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세상의 강을 건너는 법

입력 2004-06-15 09:49 수정 2004-06-15 09:49
얼마 전 주말 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1박2일 일정이었으므로 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 점심까지 잘 대접받고 즐겁게 지내다 돌아왔지요. 다음 주초 출근해 초청해준 곳의 실무자에게 e메일로 "고마웠다"고 인사했습니다. 물론 답장을 받았지요. "메일 받고 기뻤다"는.



전같으면 무심코 지나갔거나 속으로만 고맙다고 생각하고 말았겠지요. 누군가 혹은 어떤 곳에서 제게 해준 일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이처럼 겉으로 표시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습니다. 후배로부터의 e메일 한 통이 주위의 친절이나 배려에 대한 감정 표시에 서툴던 제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가르쳐줬던 것이지요.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늘 후배인줄 알다가 어느 순간 자리에 저보다 윗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부터 회식자리를 주관하는 일이 잦아졌지요. 좋든 싫든 회사에선 회사에서대로, 밖에선 밖에서대로 윗사람 노릇을 해야 하기에 이르른 겁니다. 당연히 회식자리의 비용을 내는 일도 많아졌지요. 판공비나 업무추진비도 없는데 왜 꼭 선배나 윗사람이 계산해야 하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도리 없었습니다. 저 역시 후배일 때 선배가 내는 걸 너무도 당연시했으니까요.



선배 혹은 윗사람 역할은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일단 책임을 맡으면 개인적인 사정에 상관없이 꼭 참석해야 하는 건 물론, 사전엔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오도록 독려하고, 모임장에선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살피고 이끌어야 하니까요. 제 경우 아무리 작은 모임의 장도 구성원의 신망이 없으면 못한다거나, 모름지기 선배란 후배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주어지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출근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스팸메일 사이로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였습니다. 열어 보니 "어제 저녁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000 엎드림"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더군요. 전날 저녁 회식에 참석했던 후배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뭔가에 세게 부딪친 듯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여러 차례 모임을 주관했지만 끝난 뒤 그런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메일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의 제 삶을 돌아봤습니다. 늘 `누가 나 좀 안챙겨주나` `왜 좀더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 제게 신경쓰고 잘해줘도 `그런가 보다`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우편으로 책이나 카드, 작은 선물을 받고도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받으면 분명 기쁘고 즐거웠는데도 마음을 겉으로 표시한다는 게 영 쑥스러웠던 탓입니다. 때론 `전화해야지` 생각하곤 다른 일에 쫓겨 잊어버린채 시간이 지나기도 했지요. 보낸 사람이 얼마나 궁금해할까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던 중 받은 후배의 그 메일은 다른 사람의 호의나 배려에 대한 감사 표시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게다가 누가 내게 해주는 일 가운데 당연한 게 어디 있겠는가라는데 생각이 미쳤지요. 그 뒤부터 개인적이로든 사무적으로든 다른 사람의 호의와 배려를 받으면 e메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애씁니다. 상대방의 답장을 받고 보면 역시 사람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여겨집니다.



어떤 일을 부탁하고 나서, 혹은 경조사를 치른 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싶습니다. 간혹 부탁할 때는 정신없이 자주 연락하다 일이 끝나면 통무소식인 사람을 보면 섭섭하고 언짢거든요. 일이 잘됐느지,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지 궁금한데 그렇다고 전화를 먼저 하자니 생색내는 것같아 그만두다 보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일이 잘됐든 안됐든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즉시 전화나 e메일로 "그 일은 이러저렇게 잘 해결됐다. 고마웠다" 혹은 "그 일은 잘 안됐다. 애써줘서 고맙다" 하고 알려주면 잘된 경우는 잘된 대로, 아닌 경우는 아닌 대로 경과를 알고 그에 대응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경조사 역시 비슷하지요. 언젠가 부친상을 치른 이로부터 한자 투성이의 형식적인 인사편지(영수증같은)가 아닌 "찾아줘서 고맙다. 아버님은 이러이러한 분이셨다. 남은 가족은 누구누구고 우리들의 지금 마음은 이렇다. 찾아준 일은 우리 가족 모두 잊지 않겠다"는 편지를 받고 놀라고 감동했던 적이 있습니다. 딸을 결혼시킨 아버지로부터 딸과 사위가 어떻게 자랐고, 뭘 하고, 시집보낸 지금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지와 함께 "찾아와 축하해줘 고마웠다"고 적은 답례편지를 받고 "아!" 했던 일도 있지요.



흔히 회사에서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고 나면 주스나 떡을 돌리는데 그것도 괜찮지만 곁들여 이렇게 경과보고를 겸해 자신의 각오나 심정을 담은 e메일을 띄우면 한결 정겹고 자신을 알리는 데도 좋지 않을른지요. 제게 메일을 보낸 그 후배는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알리고 상대방을 내편으로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라고 여겨지니까요.



`세상은 혼자 못산다`고 합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유난히 강조되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제 경우 몇몇 모임의 총무도 맡고 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심부름을 하다 보면 잘못의 책임 소재를 떠나 궂은 일도 있고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왜 맡아가지고" 싶은 때도 있지요. 그래도 구성원 누군가로부터 "애쓴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전화나 e메일 한통만 받으면 금방 풀립니다. 네트워크든 빽이든 시작은 이렇게 먼저 손내밀고 인사하고 호의나 배려 친절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싶습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에서 간혹 미소지을 수 있고 그래서 "살아봐야지" 싶게 만드는 건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고마움과 사랑 존경 모두를 표시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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