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0살이 된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

입력 2016-02-01 10:14 수정 2016-02-01 10:14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었던 포니(Pony)가 등장한 것이 딱 40년전의 일이다. 포니의 차체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업체 이탈디자인(ITAL DESIGN)에서 1974년 2월에 완료되었고, 설계와 공장건설 단계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76년 2월부터이니, 이제 2월이면 정확히 40년이 되는 것이다. 혹시 현대자동차에서 포니 40주년 기념 모델, 말하자면 클래식 미니의 이미지로 40년 만에 ‘뉴 미니’를 개발했듯 그런 ‘뉴 포니’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조형적인 측면에서 포니는 그 당시 국제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에서도 한 획을 긋는 조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차체 전체적으로 간결한 기하학적인 조형요소로써 높은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장식적인 요소가 배제된 추상성(抽象性)이 높은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포니의 개발에 앞서서 이탈디자인은 포니의 차체 디자인을 주제로 한 컨셉트 카 포니 쿠페를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 발표한다. 이 차량은 포니의 기하학적인 디자인조형을 더욱 강조한 모델로써, 비록 시판되지는 않았지만, 포니의 디자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컨셉트 카 포니 쿠페



1976년형 포니



 

포니는 시판 첫해에 우리나라에서 1만 726대가 팔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1978년 12월에는 내수 7만8천8대, 수출 2만4천692대를 달성하는 등 빠른 판매성장을 했다. 물론 오늘날의 현대자동차 연간 자동차 수출 대수를 감안해 본다면 2만4천여 대의 수출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의 자동차메이커가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포니는 이후 1982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모델 포니2가 나오기까지 내수 20만 8천대, 수출 9만 2천대로 최초로 단일차종 30만대를 넘는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이렇듯 포니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모델이다.

포니의 3도어 모델



포니의 차체 디자인은 전문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패스트 백(fast back)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뒤 트렁크 부분이 뒤 유리창과 동일한 경사면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빠르게(fast) 흐르는 형태를 가진 뒷부분(back)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트렁크 뚜껑은 뒤 유리창과 분리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별도로 열리는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뒤쪽이 크게 경사진 패스트 백(fast back) 형태이고, 네 개의 문을 가지고 있으며, 승객실과 트렁크 공간이 분리된 3박스(box) 구조, 즉 세단(sedan)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패스트 백 형태의 차들은 객실과 트렁크가 연결된 2박스(box) 구조에, 커다란 테일 게이트(tail gate)가 있는 해치 백(hatch back)구조인데, 포니1은 그러한 유형이 아닌, 특이한 구조와 형태였던 것이다. 물론 포니는 이후에 스테이션 웨곤(station wagon)과 픽업(pick-up), 그리고 1980년 4월에는 3도어 해치백모델도 개발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 페이스 리프트(face lift), 즉 차체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크게 바꾸고 개선한 모델로 포니2가 나온다. 포니2는 트렁크 뚜껑과 뒤 유리가 일체로 되어 있어서 전체가 하나로 열리는 구조의 해치백(hatch back) 구조가 되었다.

5도어 해치백으로 개발된 포니 2



포니는 1976년에 시판되기 시작한 이후, 1982년에 포니2가 나오기까지 몇 번의 연식변경(年式變更, model year)이 있었는데, 물론 그 변경내용은 방향지시등(方向指示燈)의 렌즈형태나 범퍼의 코너 브래킷(corner bracket)의 형상 등 세부적인 부품의 형상변경이었다. 사실 처음 나온 모델 좌․우의 앞 펜더에 달려있는 측면 방향지시등은 렌즈의 크기가 작아서, 포니의 차체 스타일과도 어울리지 않았었다. 테일 램프는 조립된 나사못이 렌즈 밖으로 보이는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해부터 나온 모델은 방향지시등과 테일 램프가 모두 깔끔하게 정돈되어 나와서 포니의 차체 디자인을 훨씬 더 모던하게 보이게 했었다. 이 밖에도 앞면의 방향지시등과 차폭등(車幅燈)도 초기의 모델에서는 앞 범퍼 아래의 에어댐(air dam)에 달려있던 것이 다음 해에는 앞 범퍼로 올라오는 등 몇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포니의 디자인적 진화는 계속되었던 것이다.

 

포니의 딜럭스 형 모델



그 당시의 포니는 사실상 소형 승용차로써가 아니라, ‘자가용’으로써의 의미가 절대적이었으며,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타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차체의 장식품도 보수적인 이미지로 마무리한 경우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차체의 지붕 부분을 검은색 인조 가죽(비닐레자라고 불렸다)으로 씌우고 클래식한 이미지의 부채살 모양의 휠 커버를 씌우는 등의 부가적인 치장으로 포니는 소형 승용차가 아닌, 마치 미국의 캐딜락(Cadillac) 류의 고급 승용차와 비슷한 클래식한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차체 지붕을 이와 같이 인조가죽을 씌우는 것은 과거 고급 승용차들이 개폐식 지붕을 가진 무개차(無蓋車)였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실상 지붕이 열리지 않으면서도 마치 무개차인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장식기법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승용차들은 인조가죽을 지붕에 씌워 장식을 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성행하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장식을 하다고 해서 차량의 본질적인 특성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니의 이미지는 완전히 변화했다. 본래의 포니의 이미지는 깔끔하고 모던한 조형요소에 의해 마무리된 차량이지만, 이렇게 지붕에 인조가죽을 덧대는 작업을 통해서 정말로 소형 승용차답지 않은 품위(?)있는 고급 승용차와 같은 이미지도 풍기게 되었던 것이다. 포니는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소형 승용차가 절대 아니었다.

 

이제 포니 개발 이후 40년이 흘렀고,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의 수준으로 발전했다. 우리의 독자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차량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수출하고 있으며, 1,000cc 배기량의 경승용차에서부터 5,000cc의 대형 고급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국산 승용차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남한만으로 본다면, 미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한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서 차를 생산하기까지도 하는 정도의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발전을 이룬 것은 바로 1970년대를 살면서 고유모델 ‘포니’, 아니 자가용 ‘포니’에 대한 열정을 가졌던 수많은 한국인들의 ‘로망’이 바탕에 있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열정(passion)’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세계적 규모의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단지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이었다고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에너지가 있었음에 틀림 없다. 그러기에 열정은 ‘이성(ration)’이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이루어 내는 에너지를 주는 근원인지 모른다.
국민대학교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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