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에는 사가(社歌)가 없다고요?

입력 2006-03-12 08:01 수정 2006-03-13 10:44
외국기업에는 사가(社歌)가 없다고요?

 

      모신문에 요즘 학교의 교가(校歌)나 사가를 구성원들의 음악적 기호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음악 코드에 맞추어서 새로이 만들거나 편곡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가사에 동네 큰 산과 긴 강은 항상 등장'하고, '음치 학생 울리는 높은 음역'에 걸쳐 있으며, '전교생이 씩씩해지는 행진곡 리듬'풍이라는 예전의 전형적인 교가에서 영어 문장까지 군데군데 실리며 발라드와 록, 힙합까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외부의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만드는 것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내리 같은 곳에서 나왔다. 그러니 6년 동안 같은 교가를 불렀다. 당시의 어느 학교나 그랬겠지만 매주 월요일의 전체 조회, 무슨 기념일, 운동 경기 응원할 때면 꼭 불러댔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가까운 친구의 성당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 겸 '방송제' 행사에 친구들과 함께 우루루 놀러 갔다. 본 행사에서는 카프카의 '변신'을 라디오 드라마 대본식으로 각색하여, 그 성당의 학생회 멤버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는데, 내 친구가 '형사 콜롬보'의 성대 묘사를 제법 잘 하여 박수 갈채를 받았던 것만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행사 막판에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행사가 끝난 직후 기분이 약간 고조되어 성당 앞 마당으로 나왔고, 행사를 잘 마친 형사 콜롬보에게 축하와 칭찬의 말을 건네는 것도 한 두 마디, 분위기가 사그러질 때 쯤 한 친구가 '야, 우리 교가나 부르자'라며 선창을 했고, 우리는 고조된 분위기가 반영이 되었는지 평소 학교에서 부를 때보다 더 빠른 템포로, 그리고 응원할 때처럼 모자를 손에 쥐고 팔을 아래 위로 흔들며 불러 제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위에 흩어져 있던 1학년 후배들까지 가세를 했고, 교가를 끝낸 후 우리는 괜히 감격에 겨워 서로 악수와 포옹을 주고 받았다. '수고했다'며 후배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데, 감격 어린 표정의 후배가 '형, 교가를 이렇게 신나게 불러 본 적은 처음이에요'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를 치다시피 했다. 에필로그처럼 형사라는 사람이 나타나 '야, 야, 집에들 가'하면서 묵직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애들을 조용히 해산시키고 있었다. 성당의 고등학교 모임 자체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였다. 뭔가 가슴을 뚫어 주면서 다른 친구들과 이어 줄 수 있는 노래라고는 교가가 고작이던 그런 시대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교가는 설 공간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가가 '강제된 집단주의'와 '문화적 궁핍'을 의미해서 그랬을 것이다. 운동권 노래들이 교가의 자리를 차지했고, 입학식부터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대학생의 자유를 누리려 했으니, 교가를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 2학년 시절, 일주일간 소위 전방입소 훈련이라는 것을 받고 있었는데 중간을 넘겨 4일째인가 되던 날, 우리를 맡고 있던 중위인가를 달고 있던 장교가 아침에 막사로 들어와서 '여러분, 학교 떠나서 교가를 들으니까 기분이 남다르지요?'하고 말을 꺼냈다. 아침 기상 시간에 기상나팔 소리에 이어 노래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도 그 노래가 우리의 교가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동네에 흔해 빠진 군가(軍歌)려니 했고, 어떤 노래건 노래가 스피커로 나온다는 사실조차도 감지하고 있지 못했던 친구도 꽤 되었다. 이후 그나마 그런 형식으로라도 교가를 들어본 적도 없이 우리는 졸업을 했다.

 

      회사에 들어와 입문 교육 동안 연수소에서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사가와 함께 깨어나 사가를 부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부서 배치 후 사무실에서, 매일 아침 사내 방송이 끝나면서 사가가 나오면 모두들 양복 윗도리를 갖춰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만 얹지 않았지 애국가 연주 나올 때처럼 근엄하게 서 있었다. 유학을 갔다 오니, 좀 자유스런 광고회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대가 그래도 좀 바뀌어서인지 그런 근엄함은 사라지고, 사내방송의 사가는 그냥 방송이 끝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고, 사가를 부르는 일은 더더구나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내방송에서도 더 이상 사가를 틀어 주지 않기 시작했다. 3년전인가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어느 신입사원이 사가를 축가로 불러 주었다는 단발 가십성 기사를 그룹사보에서 보았으니, 그룹 입문교육 현장에서는 계속 사가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이번의 신문기사에서도 나왔지만 사가를 아예 없애는 기업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사가나 교가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은 일본이나 한국 정도라면서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교가는 있어도 졸업식 등 일부 행사에서만 연주할 뿐이며, '사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기사는 전한다. 교가가 많이 불리어지는 학기 초에 시의적절하게 내놓은 잘 쓴 기사인데, 바로 위의 밑줄 친 단정적인 문구가 '옥의 티'였다. 구미의 기업에도 사가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제일기획에서 발행하는 『브랜드 포럼』2002년 43호에 실린 졸고(拙稿) '브랜드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의 일부인 아래 글을 외국 기업에도 사가가 있다는 실례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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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브랜드를 표현한다-사가까지도

