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호응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전해 줄 수 있는 수단과 통로가 된다. 영화에서 형사가 용의자를 신문하며 곧잘 하는 대사 중의 하나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를 해'라는  것 아니던가? 눈에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해서 알려 주는 풍향계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순진하던 시절 친구들과 처음으로 스트리퍼가 있는 클럽에 갔을 때 짖궃은 한 친구는 '댄서가 네 얼굴을 빤히 쳐다 볼텐데 그 때 눈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받아 주어야 돼!'란 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나에게 다짐을 받아 냈다. 그러나 정말 댄서가 나를 보았을 때 나는 단 몇 초도 댄서의 눈을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무심하게 실제로 나를 보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댄서의 눈이지만, 산탄처럼 흩어진 시선이라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내게 와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찌 할 수 없었던 죄의식과 분위기의 어색함이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친구의 말처럼 꼭 댄서와 그런 식으로 기싸움을 벌여야만 했는지, 댄서도 그 허접스런 관중들과 기싸움을 벌인다는 의식이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더욱 주눅이 들었고, 그런 장소는 가장 내키지 않는 곳이 되었다.

 

      눈을 마주 치며 기싸움을 벌이는 대표적인 광경은 복싱이나 이종격투기 경기 직전의 링에서 볼 수 있다. 보통 실제로 선수들이 듣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심판은 주의사항을 몇 가지 얘기하고, 그 동안에 두 선수들은 상대의 눈을 자신 쪽으로 빼내 올 듯이 눈싸움을 벌인다. 선수들 얘기로는 그 눈싸움에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고 자기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도구가 된다. 그들에게 승부란 것은 바로 눈을 어떻게 맞추느냐에서 시작된다.

 

      광고의 본질과 목표도 결국 소비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눈길이 어디로 가는가를 알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 조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향한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하여 끊임없이 어떤 때는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런 눈이 반짝 뜨이는 아이디어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책망하기까지 한다. 첫째 원인은 소비자 조사 자체에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소비자 조사가 고정된 틀 속의 소비자를 파악하고 있다. 소비자는 살아 움직이며 특정 작용 하나하나에 반응을 보이는 인간인 PD와 같아, 나의 눈은 자연스레 그를 쫓아 갈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소비자 조사는 고정된 카메라를 어떻게 잘 묘사할 것인가에 매달려 있다. 소비자 조사 결과를 소비자들의 스냅사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한 순간을 포착하는 스냅사진이라면 의미가 없다. 사진 속의 소비자들이 어떤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알려 주고, 그것을 파악하는 데 소비자조사 스냅사진의 의미가 있다.

      설사 스냅사진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는 경우를 또한 많이 본다. 지나치게 공화당 보수우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지만, 아랍 문제에 관한 미국 최고의 학자로 알려진 '후아드 아자미(Fouad Ajami)'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대학교 교수가 2004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그들이 우리를 미워할까?'라는 질문에 상반되게 답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우리를 미워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라고 하는 데 비해서, 두 번째 유형은 '그들이 우리를 미워해.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There are two schools of thought about the famous question: Why do they hate us? One school of thought says: 'They hate us-what's wrong with us?' The second school says, 'They hate us-what's wrong with them?'"

 

      마케팅의 기본은 소비자를 쫓아가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당신들이 잘못되었다고 윽박질러서 내 편을 만들 수는 없다. 잠시 만들 수는 있으나, 오래 갈 수가 없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쫓아 간 연후에, 소비자들을 내 쪽으로 유도할 수가 있다. 소비자들과 눈이 잘 맞추기 힘들면 소비자들이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책망하지 말고, 자신의 시선을 소비자 쪽으로 바꾸면 된다.

 

      12년전 당시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던 일본 여학생이 무슨 연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학 기간에 우리 부서에 인턴으로 와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 사무실 근처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고개를 확 돌리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저 앞 벤치 사람이랑 저랑 눈이 맞았어요"하고 얘기를 한다. "빨리 쫓아가. 한국에서는 눈 맞으면 그냥 쫓아 가는 거야"라고 농담을 하고는 한참을 웃었고,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그 친구가 꼬집은 자리의 상처가 오래 갔다. 소비자와 눈 맞았다 싶으면 그냥 쫓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열심히 쫓아 다니다 보면 우리 시선 가는 쪽으로 눈을 맞추려 소비자 쪽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쫓아 올 날이 분명히 생긴다.

 

※ 유감스럽게도 아자미 교수의 위와 같은 경고성 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인들 탓으로,   아랍인들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돌리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가장 가까운 학계 인사   중의 하나이자 이라크전의 지지자로 꼽히는 아자미 교수도 그 후의 모습을 보면 소비자로서   아랍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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