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me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입력 2012-07-05 14:39 수정 2012-07-05 14:39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속이 상한다. 저러다 건강은 상하지 않을는지. 간이 안 좋다면서 술은 끊지 못한다. 거기다 공짜 술이 어디 있는가? 얻어 마시다 보면 사 주기도 해야 할 터인데. 살림살이도 빠듯한 지경에 웬 술타령일까. 기분이 상한다. 뭐라고 타일러도 듣지 않는다. 오늘도 술을 먹고 비틀거린 채 들어선다. 남편의 꼴도 보기 싫다. 안타까움은 저리 도망간다.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중얼거린다. ‘또 술 (쳐)먹었구나.’ 마음이 고울 리 없다. 소리친다. ‘제발 그만 좀 먹어요. 술이 밥을 사줘. 돈을 갖다 줘.’ 그래도 남편은 막무가내다. 흥얼흥얼. 뭐가 좋아 저러는지. 부아가 치민다. 넋두리를 한다. ‘아이고. 못 살아. 저 인간(이 때는 남편이 아니다) 한강 물은 말라도 술독은 안 마를 거다. 간이 녹아나겠다. 녹아 나.’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 이럴 때는 자식 놈들의 하는 짓거리도 마음에 안 든다. 마음의 전쟁은 확대된다. 아이들한테 한마디 내 지른다. ‘느그들은 느그 아버지 절대 닮지 말아라.’ ‘어떻게 된 게 너는 느그 애비 쪽 빼 닮았냐 그래.’ ‘하긴 종자가 그러니 할 수 있냐?’ 이래서 가정은 전쟁터다.



부인들이 알기나 할까? 남자들은 세 번만 울도록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태어 날 때 운다. 부모를 잃었을 때 목 놓아 운다. 나라를 잃었을 때 가슴을 친다. 남자들도 울고 싶을 때가 많다. 건강도 이전 같지 않다. 직장생활도 고달프다. 밑에서는 치고 올라온다. 위에서는 찍어 누른다. 성과는 오르지 않는다. 친구를 만났다. 이번에 스톡옵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한 밑천 잡았다고 한다. 옆에 김 과장 네는 아들이 시험에 합격했단다. 그것도 4년 전액 장학금으로. 울컥 화가 치민다. 장학금은 고사하고 재수를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 울고 싶다. 그러나 우는 순간 바보가 된다. 그래서 슬프다. 한국 가장들의 자화상이다. 그들은 울지 못하니까 술로 눈물을 대신한다. 술은 ‘남자의 눈물’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선다. ‘여보, 술은 남자의 눈물이라는데 그 눈물 함께 흘리지 못하는 내가 죽일 년이지.’ 그럴 때 남자들은 아내의 자신을 향한 진심을 읽는다. 돌아선다. 그리고 밤새 베개를 적신다.

술을 남자의 눈물로 바라다보는 것을 일러 프레임(frame)이라 한다. 프레임을 바꾸면 가족이 바뀐다. 세상이 달라진다. 하찮은 것이 의미로 찾아든다. 신경질만 해도 그렇다. 신경질울 ‘나쁜 것’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다보는 순간 상대방은 ‘악한’이 된다. 그러나 신경질을 ‘감정의 아토피’라고 읽는 순간, 싸늘한 시선이 아니라 긍휼의 시각으로 바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 안 돼 보인다. 돌보고 싶다. 그래서 프레임이 관계를 바꾼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은 타히티다. 그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뜻밖에도 ‘슬픔’이란 단어가 없어서였다고 한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에 의하면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붙일 개념이 없었다는 거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다.



이를 두고 <저(低) 인지(hypocognition)>라고 한다. 필요한 생각, 즉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frame)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지칭했다. 일테면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로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강화도를 유배지, 오지, 시골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다보면 강화도는 그냥 버려진 땅일 뿐이다. 하지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면 강화도는 꼭 가보고 싶은 역사 유적지가 된다. 불신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시 같은 존재로 바라보면 언제나 우리를 아프게 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하지만 ‘은혜의 통로’ ‘가정 선교지’이란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신자란 말도 버려야 한다. 마치 불임(不姙) 가정을 위해 기도하자는 말과 같아서다. 불임이라고 하면서 왜 기도는 해야 하는가? 때문에 난임(難姙) 가정이라 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불신자 대신 미신자(未信者)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CHO(Chief Happiness Officer) 송길원은 행복프로듀서, 행복촌장, 행복전도사로 불린다. 고신대학과 동대학원, 고려대학교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아내 김향숙과 사이에 예찬과 예준 두 아들이 있다. 가정문화를 퍼트리는 문화게릴라로 불리는 그는 수도 없이 가정회복의 아이디어를 퍼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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