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반대말과 요기 베라(Yogi Berra)

입력 2006-07-16 20:36 수정 2006-07-16 20:36
장마의 반대말과 요기 베라(Yogi Berra)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다가,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둘째 녀석에게 물었다. "이렇게 비가 줄기차게 계속 오는 것을 무엇이라 하지?" 자신의 수준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장마!" "그럼 장마의 반대말은 뭐지?" 이것도 물어 보면서, 초등학교 고학년 그룹에 속한 아이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약간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갸우뚱하면서 자신없게 대답한다. "소나기?....""아니, 이 녀석아. 어떻게 장마의 반대말이 소나기야? 가뭄이지"하면서, 장마를 아는데 가뭄을 왜 모르는지 의아해 하는데, 옆에서 지켜 보던 애 엄마가 끼어 들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소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아빠가 문제를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잘못 냈어." 오랫동안 계속 내리는 장마비에 대비되는 말로는 잠깐 몰아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는 소나기가 훨씬 어울릴 수도 있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별하여, 그리고 적확하게 쓰자는 얘기를 한 때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살색'이라는 단어가 크레파스에서 사라지고, '흰색'의 반대는 더 이상 '검은 색'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의 '살색'이 모든 사람에게 살색으로 통해야 하고, 검은 색과 흰색은 대척점에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밀어 부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들에 그렇게 자신들이 정해 놓은 정답이 있고, 어떤 질문이나 과업이라도 그것을 풀어 줄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이 항상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들이 정해 놓은 시스템의 틀에서 벗어난 해결 방법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언급하는 것이야 거창하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연한 노릇이다. 원하기는 그들이 그들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최소한 그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고하고 해결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조금만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1946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 양키즈(New York Yankees)가 1949년부터의 5연패를 포함하여 월드시리즈를 여덟번이나 장악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때에 주전포수로 활약했던 요기 베라(Yogi Berra)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플레이 자체는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팀플레이어 형의 포수였고, 필요할 때면 꼭 한 방씩 때려 주는 장타력도 있고, 그러면서도 거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지 않는 끈질기며 섬세한 면도 있던 그 시대의 양키즈에 맞는 전형적인 짭짤하기 그지없는 선수였다. 그런데 이 요기 베라는 독특한 화법(話法)으로 유명하다. 문법이나 단어들의 쓰임새로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래서 차라리 의미를 확실하고 강하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그런 방식의 화법을 일컫는 요기즘(Yogi-ism)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요기즘은 지나치게 수리적 합리주의를 추구했던 기성세대에 맞서 감성을 전면으로 끌고 나온 60년대 일군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존의 처세나 가치관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쿨(Cool)한 철학적 화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심심치 않게, 광고 회사의 발표 자리에서, 정치인들의 연설에서 요기즘을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도 내가 즐겨 인용하는 요기즘을 세 개 정도 갖고 있다. 요기즘의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개 소개하며, 광고와 결부시킨 해석을 덧붙인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보통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번역을 한다. 요기 베라가 1973년 뉴욕 메츠(New York Mets)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시즌 중반에 '요기 베라의 시즌은 끝났다'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반박하며, 선수들을 모아 놓고 한 얘기라고 한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두고 보라" 혹은 "열심히 하자"는 식의 의미이다. 양키즈 본바닥인 브롱크스 출신의 나의 친구인 밥 슐만(Bob Schulman)은 요기 베라가 "It ain't over until the fat lady sings"라는 말도 했다는데, 이번에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NBA 모팀의 코치가 한 얘기였다. 하여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 한동안 아무런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뜨는 제품들이 많다. 희망의 끈 을 놓지 말자.

 

      "I didn't say everything I said."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신문기자와의 인터뷰 기사가 물의를 일으키자 자신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거의 같은 의미의 말이다. 단지 요기식으로 표현이 되어서 그렇지. 듣는 사람의 각도에서 보면, 내가 의도한대로 사람들이 나의 말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광고에서 의도했던 메시지를 사람들이 아주 다르게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We have a good time together, even when we're not together."

      서로 일편단심으로 해로하고 있는 부인인 카르멘 베라(Carmen Berra)와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한 이야기이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요기 베라의 애틋한 사랑이 오롯이 담겨져 느껴진다. 아마 이 말은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소지가 많다. 결혼생활을 결혼생활로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지가 의문스러운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같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서로 같이 있으면 즐겁게 놀지만, 제각기도 서로의 존재를 개념치 않고 잘 논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광고 메시지나 작품이라도 누구에 의하여, 어느 채널에서, 어떤 상황에 전달되는가에 따라서 소비자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Always go to other's funerals, otherwise they won't go to yours."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똑같이 해라'라는 뜻인데, 그 예가 장례식이 되면서 말이 묘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친구들 광고를 좀 보라는 의도로 이 말을 가끔 사용한다.

 

      "Slump? I ain't in no slump...I just ain't hitting."

      '난 슬럼프에 빠진 게 아니에요. 타격이 안되고 있을 뿐이지'라는 강변으로도 들리는데, 위의 얘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슬럼프에 빠질 수는 있다. 그 이유들을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근본까지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작은 것들을 변화시켜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근본을 지키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브랜드를, 광고를 하는 기본적인 접근방법이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you might not get there."

      요기즘 중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광고의 목적,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모르면 그 곳에 도달할 수도 없을 뿐더러, 도달했는지 여부조차도 알 수 없다.

 

      요기즘을 놓고,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그런 비난을 늘어 놓는 사람들이 요기 베라가 그런 말을 하게 된 상황과 그 의미를 이해를 하면서 그런 비난을 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요기즘에 대해서 그런 비난을 늘어놓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기즘을 물고 늘어진 데 비해서, 요기 베라의 경우 일부러 그런 말들을 교묘하게 만들어 내려 했던 것도 아니고, 위에서 간단하게 설명했듯이 그 말에 진실성이 담겨져 있었다. 결국 요기즘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정치인들의 수사법의 하나로 몇 십년을 두고 인기를 끌고 있다. 틀 속에 자신을 얽어매지 말고, 담길 의미를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 생명력 있는 틀을 만드는 길이다.

 

※ 요기 베라보다 한 세대 이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St. Louis Cardinals)에 정말 혜성처럼 나타나 만화와 같은 활약을 보여 주었던 디지 딘(Dizzy Dean)이란 투수가 있었다. 그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해설자로 변신하였는데,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던지라,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먼저 영문학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요기 베라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덜 했을 수도 있다.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디지 딘은 선수시절부터 큰소리 잘치고, 좋게 얘기해서 스타성이 아주 강한 스타일이었는데 비해서, 요기 베라는 그야말로 성실한 생활인 스타일의 스타였다. 디지 딘이 재미를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 내는 말이 많았던데 비해서, 요기 베라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알아 달라고 사람들에게 응대하면서 우러나온 말들이었다. 당연히 그 울림의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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