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기죽지 말자!

입력 2005-12-29 13:51 수정 2005-12-29 13:51
영어로 기죽지 말자

 

      "The Joy Luck Club"이란 소설로 유명한 에이미 탠(Amy Tan)의 자전적 에세이집을 보면, 저자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중국계라서 그런지 영어로 글 쓰기나 저자 주변의 중국인들이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면서 겪은 얘기나 경험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에이미 탠이야 미국에서 태어났고, 중국계 이민자들이 몰려 있는 차이나 타운에서 살지 않고, 이사를 자주 다니기는 하였지만 주로 백인들의 거주지에서 그리고 중고교는 중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스위스의 한적한 곳에서 자랐다. 학교는 스위스의 외국인학교를 포함하여 영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환경에서 줄곧 공부를 했고, 대학은 미국 서부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버클리(Berkeley)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여건을 가진 에이미 탠조차 영어로 문학을 하는 것은 포기하라는 얘기를 학창시절에 선생님들께 들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물리학이나 의학을 해야지,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중국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라난 에이미 같은 경우는 힘들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초등학교 때 도서관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에서 지금 내가 보아도 감동적인 글로 상도 받는 등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민 1세대로서 에이미의 부모는 가정에서 중국어를 주로 썼다. 그러나 뛰어난 영어 능력을 인정 받아, 중국에서부터 미군과 함께 일한 아버지는 차치하고, 어머니까지도 책을 통해서만 판단하기로는 평균 이상의 영어를 구사한 것으로 보이며, 자녀들과의 대화는 영어와 중국어가 섞여서 이루어졌다. 우리 교포들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부모가 중국어를 주(主)로 영어를 부(副)로 섞어서 말하면 자녀들은 영어로 대답하고, '엄마'나 '아빠' 등의 호칭만 중국어로 하는 식이었다. 가정 내에서의 언어 환경이 언어 구사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것이 작가가 될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것일까?

 

      함께 일했던 미국 친구들 몇몇에게 장난삼아 간이조사를 해 본 적이 있다. 그들 중 몇 명에게 모회사의 존재 이유 혹은 경영이념을 담은 소위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를 보여 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어 보았다. 누구나 하는 평범한 사항이라든지, 의미는 좋다 식의 내용에 관한 평가가 나왔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어느 일본 기업의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똑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대뜸 잘 된 영어 문장이 아니다, 영어가 어색하다는 평가가 모든 친구에게서 나왔다. 내가 그들에게 영어를 평가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본 기업의 미션 스테이트먼트도 아마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썼든지 최소한 그들의 교정 과정을 거쳤을 터인데, '일본'이라는 선입견이 바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에이미 탠의 모친의 영어는 확실히 문법적으로나 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에이미가 미국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기 모친의 영어를 이해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90%로 대부분 이해하고 별 문제가 없다는 사람부터, 10%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그들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차이가 나서일까? 예전에 미국 광고회사에서 우리 쪽 창구로 일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몇 가지 사건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좌천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딴에는 진솔하게 그 동안의 문제점을 얘기했다. 가장 먼저 나온 얘기가 한국 사람들의 영어를 자신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접촉을 하고 일을 했던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이 길게는 10년 이상 짧게도 3~년 이상씩 미국 친구들과 교신하면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선입견도 선입견이지만, 그의 업무에 대한, 기본적으로는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부족으로 결론지었다.

 

      에이미 모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이해하고 대화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만 있었다면 똑같은 조건에서 누군가가 90% 이상을 이해하는데 겨우 10% 이해하는 것으로 그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와서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주문하다가 발음을 점원이 알아 듣지 못하여 낭패를 보았다는 얘기를 가끔 들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쓸 단어가 몇 개나 되겠는가? 점원이 알아들으려 노력만 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다. 중국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4성(四聲)을 완전히 무시한 높은 지위 한국인의 중국어를 그렇게 잘 이해하던 중국 직원이 비슷한 직급의 훨씬 중국어가 훌륭한 한국 친구의 중국어는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주의를 기울여 들으려 하면,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으로 하는 말은 다 들리게 마련이다.

 

      영어에 얽힌 얘기를 하면서 에이미는 중국어와 영어와 같이 두 언어를 비교하는 경우, 대부분 한 언어가 기준이 되어서 다른 언어를 평가하면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미국 친구들이 영어에 없기 때문에 중국어는 높낮이 성조(聲調)가 있는 이상한 언어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준으로 삼은 언어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사실이다. 에이미에 의하면 주변의 친구들까지도 가끔 자신의 어머니의 영어를 듣고, 어머니가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단수와 복수의 개념 자체가 영어를 떠나서도 개념조차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내가 덧붙이고 싶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와 같이 생각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인들이 미국인을 만나서 잘 쓰는데,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아나는 표현이 "내 어설픈 영어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것이다. 심지어 물건을 팔러 온 친구에게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다. 계약의 갑을(甲乙) 관계에서 을로 들어온 친구가 한국어 한 마디 못하고 계약을 따러 온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교포 2세, 3세 친구들이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업무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 심지어는 영어 구사 능력조차 내가 보기에는 다른 어떤 그들의 동료인 미국 친구들보다 뛰어난데 오로지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뭔가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입견을 편리하게도 적용하는 사례이다. 영어에 관해서 저자세로 저자세로 나가는 한 이런 편파적인 선입견은 강화될 뿐이다.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당당하게 나가기 위해서는 충실한 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들을 가치가 없는 얘기에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고, 그런 가운데 무슨 애정이 생기겠는가!

      

      광고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충실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그 표현이, 언어로 치면 발음이 어찌 되었건 고객은 들어주려 노력한다. 반대로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고객을 바라보면, 고객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현란한 무늬와 색상으로 치장만 한다고 해서, '소비자는 아무 것도 몰라'라고 애써 자위해서야 '광고가 그렇지'하는 선입견의 벽만 더욱 높아지고 단단해 질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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