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예측

입력 2006-07-10 00:40 수정 2006-07-10 00:40
미래의 예측과 트렌드 분석에 관하여

 

      광고 일 중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어떤 방법으로 얘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특히 주요한 업으로 하는 소위 플래너들의 경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소비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 그런 변화를 이끌고 올 요인은 무엇일까를 연구하고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요한 트렌드나 그것이 세대별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리포트를 매년 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트렌드에 관한 강의나 원고 요청을 가끔 받게 되는데, 거의 항상 미래에 어떤 트렌드가 올 것인지, 무엇이 유행할 것인지 예측해 달라는 요구와 질문을 받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학 시절의 스승이신 민두기 선생님의 저서 중의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이용하여 모면하려 한다.

 

      흔히들 역사를 배워 뭣하느냐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역사학자가 뭐 하나 앞일을 예견해 낸 일이 있느냐고 따진다. 그렇다. 역사학자는 점장이처럼 예견해 내지는 못한다.....역사학의 실용성은 눈앞의 어떤 효용에 공헌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이러한 경고능력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민두기, ‘歷史學의 實用性’,

“누가 勝者인가” 중에서, 지식산업사, 1985 

 

      트렌드에 관하여 우리가 하는 일은 네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트렌드가 나타나 있는지 '포착'하고, '정리'하며, 어떤 트렌드가 올 것인지 '예측'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직접'창출'하려 노력한다.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포착과 정리는 현재완료형, 예측과 창출은 미래형의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과거와 현재가 없이 미래만이 존재할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미래가 존재할 수 있듯이, 포착되고 정리된 트렌드가 있기에 다가 올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고, 창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광고회사의 플래너들을 포함한 트렌드 연구자들도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려 연구하기 보다는 끊임 없이 시대를, 소비자의 움직임을 읽지 않으면 결코 설득력있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고 전달할 수 없다는 경고를 자신에게 계속 각인시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노력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노력의 초점을 잘 잡아낸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미래는 현재에도 있다. 단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 예측이나 트렌드 분석의 목표이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거나 내일을 발생하게 만드는 문화를 읽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예측을 직관이 아닌 과학으로 만드는 도구, 기술,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를 억지로 도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마틴 레이먼드 지음, 박정숙 옮김, 김민주 감수, "미래의 소비자들" 머리말 중에서’, 에코비즈, 2006

 

      광고제작 아이디어를 잡는 데도, 광고계의 용어로는 크리에이티브의 팁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광고에서의 크리에이티브(광고물의 소재나 꺼리, 전달 방식 등)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펼쳐져 있는 것 중에서 찾아내는 것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미래, 미래의 트렌드도 마찬가지로 이미 현재 속에 숨어 있거나, 제각기 존재하고 있는 맹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색다른 방식으로 묶어 봄으로써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중반에 당시의 선배가 맡고 있던 모대학의 교양과목, "광고론" 시간에 특강 형식을 빌린 대강을 한 적이 있다. 수업 시간표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대학의 한의학과 예과 2학년 학생들이 우루루 그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의학과 수강생들 중에 5~6년 회사 생활을 접고 한의학과에 입학을 한 나의 대학 동기가 있었다. 강의를 끝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부럽다는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가 물어 보니, 자신은 그래도 부인이 약사이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당시로서는 더욱 부럽게 만드는 대답을 했다. 바로 다음 날 광고주를 방문했다가 근처에서 근무하는 다른 대학 동기 한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의학과에 진학한 전 날 만난 친구 얘기를 하니, "앗, 내가 한의학과로 가려 했는데 선수를 뺏겼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자신도 곧 직장을 때려 치고 한의학과로 진학을 하겠다며 제법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친구들이 갑자기 왜 그러는가' 혀를 차면서도, 건성으로라도 격려의 말을 해주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선수를 치면서 한의학과에 입학하겠다는 친구의 부인도 약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틀 간에 한의학과를 둘러 싸고 대학 동기들 간에 벌어진 대화를 몇 가지 방향으로 해석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더 크게 넓혀서 의미를 찾아 보았다.

 

      1. 직장인들, 특히 30대 초중반 직장인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아, 대입 시험까지도 다시 보는 현상이 대두하고 있다.

→ 제 2의 인생 개척. 사회적 이목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

 

      2. 그 직업들은 아마도 한의학과처럼 경제성과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지속성을 겸비한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것들이 주류를 차지할 것이다.

→ 불안정한 고용관계와 무너진 평생직장. 장기적인 안정성과 경제성 추구 경향

 

      3. 위와 같은 성향은 부인이 약사와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선택하고자 하는 직업에 대한 결정이 부인의 직업과도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양의학(洋醫學) 약사와 한의학의 보완적인 관계처럼.

→ 부부가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감. 전통적인 남녀 역할 구분의 흔들림.

 

      4. 동양사학과 출신이 한의학과로 몰리듯이, 아무래도 대학 시절의 전공과 연관된 쪽으로 선택하여 나아가려 할 것이다.

→ 기초 교양 우선으로 학부 과정이 자리 매겨질 것임. 학부완결형의 시대는 갔다.

 

      그 때 두 친구의 경우를 보면서, 나름대로 트렌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실현되었다고 정확하게 얘기하긴 힘들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특정 현상을 넓혀서 미래에까지 그 의미를, 발전 방향을 찾아보려는 시험으로서 자습의 효과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같은 경우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미래 트렌드의 예측은 어떻게 보면 어떤 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의 정확성보다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재단하고 있다는 나의 시각을 보여 주는데 어찌 보면 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주 스마트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노리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보다는 질문에 답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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