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Big Mama- 로레타 와꾸야(Loretta Wakuya)

입력 2005-12-26 14:14 수정 2005-12-26 14:14
Little Big Mama- 로레타 와꾸야(Loretta Wakuya)

 

      거의 스포츠형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약간 펑퍼짐하면서도 짧달막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터프한 불량 소녀가 입어도 어울림직한 힙합을 소화시킬 수 있을 만한 패션 스타일에, 말보로나 윈스톤 중에서도 독한 담배만을 골라서 끊임없이 피워 대는 동그란 왕방울같은 눈 자위로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의 이 골초 여성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경력과 하는 일도 애매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학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광고대행사의 디자이너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인가를 그렇게 디자이너 생활을 하다가 영업, 즉 광고기획 쪽으로 영역을 넓혀-보통 이런 경우에 직종을 전환했다는 의미에서 '돌았다'는 표현을 주로 썼었으나, 로레타의 경우는 크리에이티브적인 감각을 가지고 그것을 실제 광고기획과 영업과 적극적으로 맞물리게 하기 위하여 직종을 전환하였으므로 '넓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AE로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만날 때는 맥켄 에릭슨(McCann Erickson)의 부회장을 역임한 피터 김(Peter Kim)-피터 김과 나와의 인연에 대해서는 졸저(拙著)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2002, 사회평론간)"의 후기에 소개하였으니 참조하시기 바란다. -과 함께 브랜드 전략 컨설팅 회사인 브라이트 선(Bright Sun)사의 창립 멤버로, 회사를 이끄는 트로이카 3인방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브라이트 선이 창립된 것이 1997년 초였고, 나는 그 직후부터 삼성그룹 브랜드전략을 이들과 함께 수립하기 위하여 단기 파견 형식으로 브라이트 선에서 그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트로이카 체제를 보면 당연히 피터 김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로서 인사이트와 큰 전략적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가운데, 맥켄 에릭슨의 전략 파트에서 오랫동안 피터 김과 손발을 맞춘 정통 AE 출신의 친구가 전략 부문에서 피터 김이 짜 놓은 큰 틀의 구석구석을 논리적으로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과 비교하여 로레타를 흔히 얘기하는 '관리' 부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을 하였다. 왜냐하면 처음 피터 김으로부터 소개를 받을 때, 그가 로레타를 브라이트 선의 '마마(Mama)'로 지칭하며 어려운 일,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로레타에게 얘기를 하라고 했고, 이후 불편한 사항에 대해서 로레타에게 얘기를 하면 모든 것을 잘 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브라이트 선의 다른 멤버들도 그런 불편사항들을 로레타에게 얘기하고 로레타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그들의 얘기를 들어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바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로레타는 계속 전략 관련 토의에도 참석을 하고 당시 삼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배경으로서의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해 폭을 증진시키기 위한 한국어 수업에도 참가를 하는 등 전략 수립 부문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로레타와의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는 그녀가 한국 역사와 문화 공부를 하면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하여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광고를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중의 하나가 아마 '차별화'일 것이다. 그런데 차별화가 쓰이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결과만의 눈에 보여지는 최종적인 밖으로 드러난 차별화만을 얘기하고 있다. 틀에 박힌 똑같은 과정과 생각의 흐름 속에서 최종 결과물만이 다르기를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진정한 차별화란 과정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선승(禪僧)으로 유명했던 어느 스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 중의 하나. 참선을 하면서 제일 먼저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마음 속에 담으라고 한단다. 그것이 마음에 담겨지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마음에서 지우라고 한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 찻잔을 다시 자신의 앞에 놓는 절차를 밟는다. 그런 과정을 밟고 나면 눈 앞의 찻잔 자체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광고를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이런 비슷한 과정을 자신이 광고할 물품에 대해서 거치고 광고를 한다면 좀 더 차별화된 그런 광고물이 나오지 않을까? 최종 결과물이 외관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한다. 왜냐하면 그 광고물이 나오기까지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탐구와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이 광고대행사 뿐만 아니라 광고주 측면에서도 공유된 경험으로 제품 자체를 바꾸어 놓고, 회사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연결되어 어두운 숲 속에 스며드는 빛처럼 결국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그런 근본으로부터 시작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로레타는 많은 질문을 던졌다. 제일 기억에 남는 질문은 광개토대왕에 대한 것이었다. "왜 광개토대왕은 그렇게 영토를 넓히려 했는가?"질문을 받고 잠시 막막했다. 속으로 바로 '그거는 너무 당연한 것 아니야?'하는 소리가 속에서 나왔지만, 곧 그렇게 근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을 나는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이, 그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의 한 조각으로, 또 예전의 왕이라면 당연히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하는 것이 주어진 의무인 냥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문제인지라 답을 주기가 무척 힘들었다. 브라이트 선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제일기획의 한 친구도 내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에 모두 호기심 어린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대답으로는 좀 궁색하지만, 되받아 치는 형식으로 답을 주었다. "미국인들은 왜 서부로 갔지(Why did Americans go west)?" 미국 친구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한국 친구는 안도감이 약간 서린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3개월 여를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로레타의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전략 수립이라는 부분에서 로레타는 근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일견 서로 연결되지 않고 뜬금 없는 듯이 보이는 팁을 던져 피터 김의 전략적 인사이트가 태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꾸려 나가는 데 있어서 다양한 인적 구성원을 진지함과 인자함의 조합으로 포용하고 토닥이는 넉넉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부분 모두에서 로레타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나도 로레타를 가끔 'Mama'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일을 떠나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일본인 2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도 나의 'Mama' 로레타였다.

 

      미국 주재원으로 가서 한 번 만나고 이후 은퇴하고 죠지아(Georgia)의 사바나(Savannah)에서 남편과 함께 한적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메일을 받았고 한 번 찾아 가겠다는 얘기만 던지고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자식이 없어서 그랬는지 특히 나의 애들에게 까지 자상하게 신경을 써주고, 그렇게 또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듬던 'Little Big Mama' 로레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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