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믿습니까?

입력 2006-08-13 16:12 수정 2006-08-14 08:58
배우자를 믿습니까?

 

      영어에 '컨피댄트(Confidant)'라는 단어가 있다. 발음이나 철자가 '확신에 찬', '자신감이 있는'을 뜻하는 'confident'와 비슷한데, 'confidant'는 강세가 뒷 부분에 있고, 'confident'는 앞 부분에 있다. 'confidant'는 '속내를 다 보일 수 있는 친구', 즉 어떤 얘기든지 주고 받을 수 있는, 비밀스런 사생활 얘기까지도 털어 놓고 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뜻한다. 미국에서 이 '컨피댄트'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 결과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컨피댄트'에 딱 들어맞는 우리 말 단어가 없을까 고민을 하며, 몇몇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끝내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한자말로 '막역지우(莫逆之友)' 정도가 가장 가까운 것으로 합의를 했는데, 이것도 어떤 개인적인 비밀을 함께 한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컨피댄트의 역할을 하는 이웃이 있다'는 설문에 대해서 1985년에는 19%가 '그렇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는데, 2004년이 되자 단지 8%만이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약간 질문을 다르게 해서, '배우자가 나의 유일한 컨피댄트이다'라는 항목에 대해서는 1985년에 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 2004년에는 거의 배로 그 비율이 늘어나 9.2%의 응답자가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대체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지난 20년간 미국인들은 이웃과의 담은 높이고, 배우자와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키는데 주력한 것일까?

 

      처음 별 생각없이 조사 결과를 힐끗 보았을 때, 이웃과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점점 바빠지는 세상에서 예전과 같은 숟가락 몇 개가 있는지 까지 훤히 서로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웃사촌의 그런 관계를 지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배우자와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된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까? 미국에서 이혼율이 떨어지고 있고, 독신주의자의 비율이 역시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는데 그것과 혹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이웃과의 관계가 약화되는 것과 그리 영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Bowling Alone(혼자서 볼링하기)"란 책의 저자로 유명한 로버트 디 퍼트냄(Robert D. Putnam)이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 때 동네 사교의 중심지이었다가 이제는 사교의 역할은 사라지고 개인적인 운동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볼링을 상징적으로 대두시키며, 전통적인 지역사회의 붕괴를 안타까워 한 퍼트냄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지역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산층들이 갈수록 교외로 교외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통근시간이 길어지고, 통근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들어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통근 시간이 10분 늘어날 때마다,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가능성은 10% 줄어든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통근시간 이외에도 미국인들은 예전보다 훨씬 심한 경제적 압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어서, 예전처럼 이웃들과 어울릴만한 정신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평균적인 미국 가정의 경우 2004년 화폐 기준으로 1989년에서 2004년 15년 동안에 소득은 30% 정도 올랐는데 비하여, 지출은 두 배 이상이 늘어났다. 특히 거의 불가항력적인 지출항목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융자가 4만6천$에서 9만6천$ 수준으로 두 배 이상, 교육비 관련 부채도 배 이상, 의료보험을 포함한 의료비 관련 지출도 역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고소득층과 기타 계층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으니, 예전의 풀뿌리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정규직 이외에 이웃들과 어울려야 할 시간을 다른 파트타임을 뛰느라 보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에서 배우자가 유일한 컨피댄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난 것도, 부부간의 정이 새롭게 좋아진 결과가 아니라, 사교생활의 폭이 좁아진 데 기인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보고 있다.

 

      근로시간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의 경우 아래의 표들에서 보이듯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최장의 근로시간을 보이기는 하지만,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토요휴무제가 널리 퍼지면서 더욱 급격하게 줄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 한국에서 이런 짧아지고 있는 근로시간이 미국과는 반대로 더욱 적극적인 이웃과의 공동체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딱히 정확하게 그런 모습을 적시하고 있는 조사 결과는 보지를 못했는데, 가족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05년에 제일기획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386'이라고 규정한 36세 이상의 세대보다는 '2635'라고 표시한 26세에서 35세 사이의 세대가 가족에 대해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데 가족을 위해 본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비율은 더 낮게 나타난다. 물론 나이에 따른 차이가 더 크다고는 보지만, 향후 아니 지금 바로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결정하는 주력세대로서 숫자 이상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앞에서 얘기한 미국에서 배우자간의 의존도는 높아지는데 이웃과의 지역공동체가 사라지고, 한국에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는데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을 사랑이나 관심이 양(量)으로 따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 대상이 어떤 이유에서건 축소되고, 절대량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특히 미국의 경우 가족이나 이웃을 떠나서 사랑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줄었다. 한국의 경우 조금은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 동안 '국가', '사회' 등의 더 큰 굴레에 치여 지나치게 무시되어 왔던 가족, 그리고 가족 혹은 가문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강요받아 왔던 '개인'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개인의 희생을 피하는 만큼 배우자에 대해서 강요하는 비율도 줄고 있다고 믿고 싶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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