 

      2002년 초 유명 기업들의 사가를 모아 놓은 영국의 한 웹사이트가 화제에 올랐다. 사람들의 흥미를 끈 이유는 첨단을 달린다는 기업들이 사가에서 보여 준 단순 저돌적인 가사 및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노래풍 때문이었다. 소제목으로 쓴 것처럼 '모든 것이 브랜드를 표현한다'는 의미로 'Everything speaks'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정말 그 말대로 얼마나 불려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사가를 보면 각 기업들의 특성들이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쾌하게 본 것은 최대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McKinsey)와 이제는 한물간 회사로 치부되지만 한때 가정용 전자기기를 주름잡았던 웨스팅하우스(Westing House)였다. 먼저 맥킨지 사가의 일부분을 보자.

 

We've got ability, we've got power, MCKC works 24 hours!

(능력있고 힘있는 우리, 맥킨지는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지)

The work is worship and as fun as me to see (일은 숭고하고, 보는 것도 즐겁기 그지 없네)

That's what they call MCKC!(그게 바로 맥킨지!)

Challenges, engages, nothing really fazes us(도전, 헌신, 거칠 게 없어)

Come hell or high water, You can always count on us.

(지옥에 가더라도, 노도의 바다에서도 언제나 믿고 찾을 수 있는 우리, 맥킨지)

 

      개인적으로 알던 맥킨지에서 일했던 사람과 얘기하면서 사가 얘기를 한 경우는 전혀 없는 것 같고, 추측컨대 사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지만, 어쨌든 자존심과 일중독증의 맥킨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웨스팅 하우스는 칼립소 리듬으로 50년대의 만담 민요풍으로 색다른 재미를 준다. 딱히 사가는 아니고 딜러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만든 노래라고 하는데, 본래 목적의 달성 여부는 모르겠으나, 딜러들이 즐거워는 했을 것 같다.

 

Washington, he come back from ice-cold Valley Forge,

All the people they say, You've done a fine job, George.

He got cheers and applause from the mob. They gave him the presidential job.

But was George happy? No, he sob.

Why? Because, everybody! ?

He got no Westinghouse franchise. He got no Westinghouse franchise.

He won the war, but him got no store.

And that's why the tears stay in his eyes.

When Dwight D. Eisenhower Came back from across the sea,

He was joyous, he was greeted by the G.O.P.

They say, "Ike, you were such a great hit,

We think in the White House you should sit."

But was Ike happy? Not a bit.

[워싱턴이 매섭게 추운 포지계곡에서 돌아 왔을 때,

사람들이 환영하면서 말했네. 죠지, 정말 대단한 공훈을 세웠어.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대통령 직을 맡겼지.

죠지가 좋아했냐고? 아니, 그는 울고 있었어.

(후렴)왜? 자, 다 함께.

웨스팅 하우스 대리점을 받지 못했거든. 웨스팅 하우스 대리점을 받지 못했어.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대리점을 받지 못했어.

그러니 울고 있을 수 밖에.

 

아이젠하워가 바다를 건너 개선했지.

그도 기쁨에 겨웠고, 공화당에서 따뜻하게 맞이하며 말했지.

'아이크,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이제 백악관으로 입성하자고.

아이크가 좋아했을까? 아니, 전혀. (후렴 반복)]

 

      노래 스타일에서 보이는 안이함과 보수적인 성격이 웨스팅 하우스의 브랜드를 규정지었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정상에서 밀린 큰 원인이라 할 것이다.

 

      흔히 정보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들을 구하기 위하여 2차 자료도 모으고 직접 조사도 시행하곤 한다. 그런데 뒤집어서 너무 규격화된 정보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 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거기서 브랜드와 연결하여 의미를 캐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알지 못하는 사가라도 거기서도 충분히 브랜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반대로 어떤 일을 하든지 브랜드를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다시 생각하고 재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광고만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부용으로 만든 사가까지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자신의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 의미를 이해하고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재정의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중요성을 이번 사가 사이트의 인기가 보여 주었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미를 찾는다면, 커뮤니케이션에서 더 이상 내부와 외부의 완벽한 구분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터넷 시대의 기업들은 거의 발가벗겨진 상태로 고객 앞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원하는 내용만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는 거했다. 고객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세로 접근을 해야 한다. 브랜드가 뜻하는 바를 바로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고, 자신들의 역할에 맞추어 그대로 실행을 해야 한다. 사내에서의 일이라고 그냥 괴리를 놔두어서는 언젠가는, 요즘같은 경우 예전과는 비교가 안되게 빠른 시간에 그것이 고객들에게 알려지고, 결국 브랜드에 큰 균열을 가져오게 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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