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들은 왜 이리 야구를 못할까?

입력 2006-03-19 05:17 수정 2006-03-19 05:17
미국 애들은 왜 이리 야구를 못할까?

 

      미국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로버트 슐만(Robert Schulman)은 1952년 뉴욕시 브롱크스(Bronx)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뉴저지(New Jersey)로 이사가기 전까지 줄곧 브롱크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뉴욕 양키즈(New York Yankees)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뉴욕 양키즈의 홈 구장이 브롱크스에 있고, 그래서 양키즈의 별칭 중 하나가 '브롱크스의 폭격기(Bronx Bombers)'이다. 당시 양키즈는 그가 태어나기 이전인 1949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부터 시작해 1953년까지 월드시리즈 5연패라는 앞으로도 깨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금자탑을 쌓은 것을 비롯하여, 1956, 58, 61, 62년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로버트 슐만은 자기 얘기로는 야구를 특별하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름 한 철은 양키즈 구장에서 거의 살았다고 한다. 구장 안으로 몰래 들어 갈 수 있는 소위 '개구멍'이란 것이 거기에도 있어서, 어머니에게 입장료 살 돈 1 달러를 받아 가지고 나와서, 그 돈으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고 거스름돈을 어머니께 남겨서 갖다 드리는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브롱크스에 사는 애들이라면 모두 그 개구멍을 알고 있었고, 구장 경비원들도 아이들이 그리로 들락거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보통 눈 감아 주었고, 특별하게 단속이 심한 날에 걸리면 경기 후에 아저씨들 청소하는 것을 좀 도와주면 용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여느 애들이 그렇듯이 로버트 슐만도 베이스볼 카드를 열심히 모았다고 한다. 특히 로저 매리스(Roger Maris)가 61개의 홈런으로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해묵은 시즌 홈런 기록을 깬 해인 1961년에 나온 양키즈 선수들의 베이스볼 카드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카드들을 간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봐, 내가 지금도 그 카드들을 가지고 있다면, 왜 이렇게 회사를 다니겠어? 그것만 팔면 수백만 달러를 받을텐데'라고 한다. 비누상자 같은 데에 보관을 하여, 침대 밑에 고이 모셔 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집안 정리를 하면서 싹 치워 버리셨단다. 모든 것이 어쩜 그리 우리 한국의 아이들이 예전 딱지 모아 보관하고, 어머니들이 청소하시다가 치워 버리는 모습과 똑같은지....

 

      개구멍으로 구장을 출입하고, 장래에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 없이 비누상자에 베이스볼 카드를 모으던 어린이들이 사라지면서 미국 야구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전국민이 즐기는, 문자 그대로 'National pastime'에서 비지니스로 자리를 잡으면서, 미국 야구 본연의 경쟁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드나들던 개구멍이 막혀 버리고, 입장료는 치솟기 시작했다. 관중석 등급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1903년 메이저 리그의 입장료는 내셔날 리그가 50센트, 후발주자였던 어메리칸 리그가 그 절반인 25센트였다고 한다. 50년 이상이 지난 로버트 슐만의 시절까지 넉넉하게 잡아도 서너 배 정도 오른 것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뉴욕 양키즈의 외야석 가장 싼 곳이 10달러 정도하니, 10배 이상이 오른 것이다. 베이스볼 카드 시장은 흡사 주식시장처럼 변해 버리면서, 어린이들은 더 이상 베이스볼 카드를 모으지 않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리틀 베이스볼 리그도 성적에 따라 코치들의 연봉을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면서, 리틀리그의 경기 수준은 올라갔는지 몰라도, 애들이 경기를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분명히 감소되었을 것이다.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이제는 언제 어느 때나 팀과 함께 하며, 팀과 그 고장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팀의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가 줄었으니, 당연히 관심과 충성도를 이끌어 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연유로 미국 베이스볼의 저변 자체가 약해지면서, 미국 야구는 약해지고, 그 약해진 부분을 메이저 리그의 글로벌화란 미명하에 중남미를 비롯해 일본과 한국까지 외국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여 보충해 오곤 했는데, 이번의 WBC(World Baseball Classic) 대회를 통하여 그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남태평양(Tales of the South Pacific)', '하와이(Hawaii)' 그리고 한국전을 배경으로 한 '도곡리의 다리(The Bridges of Toko-Ri)'와 같은 소설로 유명한 작가인 제임스 미치너(James A. Michner)는 이미 1976년에 'Sports in America'란 책에서 중남미 선수들이 없다면 메이저 리그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고, 중남미 올스타와 백인으로만 구성한 미국 올스타(a team of only white Americans)가 경기를 한다면 미국 올스타가 그야말로 박살이 날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 때 왜 굳이 백인으로만 제한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의 경우에 보면 흑인까지 포함하여 올스타를 구성해도 결과가 그다지 다르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을 주었다.

 

      미국 위주로 짠 WBC의 대회 운영 규칙 등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소위 종주국이라는 미명하에 맘대로 규칙을 제정하고 바꾸는 모습을 이번과 비슷한 형태의 세계 리틀 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유감없이 보여 준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대만이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며 연속 우승을 차지하자-, 규칙을 바꾸어 외국 팀들의 참가를 원천봉쇄해 버린 것이다. 1939년에 창설되어 1950년대부터 외국 팀들이 참가하여 멕시코나 일본팀이 몇 차례 우승도 차지하는 등 2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것을, 미국팀들이 대만에 세 경기 연속 노히트를 당하는 등 수모를 겪자, 아예 극단적으로 외국팀들을 배제한 것이다. 물론 1975년말에 다시 규칙을 바꾸어 외국 팀들의 참가를 다시 허용했지만, 이전의 리틀 리그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WBC도 향후에 어떤 어처구니없는 대책이란 것이 미국에서 나올 지 모르겠으나, '내가 꼭 우승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야구의 국가대항전'으로서 새로운 재미를 팬들에게 선보이고, 야구의 글로벌화를 촉진한다는 보다 차원 높고 근본적인 목적에 맞게 행동을 한다면, 야구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리더쉽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연결되고, 다시금 내셔날 패스타임으로서 야구가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터인데.....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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