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냄새

입력 2006-07-31 08:30 수정 2006-07-31 08:30
물냄새

 

      '미제 방죽 물냄새 유난히도 진한 날'

 

      고은(高銀) 선생의 시집 "만인보(萬人譜)" 1권에 실린 어느 시에 실린 구절이다. 그 구절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아 지금까지도 가끔씩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한다. 선생의 시,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인 만인보 시집에는 미제 방죽이 자주 등장한다. 23권까지 나온 만인보를 1권이 처음 나왔던 86년부터 딴에는 부지런하게 읽다 보니,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미제 방죽은,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놀았던 안성 냇가의 둑만큼이나 익숙하게 추억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군산 어귀에 자리를 잡고 있어, 밀물 때면 들이친 짠 물기가 남아 있을 그 '미제 방죽 물냄새'가 생각만 하면 바로 피부에 끈적끈적 만져지는 느낌이다.

 

      주말 한강 고수부지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방학 후 집에만 있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아이를 데리고 한남대교에서 한강대교까지 고수부지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다리인 잠수교까지도 채 접근하지 못하고 계속 물이 차 있는 길 앞에서 우리는 방향을 거꾸로 바꾸어 잠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과 바로 붙어서 난 길을 따라 달리는데 제법 비릿한 냄새가 났다. 비릿한 내음의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낚시꾼들도 수초들 속에, 진흙뻘 속에, 자전거 길 위에 한가로이 흩어져 있었다. 성수대교 아래에는 흙탕물이 잔뜩 밀려 들어서 자전거 바퀴에 찰랑거린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황하(黃河)의 물 색깔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의 은사이신 이성규 선생께서, 처음 황하 유역을 다녀 오셔서 강이 역사의 무게에, 인간들의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의 손길에 신음하고 있더라는 감상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황하에서 한강변에서 맡았던 비릿함이란 없을 것 같다. 생각건대 황하의 그 누런 물결에 재워져 있을 비릿함을 이미 인간들은 먼 훗날의 것까지도 당겨서 흡수해 버렸을 것 같다.

 

      미국의 강에도 그런 비릿함을 찾기란 힘들다. 허드슨(Hudson)강, 특히 맨하탄(Manhattan)을 둘러싸고 동서로 나뉘어 흐르는 허드슨강은 강 자체로 보다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부착된 장식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잘 닦인, 내 기억으로 한 번도 잠기지 않은 강변도로에, 강 위 곳곳에 떠 있는 요트들이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하지만, 거기에는 냄새가 없다.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ast Exit to Brooklyn)"의 주요한 무대가 되었던 브룩클린 부두에 간 적이 있었다. 이제는 부두로서의 의미가 거의 퇴색된 그 곳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창고들이 풍기는 녹슨 쇠냄새가 허드슨강과 연결하여 내 후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자취이다.

 

      뉴욕에 허드슨강이 있다면 상해(上海)에는 황포(黃埔)강이 있다. 외탄(外灘)의 즐비한 유럽식 건물들과 근래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포동(浦東)의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이 분에 넘치는 화려한 머플러처럼 황포강을 휘둘러 에워싸듯 하지만, 황포강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피냄새가 난다. 중국의 대도시치고 피의 소용돌이가 한 번 몰아치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장개석(蔣介石)과 비밀 범죄결사조직인 청방(靑幇)의 두목인 두월생(杜月笙)과의 결탁에 의해 1927년 4월 상해에서 자행되었던 수천 노동자와 공산주의자를 학살한 사건은 중국현대사에서 상해의 의미를 지금도 그 진한 피냄새와 함께 새겨 놓고 있다. 그 때 스러져 갔던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에서 남경대로를 따라 인민광장으로 내려 오면, 상해 최대의 위락지이자 쇼핑센터였던 'New World-신세계(新世界)'를 만나게 된다. 그 곳에서도 지금의 놀이시설이 완비된 쇼핑몰의 시초라는 기억보다는, 중일전쟁 중 중국전투기의 오폭(誤爆)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비극이 화약냄새와 피냄새가 범벅이 되어 먼저 떠오른다. 역시 사람들에게는 비극이 희극보다 더 강하게 와 닿고 각인되어 지는 것 같다.

