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카멜레온

입력 2005-12-06 15:42 수정 2005-12-06 15:42
변하지 않는 카멜레온

 

      웬만한 광고회사면 광고를 기획하기 위한 기초 자료의 수집부터 거기서 아이디어를 추출하고, 그것을 광고제작물부터 각종 매체에, 또는 행사나 후원 등으로 어떻게 펼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방법론이 몇 개 업체들이 특정 기업의 광고 수주를 놓고 경합을 벌이면서, 광고 회사의 특장점을 소개할 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 얼마나 광범위하게 체계적, 과학적으로 접근을 하고 해결책을 빼내는지 문자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한다. 마치 자신들의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광고기획이 아니라는 듯이.

 

      세계 최고 규모로 손꼽히는 미국의 광고 회사에서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방법론을 다듬고, 그것을 실제 작업에 적용하는 일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일을 하니, 당연히 그 친구야 자신의 손때가 묻은 자신들의 방법론에 대한 충성도가 거의 북한에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아주 강렬했다. 너무나도 도식적으로 자신들의 방법론을 적용하려 하여, 격한 토론이 벌어지곤 해도 요지부동으로 자신의 공식에 맞춘 길을 가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잠깐 보이지 않는가 싶더니 라이벌 회사로 자리를 옮겨서 나타났다. 예전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 삼아 우리 쪽과 일을 만들기 위하여 들락거렸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새로이 몸 담고 있는 회사의 방법론이 얼마나 우수하고 효율적인지에 대하여 역설을 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입 다물고 있었지만, 사적으로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약간 장난스럽게 물어 보았다. "그 위대한 전에 네가 다니던 회사의 방법론은 어떻게 된 거야?" 둘만의 비밀을 나누는 듯, 그 친구가 속삭였다. "너도 알잖아? 옷만 갈아 입은 거라는 걸."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면 주유소 2층 방에 각 정권별 구호를 쓴 액자들이 쌓여 있는 장면이 있다. '선진조국 창조',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건설', '제 2의 건국' 등등. 주유소의 주인은 정권이 바뀜에 따라 그 정권이 내세우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한 꺼풀 더 들어 가면 자신의 위치에서 정권에 기대거나 정권과 무언가 연결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과시하려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옷만 갈아 입'었다는 미국 친구가 한 말의 이면에는 어차피 광고 기획을 위한 뼈대는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속삭임이 숨어 있는 것처럼, 습격을 당한 주유소의 액자들도 거기에 쓰여진 하나하나 구호의 의미보다는 장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자신만의 변치 않는 철학이 숨어 있다고 하겠다.

 

      지금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 않지만, 예전에는 삼성, 현대, LG의 경영 방식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존경하는 경영자 상도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두 창업자를 기준으로 확연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어떤 분 하나가 두 그룹 간에 자리를 옮기면서 인터뷰한 자료를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존경하는 한국 경제인이 서로 바뀌어진 것을 발견하고 쓴 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다. 딱 그 인터뷰를 한 분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자리를 이동한 분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분도 예전에는 비난해마지 않았던 경영자를 완전히 반대 입장에서 거의 찬양 일변도의 언사만을 늘어 놓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광고업계야 예전 평생직장의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시절에도 비교적 기업간에 인력의 이동이 많았던 편이었다. 그러니 누가 자리를 옮겨 전과 다른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위의 미국 친구의 얘기처럼 옷을 갈아 입었으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예전의 대그룹간의 다툼에서는 정도가 달랐다. 정말 뼛속까지 바뀐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했다. 꼭 종교나 사상을 가지고 사람을 재단하던 시절-요즘도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에 단순히 내가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이전의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여 자신의 전향을 확실하게 증명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었다.

 

      장자(莊子)에 보면 '도행지이성 물위지이연(道行之而成 物謂之而然)'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충 해석하면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 길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일컫는 대로 사물은 정말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자꾸 자신이 뼛속까지 변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다 보면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이 근본부터 그렇게 변할 수 있다. 옷만 갈아 입고, 다른 구호의 액자를 갖다가 끼워도 자꾸 되뇌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자체가 도그마처럼 자신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동경대 총장을 지낸 하야시 겐따로(林健太郞)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군국주의 시대에는 좌익으로 몰렸고, 종전 이후는 우익으로 낙인 찍혔다. 그가 은퇴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항상 대로의 한 가운데로 걸었다. 단지 그 길이 왔다갔다 했을 뿐이다." 사람들의 취향이나 시대적 유행과 구호가 왔다갔다 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길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때로는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카멜레온도 단지 색깔만을 바꿀 뿐이지, 자신의 형체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바꾸어야 할 부분, 바뀌어도 될 부분, 일관성을 가지고 가져가야 할 부분을 확실히 구분하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설사 누군가가 그렇게 구분을 하지 못하고 마구 바뀐다고 할 때, 그것을 길이 왔다갔다 하는구나 식으로, 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포용력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59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455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