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생생한 꿈

입력 2006-08-20 23:52 수정 2006-08-20 23:52
너무나도 생생한 꿈

 

      평상시 잠을 많이 자는 편도 아니고, 그런 잠도 숙면을 잘 취하지도 못하는 편이다. 건강에 아주 좋지 않은 것이라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선잠을 자면서 꿈을 꾸면, 생생하게 기억도 잘나고, 꿈의 내용도 허무맹랑하지 않고 아주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예전부터 그렇게 잠을 자며 꿈을 많이 꾸어서, 꿈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것을 즐겨 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겨울이 특히 꿈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해주던 시기였다.

 

      당시 중앙통제식 보일러가 설치된 단독주택에 살았다. 할머니께서는 가족들이 잠 들 시간 직전인 9시반이나 10시경에 보일러를 켜서 한 시간 정도 돌리고는 껐다가, 가족들이 깨기 직전인 새벽 4시반이나 5시경에 다시 켜곤 하셨다. 나도 그 사이클에 따라서 공부 시간과 수면시간을 조절했다. 보일러가 들어와 방바닥이 따끈해질 무렵에 담요 하나 둘둘 말고 바닥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새벽 두시가 좀 넘으면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자연스럽게 깨어나게 되었다. 한데서 자고 일어났을 때 처럼 몸 여기저기가 약간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자명종 시계나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보일러를 키고 끄시는 할머니와, 그에 맞추어 작동하는 보일러의 간접적인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깨어난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회복이 빠른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몸이 지끈거리는 것도 심각하지는 않게 느껴졌다. 또 여기저기 약간씩 지끈거리는 것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차라리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일어나 2~3시간 공부를 하면 안방에서 보일러를 키시고, 조금 있다 내 방바닥에서도 보일러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주 약한 불에 콩을 볶는 듯한 보일러 작동 소리가 잦아들 즈음인 5시 정도에 다시 담요를 둘둘 말고 잠을 청했다. 그 때 학교에 가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했으니까,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자는 것인데, 추위에 웅크려진 몸이 따뜻한 기운을 타고 풀려 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애써 그 토막잠을 자는 가장 주된 이유는 그 때 꾼 꿈이 대부분 생생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이었다. 그 생생한 기억이 지워질세라 아침 식사할 때나 버스 안에서 몇 번씩 되새김질을 하고 학교에 와서 친한 친구들 몇몇을 모아 그들에게 새벽의 꿈 얘기를 해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난 토요일 하루 종일 집에서 방학 끝 무렵의 애들과 빈둥대다가 저녁에 잠깐 외출을 하여 돌아다니려다가 이름도 그럴싸한 태풍 '우쿵'의 체면치레 작별인사와도 같은 비와, 토요일 오후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은 출근길 가장 혼잡한 시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차량홍수에 밀려 식사만 하고 집에 들어오니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의 보일러가 새롭게 작동하던 새벽 시간과 비슷한 노곤함이 퍼지면서 졸립기 시작했다. 할 일도 있고 해서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만 자기로 했다. 시간 맞추어 가족들이 마루에서 떠들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괴로울 정도로 생생한 꿈 때문에 깨어났다.  

 

      꿈에서 나는 서울 시내 강북의 어느 오래 된 듯한 동네에 있는 음식점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점원이 앞의 사람을 계산하면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시간을 지체하고 있어서, 무료함과 답답함에 까딱까딱 거리면서 서 있는데, 자동차 정비공 작업복 혹은 -그런 것이 있다면- 간이 우주비행사복 같은 것을 입은 미국인들 세 명이 내 뒤에 섰다. 가장 진지하게 생긴 친구에게 계속 까딱거리면서 '점원이 서툴기도 하고, 무슨 문제도 있는 것 같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라'하고 얘기를 했더니 이 친구가 생긴 것처럼 진지하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여러 질문들을 해댔다. 어느 한국회사와 기술협력을 하는데 그것 지원을 위해서 3개월째 한국에 있다며 미국 애답게 북한의 핵 관련 질문도 하고, 일본 수상이 뭐가 문제냐는 얘기도 하다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냐고 해서 광고대행사에 다닌다고 했더니 팔을 잡아 끌며 좀 더 얘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진지한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자 하고, 차례가 되어 계산을 치렀다.

 

      같이 있던 회사 후배가 영수증을 내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그것을 가지고 회사로 간다고 해서 미국 친구에게 식당 앞에 나가 있겠다고 하고, 후배의 택시를 잡는데 갑자기 그 많던 택시가 보이지를 않았다. 그 미국 친구가 나오고, 회사 후배가 조금 걸어가서 영수증 전달하면 되니까 걸어가자고 해서 걸어가면서 다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한 블럭을 다 가지 못하고, 차도 한 복판에서 농성 중인 집단과 부딪혔습니다. 아랍 여성들의 베일 중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몸을 가리는, 눈 부분까지도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를 걸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피켓과 모금함을 가지고 차도 복판에 웅크려진 조각처럼 주저 앉아들 있었고, 몇몇은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사이를 뚫고 지나가자 갑자기 몇몇이 모금함 같은 통을 들고 벌떡 일어나 달려들 듯이 몰려 들었다. 그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앞 쪽에는 고문당하고 병든 남자 이슬람들이 앉거나 누워서 신음을 하고 있었다. 여인네들을 밀치면서 '이렇게 몸에 손을 대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지만 빨리 그들 사이를 빠져 나가야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인네들을 뿌리치고 병든 남자들 사이로 오니까 퀴퀴한 병자의 냄새가 가득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빠져 나오니 또 다른 무리들이 앉아 있고, 옆으로 빠지려니 그 쪽 길에도 농성하는 똑같은 무리들이 있었다. 몇몇 그룹을 더 헤치고 나와 한숨을 쉬는데, 후배와 미국인 친구가 조금 있다 나왔다. 후배의 잠바가 사라져 물어 보니 너무 불쌍하여 돈과 함께 그네들에게 주었다고 했다. 미국인 친구는 연신 미국 정부와 부시(Bush) 욕을 해대었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어쩜 그렇게 매몰차게 가 버릴 수가 있냐고 혼잣말 비슷하게 힐난을 했다. 그 둘의 그런 소리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잠에서 깨었다.

 

      갑자기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행태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니 말할 필요도 없고, 토요일 당일만으로 치면, 어느 신문의 북섹션에서 본 근래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어느 베트콩 여인의 일기가 '전쟁과 그 속의 여인네들'과 연결되어 수십년 동안 그 최전방에 서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인네들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그 때 그 일본인들-한국 현대사에 그들은 무엇이었나"라는 책을 읽었는데, 미국인 친구에게 몇몇 거기에 나온 일본인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가끔은 읽은 책들을 꿈으로 한 번, 약간 다른 버전으로라도 되새김질해도 재미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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