 

      군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놀고 있었던 1987년 5월 초의 어느 토요일, 먼저 제대한 친구가 있던 전주에 군대 시절의 고참 한 명과 함께 놀러 갔다.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나오기로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전화를 하니, 친구 어머니께서 당황을 하시며 무조건 집으로 빨리 오라 하신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집에 도착을 하니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어머님이 반주까지 곁들인 밥상을 내오시면서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전주 친구가 바로 그 날 오후에 시위를 하다가 잡혀 갔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사방으로 전화를 하시는데, 주인 없는 친구의 좁은 방에 앉아서, 경찰서에서 얻어 터지고 있을 방 주인을 생각하며 털어 넣는 반주의 어색함이란.....

 

      밤 늦게 그 친구는 공무원 친척의 부축을 받아 가며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들어 왔다. 중간중간 신음소리 섞어 가며 하는 말인즉슨, 터미널에서 우리를 볼 약속 시간이 남아서 잠깐 시위하는데 끼었다가, 깜빡 약속을 잊고 너무 몰두를 했다나.... 다음 날 구타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며 엉거주춤한 자세의 친구가 집에서 쉬라는 우리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몸을 이끌고 전주천변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같이 갔던 고참이 전주천에는 오무가리라는 물고기로 만든 탕이 유명하다면서 호기있게 오무가리탕을 시켰다. 그런데 오무가리탕을 보니 그냥 물고기 모래무지로 만든 찌개였다. 그 찌개를 끓인 그릇을 오무가리라 부른다고 한다. 고참은 얼굴이 시뻘개지고, 우리는 버릇없이 고참을 안주 삼아 식사를 하고, 천변으로 나가서 오무가리의 농담을 이어 가다가, 대통령 직선제 얘기를 하며 한숨도 쉬고 잠깐씩 대화가 끊어질 때마다 물수제비 뜨기를 했다. 나중에는 연신 한숨 섞인 물수제비만 떴다. 그 뒤로 전주에 몇 번 더 들르고, 그 때의 천변에도 두 번을 가 보았다. 그 곳에는 시대나 개인이나 갈 길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한숨 속에 방황하고 있던, 내 학생으로서의 20대의 마지막 자락이 묻어져 있다. 그래서 그 전주천에서는 오무가리탕 보글 끓는 냄새가 최루탄 냄새와 뒤섞여 몽롱하게 난다.

 

      꼭 강이 아니더라도 어느 곳이나 나름대로의 색깔과 냄새가 있다. 누군가는 전주천에서 당연히 다른 냄새를 맡을 것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설정한 브랜드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타박하지 말라. 진정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놀 거리를 던져 준다. 그리고 그런 마당에서 함께 놀아 준다. 그런 큰 브랜드의 냄새가 꼭 진할 필요는 없다. 짙거나 은은하거나 그런 냄새 하나 남기면 된다.

 

※ 맨 첫 부분에서 얘기한 구절이 실린 시 전문이다.

 

<삼거리 주막>

 

옥정골 지곡리 두 갈래 난 삼거리에서

잿정지로 난 길 서운하게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으례 그러려니 주막집 있네

그 주막 하도나 정갈해서

술 청하는 데 아니라 제사 지내는 데 아니던가

파리 한 마리 앉을 겨를 내주지 않네

쉰 살 가깝건만

키 자그마한 앳된 주모 옥선이

막걸리 한 사발 따라주면

안주라야 묵은 김치 한 가락이네

여름 한때 햇마늘종 고추장도 나오기는 한다네

훔칠 것 없어도

손 놀리면 큰일 나는지

술상머리 훔치고 또 훔치고

너무 그러면

복이 오다가 도로 가네

그런 소리 듣는 둥 마는 둥

여러 사람 드나드시는데

더러워서야 쓰것나요

그까짓 복이야 가시든지 마시든지

이런 주막이건만

하루해 뉘엿뉘엿해도

술꾼 뜸한 한동안은

문득 삼거리 나와

주막집 건너 외진 무덤 하나 보고

아 작은동사람

나도 어서 죽어야 쓰는데

술시중 들다가 늑장 부리고 있네

무덤하고 말하다가

하루가 저무는 날

미제 방죽 물냄새 유난히도 진한 날

 

근데 난 원래 다음의 '사행이 아저씨'란 시의 마지막 행이 '미제 방죽 물냄새 유난히도 진한 날'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미제 방죽 물냄새 유난히 짙던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바꾸어도 별 상관은 없을 듯 하다. 뜻이 더 잘 통할 수도....

 

<사행이 아저씨>

 

미제 방죽 물 위에

오직 한 사람

키다리 사행이 아저씨

주낙배 주낙 걷는다

사행이 아들 칠성이 물가에 뛰어 왔다

너무 멀어서 불러도 소용없다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죽었어 눈 뜨고 죽었어

 

사람과 사람 사이 영영 끊어져 잔물결 인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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