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치세요?

입력 2006-03-05 20:21 수정 2006-03-05 20:21


골프 치세요?

 

      가끔 사람들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언제 필드나 한 번 나가시죠"하고, '언제 소주나 한 잔 하시죠', 혹은 '식사 한 번 같이 합시다'하고 얘기하듯이, 꼭 약속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보자는 기약없는 느슨한 약속 겸 권유를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꺼낸 분들에게 유감스럽게도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대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하면 모두가 깜짝 놀란다. 특히 '미국에서도 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대부분에게서 나온다.

 

      당연히 미국에서도 골프를 치지 않았다. 주재 시절 삼성그룹 대부분 관계사들의 미주지사 본부가 입주하여 있는 빌딩에서 근무했는데, 한국에서 온 주재원 중에 유일하게 골프를 치지 않는 주재원이었다. 특별하게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골프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 비슷하게 하곤했다. 보통 주재원 발령이 나면 한국에서 준비 기간을 3~4개월 갖고, 주재지로 와서 인수인계 기간을 1~2개월 정도 갖게 된다. 비록 요즘은 이 기간이 양쪽 모두 단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준비 기간 동안에 한국의 집을 포함한 개인 신변정리도 하고, 주재원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데, 공식적인 교육 과목에 끼지는 않아도 필히 배워야 할 것으로 꼽혔던 것이 바로 골프였다. 한국에서의 준비 기간 동안 골프연습장 등록을 해서 코치까지 두고 열심히 배우는 것이다. 실무에서 떨어져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도 있고, 회사에서도 주재지에서 꼭 필요하다고 하여 권장을 한다. 여건이 허락하면 주재지로 출국하기 전에 실제 필드에 한 번 나가 보는, 소위 '머리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 현지 사정에 따라 현지의 연습장에서 일주일 정도 손을 풀어 보고, 본격적으로 골프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80년대 중반까지는 주재원들이 본국에서의 교육 기간 동안에 배워야 하는 필수 항목에 '자동차 운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그 때까지는 자동차 운전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요즘은 자동차 운전 배우는 것이 주재원 사전교육의 비공식적 필수 항목이 아니듯이, 골프도 그 전에 이미 배우고 익힌 사람이 많아서, 주재원 발령 받았다고 허겁지겁 골프 레슨 등록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그러니까 골프가 거의 80년대 초중반의 '자동차 운전' 정도의 대중화는 된 것 같다.

 

      나는 주재원은 생각도 않고, 한창 미국 여러 곳을 헤집고 다니다가, 잠깐잠깐 보고안건이 있으면 한국에 들르고 그 틈을 타서 옷만 갈아 챙기고 다시 출장에 나서는 생활이 이어지던 1999년 상반기에 주재원 발령을 받았다. 하던 일 그대로 진행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주재원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주재원 비자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기간만 서울에 머물렀고, 비자가 나오자마자 가족들을 끌고 출국을 하여 실제로 골프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전임자가 없이 새로이 만든 자리였기 때문에 미국에 도착해서도 인수인계를 하면서 숨을 고를만한 여유가 전혀 없이 바로 출장으로 점철되는 주재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골프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1년에 MBA를 위하여 뉴욕에 왔을 때, 총각으로 가족 없이 혼자 와서 뉴저지(New Jersey) 쪽에 거처를 정한 친구들이 가장 많이 대는 이유 중의 하나가 골프를 배우고 즐기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맨하탄으로 집을 정하여 골프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함께 맨하탄에서 살면서도 열심히 골프를 배우던 한 선배의 권유도, 보통 그 선배가 다른 권유나 부탁을 할 때와 달리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물리친 것을 보면 골프에 끌리는 것이 예전부터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1997년 9개월 정도를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장기출장으로 미국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초반기 12월에서 4월까지를 함께 지냈던 선배가 골프광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제일기획에 다녔던 선배 한 분이 우리가 묶고 있던 호텔 근처에 사셨는데, 역시 골프를 광적인 수준으로 좋아하여, 평일이라도 시간만 되면 함께 간 선배를 데리고 가능하면 근처의 필드, 날씨가 도저히 허락하지 않으면 연습장을 나갔다. 그 두 양반이 영하 15도의 날씨에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괜찮다며 골프장을 향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그 날 돌아와서는 땅이 쩡쩡 얼어 도저히 제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는 골프장이었지만 필드에 나선 불굴의 한국인들을 다수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 아연실색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그런 경우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그런 얘기들은 사실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는 일상적인 전설이었다. 둘이만 나가기가 그랬는지, 미국에 살고 있는 선배가 아는 코치에게 한 달 쿠폰을 끊어 줄 터이니 등록하고 배우라 했지만, 그 때도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당시는 뉴욕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골프보다 훨씬 소중했다. 주재원 기간에도 정성이 있었다면 아마 골프를 어느 정도는 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역시 그 때도 주말에 가족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절실했다. 특히 실제로 그렇게 살갑게 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아들들의 인생 어느 시기까지는 함께 놀아주는 존재로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골프를 치면서 주말을 보내면서, 그런 시간을 만든다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했다.

 

      사실 한국인 주재원으로서, 특히 같은 한국인 주재원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반신불구와 같은 주재원을 이해해주고 빈틈을 매워 준 제일기획의 동료들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던 얘기이다. 한 편으로는 골프를 치지는 못했지만, 골프 용어나 이야기를 그래도 제법 알고 있어서 같이 플레이는 못하지만 대화에는 끼어 들 수가 있어서, 그나마 보충이 되었던 것 같다. 뉴욕 유학 시절 교포 친구 하나와 컴퓨터 골프게임을 한동안 열심히 했었다. 그 게임을 통하여 골프채 명칭과 각각이 어느 정도의 비거리를 가지며, '훅'이니 '슬라이스'하는 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게임의 무대가 세계 유명 골프장인데, 각 골프장의 물리적인 특성은 물론이고 역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이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어, 술자리 같은 곳에서 '왕년에 어느 골프장에서 쳐 봤는데' 식의 대화가 진행되면, 함께 그 곳에서 쳤던 냥 '아, 거기 좋지요'하고 대화에 끼어 들어,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골프를 쳐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당구를 전혀 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마쳤다는 얘기로 대꾸는 하는데, 맨 앞에서 얘기했듯이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건 간에, 골프를 치자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어,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잦아지고 있다. 한국의 골프 인구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보니 80만명-2004년 민노당 천영세 의원 자료-에서 500만명-골프장 관리담당 인사-까지 들쭉날쭉 인데, 골프를 전혀 치지 않는 자로서 여러 자료를 보건대 필드에 일년에 두 번 이상 나가는 인구를 한 200만, 연습장에 다니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약 450만으로 잡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어쨌든 골프 인구가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즐긴 사람의 수로만 보면 1995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서, 대중화가 되었다는 소리가 주류를 이루는 것 같은데, 이해찬 총리의 이번 사태를 보면 골프는 아직도 사회적 인식으로 위험한 경기이다.

 

      또 환경 문제가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할텐데, 가진 자의 스포츠라는 소득에 따른 계급적인 면을 떠나서도 환경훼손의 주범이라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골프는 계속 위험한 경기로 남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외로 타이거 우즈(Tiger Woods), 박세리, 최근의 미셸 위(Michelle Wie)의 등장으로 축구와 함께 가장 치열하게 스폰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골프이지만, 이런 잠재적인 문제가 스폰서쉽을 유치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날이 바로 올 것이다. 그리고  과연 골프를 쳐야 하는가라는 나의 고민도 계속될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713명 59%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493명 4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