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버린 중세의 시계 브뤼헤

입력 2013-03-13 18:25 수정 2013-03-13 18:25


중세 유럽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마차가 다니고 높은 교회의 첨탑과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수다를 떠는 아낙네들의 모습. 그런 모습을 자아내는 도시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실개천 위에는 백조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중세가 나의 머릿속에는 얼핏 이런 광경들로 이어지는 것은 왜일까. 유럽을 많이 다녀봤지만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유럽에 있지만 정말 오래전에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된 유럽다운 도시를 찾는 것이 힘든 이유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파괴된 건축물이 원형대로 복원된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사는 유태인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바로 옆의 이웃나라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거쳐 도착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브뤼헤. 기차역을 나와 도시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브뤼헤가 보여준 감흥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어서 사진 무용론(無用論)에 빠졌던 내가 계속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정도였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카메라가 아닌 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나였지만 이 세계문화유산이 던져주는 중세 도시 그 자체의 모습에는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해외여행 책자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시가 브뤼헤지만 십여 년 전만해도 아는 사람만 찾아 가는 숨겨진 명소였다. 대도시 위주의 식상한 여행 패턴에서 벗어난 사람들만이 방문하는 숨은 진주 같은 곳이 서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브뤼헤인 것이다.




(벨포트 종탑)





벨기에는 네덜란드어권인 플랑드르 지방과 프랑스어권인 왈롱 지방으로 나뉘는데 브뤼헤는 플랑드르 지방에서도 서쪽에 위치한다. 브뤼헤를 더욱 중세도시처럼 보이게 하는 건물이 1240년에 세워졌다는 벨포트 종탑이다. 366계단을 올라야 다다르는 종탑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 전경은 가히 유럽의 최고라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종탑의 계단을 오르느라 피곤해진 다리는 눈의 즐거움으로 인해 아무 불평도 늘어놓지 못한다. 종탑은 770여 년 동안 이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고 도시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목격했으리라. 이 종탑 앞으로 펼쳐진 마르크트 광장에는 지금도 수많은 마차들이 오고 가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거스(argus)같은 벨포트 종탑의 시선을 받는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색깔, 그 색깔로 몸치장을 한 건물들이 가득 찬 마르크트 광장에 모인사람들은 과연 종탑의 시선을 느끼고는 있는지.





(벨포트 종탑 위에서 바라본 브뤼헤 전경)




머릿속 상상이었던 중세의 모습을 브뤼헤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재현해주었다. 교회의 첨탑은 벨포트 종탑이, 아낙네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는 마르크트 광장이, 백조가 노니는 실개천은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운하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중세를 보고 난 브뤼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현대적인 것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에게 브뤼헤 여행을 권한다. 유행이라는 것의 덧없음에서 빠져나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브뤼헤에 서려있는 중세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순간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의 의미를 찾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참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종탑이 오늘도 변함없이 한자리에서 중세로의 여행을 지켜보는 도시 브뤼헤를 떠올린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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