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어서 명품을 찾는다

입력 2006-12-10 08:02 수정 2006-12-10 16:20
시간이 없어서 명품을 찾는다

 

      미국의 모 광고대행사에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트렌드 리포트를 내놓으며, 대표적인 현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꼽았다.

 

1. Time Starvation : 시간에 쫓긴다

2. Explosion of Choice : (구매할 때) 결정 내릴 것들은 너무 많다

3. Fulfilment for Sale : 쇼핑을 하며 정서적 만족까지 추구한다

4. Premium Redefined : 프리미움을 새롭게(다양하게) 정의한다

 

      그 대행사에서는 각각 개별적인 현상으로 위의 네 가지를 소개했는데, 나는 이것들이 서로가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대로 시간이 없는 것으로부터 명품 프리미움을 찾게 되는 것까지 논리적으로 연결이 된다고 본다. 그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자.

 

      우리들의 생활 리듬이 빨라지고, 예전과 비교하여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 같다. 일이 많아지고, 일하는 시간이 그에 따라 늘어나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지난 해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낸 보고서에 의하면 OECD국가의 사람들이 40년 전에 비하여 하루 20분 정도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경우도 아마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바빠지고 시간에 쫓기게 된 것은 관심분야와 활동범위가 다양해지고 넓어져서 그렇다. 늘어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계획도 잡아야 하고, 친구들과도 물리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메신저나 블로그를 통하여 열심히 교류도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운동도 해야 하고, 그런 육체건강에 덧붙여 정신건강을 위한 명상이나 요가, 다른 취미활동까지 해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내심이 줄어들고, 쉬는 것 자체에서조차 효율성을 따지며 다음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아이러니에 부딪히게 된다. "두 시간 밖에 시간이 없으니, 그 시간 동안에 나를 최대한으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오!"

 

      그런데 필립 코틀러 등이 쓴 『The Elusive Fan』(Irving Rein/ Philip Kotler/ Ben Shields, McGrow Hill, 2006)에 인용된 미국의 조사회사인 해리스인터액티브(Harris Interactive)가 2004년 말에 조사하여, 2005년에 발표한 미국인들의 레저생활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레저생활에 소요하는 시간은 1973년에 주당 26시간에서 2004년에는 주당 19시간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미국인들의 레저시간이 줄어드는 데 결정적인 이유는 저소득층의 증가였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임금 차이가 더욱 벌어지면서, 더욱 많은 저소득층이 두 세 개의 일자리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계층은 수입만을 기준으로 볼 때, 생산성이 향상되어 더 적은 시간 일을 하고도, 더 많은 수입에 레저로 바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그렇게 바빠야만 본인이 현대적으로 사는 것 같고, 상당히 중요한 인물처럼 스스로 자기만족적인 인식을 하게 되어, 더욱 그런 티를 내기도 한다.

 

      바로 위에서 본 것처럼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는 쫓기는데, 제품을 사는 과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제품들, 브랜드들이 많아지고, 동일 제품 속에서도 세분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식품점들은 1991년에 평균적으로 15,000개 정도의 브랜드를 취급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작년 2005년의 경우는 무려 세 배가 뛰어서 45,000개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TV를 사는 기준은 몇 인치 짜리를 살 것인지의 크기 밖에 없었는데, 이제 크기는 기본이고 PDP, DLP, LCD 중 무엇을 살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근래 시장에서는 선택을 내려야 할 것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교수인 로버트 레인(Robert E. Lane)의 『The Loss of Happiness in Market Democracies』와 스워쓰모어대학(Swarthmore College) 교수인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The Paradox of Choice - Why More is Less』란 책들이 제목 그대로 너무 많은 제품과 브랜드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시간은 없고,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그 제품 카테고리에서 어떤 브랜드를 사야 할지, 그 브랜드에서 어떤 모델을 살 것인지 등 결정 내릴 것들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은 구매 결정을 내리는데,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은 더욱 현명해지고 치밀하게 사전 정보를 획득하고 비교, 분석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상 그 반대로 경험 등에 의존한 직관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예전 방식으로 하는 소비자 행동 예측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니먼(Daniel Kahneman)의 말처럼 소비자들이 비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 소비자들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들이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The central characteristic of consumer is not that they reason poorly but that they often act intuitively)."

 

      직관은 본인의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쁘고 결정 내려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이 내세우는 제품의 추가적인 기능이나 저렴한 가격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꼼꼼하게 따지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한 브랜드들 중에서 즉각적,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제품들에 기울어지게 된다. 단순히 나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쇼핑이 아니라, 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행위의 일종이 된다. 우리가 구매하는 제품 중 가장 고관여, 고가의 제품은 아마 주택일 것이다. 그 주택의 일종인 아파트 광고들의 대부분이 물론 물질적인 차별화 자체가 힘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감성적인 방향으로, 심지어는 '불륜을 조장한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흐르고 있다. 여기서 제품은 소비자의 그런 은밀한 내면의 욕망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그 비밀을 공유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불륜'까지는 심했고, 일반적인 경우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돋보이게, 조금은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쉽게 만족시켜 주는 것이 바로 명품 브랜드이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 광고대행사에서 나온 리포트에 따르면-우리 모두도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도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새로운 명품시장(New Luxury)'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 초명품들의 접점 증대 (Accessible superpremium)

2. 기존 명품들의 브랜드 확장(Extension of old luxury brand)

3. 대중을 위한 명품의 출현(Masstige)

 

      예전에는 극소수의 가진 자들 사이에만 거의 점조직으로 판매되던 초명품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 자신들도 매장을 개설하고 면세점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보통의 사람들도 어느 부분에서는 약간만 무리를 하면 명품을 특정 부분에서 즐길 수 있도록 브랜드를 확장한다. 예를 들어 '베라 왕(Vera Wang)'을 느끼기 위하여 굳이 수만 달러의 웨딩 드레스나 파티용 드레스를 입을 필요없이, 이제는 100불 안팎의 베라 왕 향수를 사면된다. 이와 비슷하게 아주 일상적인 용품에서도 명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스타벅스(Starbucks)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커피에서도 명품을 추구하는 것이다.

 

      스타벅스와 같은 경우가 위에서 든 네 가지 트렌드가 집약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후딱 커피 한 잔 사가지고 나가는 패스트푸드점에 비해서, 스타벅스에서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뭔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여유 있는 행동을 했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주문만 하는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커피향 속에서 느긋함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결정 내릴 것은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일상에서는 쓰이지도 않는 단어로 이루어진 커피와 커피 아류의 제품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크기와 컵의 종류, 어디서 마실 것이지를 결정해서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특수용어와 절차에 따라 스타벅스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면서 특별한 의식(儀式)을 행하면서, 코드 언어를 공유하는 유대관계를 맺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엮어져 스타벅스를 마시는 나는 특별한, 프리미움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선형(線形) 인과관계로 엮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는데 결정을 해야 할 것들은 많아지고 하니, 짧은 시간 동안의 쇼핑 활동에서도 이성적인 결정보다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기초하여 감성적, 직관적인 만족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명품들이 대중에게 더욱 접근하는 양상과 어울려 자신을 올려 주고,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명품들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어느 분야에서나 명품은 만들어 낼 수 있다. 주요한 트렌드들을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나에게 유리하게,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열쇠가 된다. 복잡한 주문 과정을 의식처럼, 마음에 여유를 주는 과정으로, 그 과정을 거치는 자체가 진정한 커피의 맛을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만든 스타벅스의 예는 두고 두고 생각할 가치가 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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