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슬로건

입력 2006-08-29 17:09 수정 2006-08-30 09:16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슬로건-

휴스턴(Houston) : It's Worth it (그만한 가치가 있다!)

 

      2002년 초, 휴스턴에 밤 늦게 내려 무언가 가라앉은 듯하면서도 어수선한 분위기의 한국 술집에서, 휴스턴에 살던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다. 한국 술집의 그 묘한 분위기는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주에 휴스턴에서 한인교포 사업가 한 명이 총으로 가족들을 쏘아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선배의 얘기인즉슨 그 총격을 저지른 아저씨가 말없이 성실하기 그지 없는 분이었단다. 그래서 착실하게 사업에서도 성공한 축으로 인정을 받고, 자식 교육에도 별 문제 없는 분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단다. 그런데 그 분에게 독특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6개월에 한 번씩은 4박 5일의 일정으로 LA로 날아가서 온갖 종류의 한인술집들을 전전하며, 진탕 방탕 놀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스턴으로 돌아오면 원래의 성실한 교포상인으로 돌아가곤 했었단다. 충격적인 총격사건이 일어났던 그 해는 어떤 일이 생겨서였는지 그 아저씨가 6개월이 한참 넘어서까지 LA를 갈 짬을 내지 못했단다. 그 좁은 공간에서의 짜여진 생활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아저씨가 급기야는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 선배의 사건 배경과 이유에 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었다. 본인은 그 아저씨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이며. 그 설명 자체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긴 하나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 선배와 만나기 전 호텔에 도착하니, 마침 먼저 낮에 도착하여 휴스턴 시내 한 바퀴를 돌고, 유명한 스트립바 같은 곳에도 들렀다 온다는 사람들이 호텔로 들어오는 중이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휴스턴에서 가장 좋다는 스트립바를 들렀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 불평들을 했다. 선배에게 그들의 불평을 전하니, 그 선배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며 문답이 이어졌다.

 

"유럽에서 'The City'하면 어디를 말하지?"

"런던(London)이죠."

"미국에서는?"

"뉴욕."

(스트립바를 좀 품격있게 일컫는)"더 맨즈 클럽(The Men's Club)하면?"

"글쎄요...."

"미국에서는 그 친구들이 갔다는 휴스턴의 그 집을 얘기해. 미국 최고(最高)의 클럽이지. 사우디 왕자도 미국에 오면 꼭 들르고, 안나 니콜 스미드(Anna Nicole Smith)가 바로 거기서 춤을 추다가 그 억만장자와 결혼을 하게 된 거야."

 

※ 안나 니콜 스미드는 휴스턴 출신의 스트립댄서로 석유재벌인 하워드 마샬(J. Howard Marshall)을 만나서, 1994년 26세의 나이로 89세의 마샬과 결혼을 한다. 결혼한 지 1년만에 마샬이 사망하며, 그의 자손들과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의 재산상속을 둘러 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재판 진행 중에 그녀는 자신의 리앨러티쇼를 만들고, 광고모델로 나서는 등 계속 화제를 뿌리며 다니고 있다.

 

      안나 니콜 스미드까지는 모르겠는데, '미국 최고'라고 말하는 그 선배의 어투는 정말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했다. 그 때로부터 딱 10년 전인 1992년, 억수같이 비가 오던 초여름 날 휴스턴을 처음 방문했는데,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이동하는 짧은 순간에 맞은 비로 흠뻑 젖어 "엄청난 비에요(What a heavy rain)!"하며 식당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이봐, 텍사스에서는 모든 것이 엄청나(Everything's heavy here in Texas, kids)"하면서 의기양양해 하던 식당주인의 말투와 비슷했다. 10여년 정도가 지나 텍사스 댈라스(Dallas)에 위치한 삼성전자 법인을 찾아 갔을 때 마침 또 소나기가 내려 건물 로비로 뛰어들었을 때, 경비원은 휴스턴의 식당주인이 한 것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말을 역시 의기양양해서 던졌다.

 

      전형적인 텍사스 사람은 숨이 막혀 빠져 나가려 발버둥을 치면서도,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과장하여 비치고 실제 그렇게 느끼기도 하는 낙천적 성향을 보이는, 양면적인 구석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그런 성향이 휴스턴에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처음 휴스턴에 정착한 휴스턴 건설의 아버지들로 일컬어지는 두 모험가의 유산일 수도 있다. 그들은 지금의 휴스턴이 위치한 진흙뻘을 '물을 끌어댈 필요가 없는', '건강에 좋을 것 같은' 땅으로 묘사하며, 사람들의 정착을 유도했다. 따져 보면 100% 틀린 말은 아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진흙탕이니 물을 댈 필요가 없겠고, 그런 진흙탕에 발이 푹푹 빠지며 걷다 보면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될 터이었으니.

 

      "Houston. It's Worth It(휴스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캠페인은 사람들이 휴스턴이라 하면 손사래를 치는 것들을 보여 준다. 푹푹 찌는 더위, 숨을 막히게 하는 습도, 여름이면 매주 밀어닥치다시피 하는 태풍, 비행능력까지 갖춘 큼직한 바퀴벌레,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정유시설 등등. 이렇게 휴스턴을 떠나야 할 이유들을 열거한 다음, 이들은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휴스턴에 사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며 극적인 반전(反轉)을 꾀한다.

 


 

휴스턴 캠페인의 장점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강점으로 전화시키려는 용기에 있다. 휴스턴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그리고 진정한 휴스턴 사람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나사(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에 기대어 보려 한 공식적인 휴스턴 관광 슬로건인 "Space City. A Space of infinite possibilities(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로 향한 도시)"보다는 휴스턴의 본질을 충실히 담고 있다. 그리고 휴스턴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이 깨쳐야 할 상황은 어찌 보면 술주정뱅이 친척이 있는 것과 비슷해요. 절대 그 친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죠." 그런 부정적인 사항들은 빠져 나가려, 숨기려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을 더욱 얽어맨다. 그런 상황에 과감히 정면으로 맞선 휴스턴 캠페인의 미덕은 자신의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는데 있겠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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