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이 연극보다 좋은 이유

입력 2005-05-02 18:31 수정 2005-05-02 18:31




희곡이 연극보다 좋은 이유




        2주 정도 두 시간 이상 계속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기침에 시달려, 주중에 하루 휴가를 냈다. 가족들이 모두 학교를 가고 혼자 누워서 어떤 책을 읽을까 눈동자를 굴리며 침대 옆의 서가를 훑고 있었다. 몸도 성치 않고 휴가를 낸 형편에 침대에 누워서 하드커버를 볼 수는 없고, 무겁고 심각한 내용의 책은 피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툭툭 끊어서도 볼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런 요구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바로 희곡이었다.




        한 때 희곡들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학, 장기출장 등 혼자서 있던 시간에 희곡들을 많이 읽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읽으며, 혼자서 있다는 생각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혼자서 맘껏 놀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주는 면이 있다. 그리고 특히 대부분의 희곡이란 것이 한 편이 실리면 기껏해야 100 페이지 안쪽으로 아주 얇기 마련이고, 희곡집으로 몇 편의 희곡들을 모아 놓은 것도 대부분 페이퍼백으로 나와서 가지고 다니기가 부담이 없다.




        희곡 중에서도 집중적으로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닐 사이먼(Neil Simon)의 작품들을 거의 대부분 읽었다. 주로 뉴욕커(New Yorker), 그 중에서도 유태계 인물들의 가족 이야기를 유머를 섞어 감동적으로 펼쳐 놓은 그 특유의 재미도 있지만, 나름대로 특별하다면 그런 인연도 있었다. 기성극단의 공연으로 내가 처음 본 연극이 바로 닐 사이먼의 “별을 수놓은 여자(Star Spangled Girl)"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 명동성당 옆의 삼일로 창고극장에 힘겹게 찾아 가서 보았다. 한 친구가 자기와 친한 친구의 형이 그 연극에 출연하다고 보러 가지고 해서, 함께 가기로 했는데 정작 그 친구는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 생겨서 못가고, 나와는 그 전까지 별 안면도 없었던 친구와 서먹서먹하게 교복 입고 갔다. 워낙 극장이 좁아 그리 많지 않은 관객이었지만, 극단 직원 중의 하나가 코믹한 몸짓과 대사를 섞어서 관객들을 이리저리 몰면서 밀착을 시키면서 장내정리를 하였다. 와중에 얇은 팜플렛과 같이 나온 공연안내책자를 보면서 ‘너희 형이 누구냐?’하고 묻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형!’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형은 배우가 아닌 소품담당이었다. 슬쩍 동생 쪽을 보더니 소리만 들리는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묵묵히 무대 위의 책상 자리를 잡고, 사과 하나를 갖다가 얹어 놓고 하는 행동을 가끔 구박을 맞아 가며 하더니, 동생 쪽으로 채 고개를 다 돌리지도 못하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무대 뒤로 돌아 갔다. 친구는 그래도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어쨌든 연극도 재미있게 보았고, 끝나고 나서는 무대 뒤로 가서 그 형에게 인사까지 했다. 기껏해야 영화나 보러 다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한결 내 자신이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본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아서 이후에 한두 편 기억에도 잘 남아있지 않는 싸구려 연극을 보았고, 대학 입시 후에 본격적으로 연극을 보러 다녔다. 그 중에 하나가 어느 극단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 입학 직후에 본 유진 이오네스꼬의 ‘대머리 여가수’였다. 그 연극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어 수업 시간에 어떤 연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연극 ‘대머리 여가수’ 줄거리를 얘기하면서, ‘여러분, 연극의 마지막 대사가 무엇인지 아세요?’하며 자문자답을 하였다. ‘대머리 여가수는 머리를 어떻게 빗을까요?’였단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대사는 ‘우리의 대머리 여가수는 어디로 갔을까요?’였기에 그 얘기를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확인을 해보시겠다고 하셨다. 다음 수업 시간에 잊지 않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희곡 원본을 보니까, 영어로 치면 ‘do'와 같은 대동사(代動詞)를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연출자에 따라서 자유롭게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연극, 특히 외국 연극을 보면 원본 희곡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이 되어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가능한 한 희곡을 구해서 보았다. 역시 워낙 인기가 있고, 작품을 많이 내놓아서이기도 하겠지만, 특정 작가로서는 닐 사이먼의 연극과 희곡을 많이 보았는데,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Brighton Beach Memoirs)'같은 경우는 각각 다른 극단이 공연하는 연극으로 두 번, 그리고 영화화한 것을 한 편 보았다. 처음 공연을 보고, 희곡을 구해 본 후, 1년 반 정도 후에 다시 다른 극단이 공연한 연극을 보고, 또 희곡을 본 후 영화를 보았는데, 세부적인 구석에서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영화를 감독의 입장에서, 그 다음에는 촬영감독의 눈으로 등등 수십번을 보아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매번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광고를 만드는데, 우리와 같은 기획자 바로 플래너(Planner)라고 하는 사람들은 얼추 성성하게 엮은 희곡을 건네주는 역할을 한다. 그 희곡을 하나의 꽉 짜여진 작품으로 관객에게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것을 제작 부문에서 즉 Creative 파트가 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때 보면 희곡 원본이 얘기하는 바가 너무 희미하여 의도와는 다른 무대가 꾸며질 때도 있고, 다른 경우는 희곡을 너무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하다 보니 제작이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도 있다. 희곡과 무대 위의 연극은 중간중간 소위 ‘Rewriting'이란 것을 하면서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아 가는데, 유감스럽게도 광고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한번 내놓으면 그것을 다시 수정하기란 힘들다.




        그런 면에서 혼자 뒹굴대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관중과 소비자 앞에 직접 작품을 올리는 부담 없이 맘대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 희곡이 나는 연극보다 더 좋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영화배우이자 유명한 여배우 제시카 랭(Jessica Lange)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샘 쉐퍼드(Sam Shepard)의 약간은 괴기스럽기까지 한 일련의 희곡들이었다. ‘매장된 아이(Buried Child)', '굶주린 사람들의 저주(Curse of the Starving Class)'와 같은 제목만 보아도 그런 느낌이 오지 않는가? 아마 이들이 실제 연극 무대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표현되었는지 앞으로 확인해 볼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상상의 세계 속에 샘 쉐퍼드의 무대를, 나름대로 충실하게 침대 위에 누워 세워 보았다는 데서 충분히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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