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의 브라보콘

입력 2006-07-11 16:27 수정 2006-07-11 16:36
12시의 브라보콘

 

      한국 광고사에 길이 남을 CM송 다섯 개를 고르라면, 브라보콘이 빠질 수 없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둘이서 만납시다, 브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해태 브라보콘."

 

이 노래를 만든 강근식 선생-70년대 '그건 너'의 가수 이장희의 반쪽으로, 독립적인 기타 세션맨으로 유명했던 그 분-의 인터뷰를 며칠 전에 재방영된 CM송에 관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다. 왜 하필 '12시'냐는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사람들이 브라보콘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간이 오후 한 시라는 거에요. 그런데 한 시라고 하면 재미가 없고, 12시라는 것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가는 것 같아서 12시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전설처럼 들리지만, CM송 요청을 받은 그 자리에서 기타 하나만 가지고 만들어 불렀다고 한다.

 

      광고 관련 강의를 할 때 가끔 브라보콘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왜 12시인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얘기를 하곤 했다. 나의 해석은 강근식 선생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지만 약간 달랐다. 브라보콘이 소비되는 주요 시간대가 꼭 한 시는 아니더라도 점심시간이라는 것은 굳이 그에 대한 조사자료가 없더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CM송이 나올 당시 브라보콘의 가격이 5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들이나 중고생들이 함부로(?) 사서 먹을 만한 가격대가 아니었다. 당연히 일정수준 이상의 구매력을 지닌 어른들이 1차 목표고객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점심 식사 후의 디저트와 같은 용도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한 시가 피크타임인 것도 당연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하면, 한 시에 브라보콘과 같은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기 위해서는 12시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고, 디저트까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게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게 근엄했던 시대에 아이스크림을 어른들과 함께 먹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살짝쿵 데이트를 즐기며 애인과 나누는 것이 제 맛이었을 것이다.

 

      브라보콘 CM송의 묘미는 소위 '시간 마케팅'에 있다. 나의 제품을 소비해야 할 시간과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 준 것이다. 일본의 '오후의 홍차' 역시 같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오후의 홍차'는 '오후 3시의 홍차'로 까지 더 잘게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특정한 시간대의 효용과 소비를 이끄는 행위는, 더 큰 시각으로 보면 '12시'라는 시간대를 자신의 독점적인 브랜드 영역으로 이끌 수도 있다. 브라보콘의 경우 기존의 아이스크림이라는 제품을 넘어서, 아주 일차원적으로 가정하면 '브라보'에 '콘'과 같은 다른 제품명을 붙여서 12시, 점심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음료, 음식까지로도 넓힐 수 있는, 브랜드 확장의 가능성이 있다. 더 크게 나아가면 점심시간을 전후하여 펼쳐질 수 있고, 소비되는 다른 품목까지 커버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한 때 모음료를 '디저트 음료'라고 하여 광고를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디저트로 생면부지의 그 음료를 마셔야 하는 이성적, 감성적인 이유를 소비자들에게 파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브라보콘의 예처럼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나의 브랜드와 확실히 결부시켜 놓고 있다면, 점심식사와 연결된 음료로 훨씬 쉽게 각인을 시킬 수 있어 유리한 위치에서 제품의 기능을 역시 연계하여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보다 더 와일드하게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한 간단한 운동기구까지도 그 영역 안에서 소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틀에 박힌 업종 분류법에 얽매여 있고, 브랜드를 좁게 특정 제품과만 결부시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점이나 음식점을 창업한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품점, 화장품, 의류 등으로, 음식점이면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의 기준으로 나누어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르게 구분할 수 있는 방식이 많다. 일본의 '100엔샵'같은 경우는 취급하는 제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나누어, 새로운 형태의 유통 브랜드로 섰다. 'GS 왓슨스'나 '올리브 영'과 같은 경우는 제품이 아닌 젊은 여성 고객에 초점을 맞추어 신선한 바람을 유통업계에 몰고 왔다. 그렇게 시장을 다르게 재단하는 기준의 하나로 '시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기업의 대부분의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감성과 이성을 포괄할 수 있는 본연의 속성에 기초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물리적 특성을 나타낸 단어로 브랜드를 삼는 것이 많았다. 애초부터 장기적인 확장성이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사례가 대부분이다. 브랜드가 잘되었다는 평가도 우리의 경우 특정 브랜드 네임을 달고 있는 제품의 매출과 성장세 등을 보는데 반해서, 특히 미국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얼마나 넓은 분야로 성공적으로 확장을 하였는가에 기준을 두고 본다. 이런 면에서 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스포츠전문 채널인 ESPN을 자주 얘기한다. ESPN의 브랜드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코카콜라가 슬로건처럼 사용했던 "For the Fans(스포츠 팬들을 위하여)"이다. 상식적으로는 방송 채널과 음식점 체인은 화성과 금성 만큼이나 다르게 보이지만, '스포츠 팬들이 스포츠 중계를 가장 재미있게, 즐겁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음식점'으로 ESPN은 자연스럽게 요식업계로까지 브랜드의 영역을 넓혔다.

 

      지난 6월 초에 예전에 브라보콘 포장 디자인을 담당했고, 지금은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시는 분을 만났었다. 여러 다양한 제품들의 포장을 보여 주면서, 그 분이 예전 브라보콘의 포장과 2006년 4월에 바뀐 새로운 포장을 비교하며, 새로운 포장을 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선언하듯 외쳤다. "이건 브라보콘이 아니에요. 브라보콘의 의미와 전혀 동떨어져 있어요."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자. (왼쪽이 예전, 오른쪽이 바뀐 디자인)

그 분의 결연했던 선언에 예전 자신의 애정이 담긴 것이 바뀌었다는 서운함을 넘어서 공감이 가는 바가 있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둘이서 만납시다, 브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해태 브라보콘."

 

불후의 명작인 브라보콘 CM송을 다시 흥얼거려 보면, 새로운 포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무엇인지 극명해진다. 거기에는 브라보콘이라는 브랜드는 사라지고, 고급 아이스크림이 되고자 하는 범용적 열망만이 담겨져 있다.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의 12시, 점심시간을 자신들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던 브랜드의 뒤늦은 안간힘이 안타깝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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