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은 여자, 여자

입력 2004-06-18 10:04 수정 2004-06-18 10:04
// 방송기자 신영(명세빈). 투견도박에 관한 제보를 받고 문제의 장소에 잠입하려던 순간 개에게 들켜 달아나다 뒷 다리쪽을 물린다. 다행히 옷만 뜯겼지만. 옆에 있던 남자 선배,고생하는 후배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여기자의 극성 취재가 못마땅했는지 "그러게 시집이나 가지, 웬 고생이야"라고 내뱉는다. 이때 신영이 쏘아붙이는 말. "시집가긴 쉬운 줄 알아요."//



"시집가긴 쉬운 줄 알아요". MBCTV 미니시리즈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한마디는 이 땅에 `혼자 사는 여자`가 늘어나는 까닭을 한마디로 대변합니다. 극중 주인공은 신영 순애(이태란) 승리(변정수). 신영은 방송 기자, 순애는 전직 스튜어디스, 승리는 이혼한 백화점 문화센터 강사지요. 서른살 세 여자가 싱글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영이 사귀던 남자는 기자인 신영을 버거워하며 젊은 여자와 결혼하고, 순애의 애인은 집안 형편상 결혼 후에도 친정을 도와야 한다니까 내뺐지요. 한사람은 일, 한사람은 가정형편 때문에 실연당해 본의 아니게 노처녀가 된 셈입니다.승리는 결혼했었지만 바람피는 남편에 대응해 맞바람을 폈다 이혼당해 혼자가 됐구요. 뿐인가요. 순애는 비행중 다른 여자와 여행하는 애인을 보고 분한 김에 한 대 때렸다가 해고돼 직장까지 잃었습니다.



그렇다고 셋 다 영영 혼자 살 작정인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주위의 눈도 그렇고 외롭기도 해 어떻게 괜찮은 남자를 구해 결혼을 해보려 하지만 도무지 여의치 않은 겁니다. 조건이 괜찮으면 느낌이 아니고 느낌이 어지간하면 조건이 영 아니구요. 느낌과 조건 모두 웬만하다 싶으면 유부남이거나, 이혼경력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젊은 여자와 결혼할 궁리만 하기 때문이지요.



실제 신영은 실연당한 뒤 만난 초등학교 동창 준호에게 관심을 갖지만 의사인 준호는 젊은 여자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요. 그것도 집안 형편 넉넉한. 신영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건 아니면서도 결혼 대상으로 선뜻 선택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겁니다. 곡절 끝에 신영과 결혼하기로 하지만 일때문에 바쁜 신영에 대해 불만스럽기만 하구요.



순애의 경우 병든 아버지와 고모네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만큼 상황은 더욱 나쁘지요. 의사인데다 성격도 무난한 준호를 마음에 둬보지만 신영이 좋아하는데다 준호 또한 외면해 소용없구요. 고모가 주선하는 맞선 자리는 애 딸린 홀애비같은 곳뿐이어서 순애를 서글프게 합니다. 승리는 세상과 남자 모두 우습게 아는 척하지만 그 역시 외롭고 쓸쓸하긴 마찬가지구요.



드라마는 여느 드라마와 다름없이 큰 줄거리보다 각종 에피소드에 기대 진행됐습니다. 황당하고 현실과 차이나는 대목도 있구요. 스튜어디스가 사적인 일로 비행기에서 사람을 때려 해고당한다는 것도 그렇고, 고모가 서른살 조카의 통장에서 돈을 함부로 꺼내(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의논도 없이 주식투자를 하다 날린다는 것도 그렇고, 취재원이 보도국 안까지 쳐들어와 축구공을 마구 던지는 등 횡포를 부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자 셋이 호스트바에 가서 이 남자 저 남자 불러대는 게 어느 정도 현실적인지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이 드라마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파란만장 미스김의 10억 만들기`처럼 터무니 없고 우스꽝스럽진 않았습니다.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다`를 명패로 내걸었던 수많은 드라마가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신데렐라를 만드는데 그친 것과 달리 이땅 여성들의 처지와 심정, 고민과 고독을 드러냈으니까요.



여자는 그저 내편 아니면 네편으로 갈라져 물고 뜯는 존재로, 남자는 모든 갈등을 수습하고 해결하는 존재로 그려대지 않고, 성격과 처지가 다른 여자끼리 동성으로서의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며 기대고 위해주는 것도 점수를 줄만합니다.



어쨌거나 시집가기 어려운 여자들의 앞날은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선 순애의 사정만 두드러지지만 신영 역시 아버지가 안계신 그저 그런 집 딸이지요. 준호가 신영에게 관심이 있으면서도 극 중반까지 다른 여자를 찾아보려 하는 것도 신영의 가정형편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남녀 모두 때 되면 무조건 결혼한다거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니 단칸방에서라도 신혼살림을 시작한다는 건 옛말입니다.남녀 모두 가능한한 느낌도 `통하고` 조건도 좋은 상대방을 골라 결혼하려는 게 엄연한 현실이지요. 게다가 남자들의 경우 속으로만 바라던 종래와 달리 지금은 가능하면 처가 덕도 보고 싶어하구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이런 현실을 잘 나가는 여배우들의 망가진 모습을 통해 코믹하게 다뤄 상당한 시청률을 올렸습니다.하지만 현실을 패러디한 코미디는 언제나 슬픈 법.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보여주는 보통 여자들의 `시집가기 힘든 세상`은 경쾌한 터치와 가벼운 묘사에도 불구하고 가끔 서글펐지요.



일하기도 힘들고, 시집가기도 힘들고, 시집가서도 힘든 세상. 25-29세 여성의 미혼율이 70년 10%에서 2000년 40%로 늘어나고, 예전같으면 완전히 불량품 취급을 받았을 30-34세 미혼여성 또한 11%나 된다는 통계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셈이지요. 결혼 적령기 여성 37.9%가 `결혼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구요.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했다가 못견디고 갈라서면. 출산율이 떨어질 건 뻔하고도 뻔합니다. 가임여성의 평균 출산율이 1.17로 세계 최저수준에 이르렀다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지요.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에선 기껏 출산휴가를 늘려준다, 육아수당을 준다, 유치원 교육비 보조를 해준다다 법석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고, 해도 늦게 해서 애를 거의 낳지 않는다면 그런 조치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보여주는, 결혼하기 어려운 세상을 바꿔 시집가기 쉽게 만들자면? 글쎄요. 우선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결혼한 남자들이 아내를 위해 상 차릴 때 수저라도 놓고 화장실 청소라도 하면... 그러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요.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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