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극복하고 호주에서 우뚝 선 청년이야기

입력 2011-03-29 14:22 수정 2011-03-29 14:22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청년은 호주 중앙은행에서 선임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호주 사람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호주 중앙은행에 한국인으로서 아니 진정한 호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는 한국인이지만 호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한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 청년의 이름은 Charles In (한국 이름 인치형)이다.

한 때 백인 위주의 폐쇄적인 사회를 의미했던 백호주의로 악명이 높았던 호주에서 이 청년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고, 인종차별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호주사람들조차 부러워하는 위치임에 틀림이 없다.

 

작년 7월 나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 세계한인차세대대회 ' 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포럼에서 차세대 리더의 역할과 한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대해 발표했다. 그의 패기 있는 발표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Charles야 말로 진정한 세계인이라고 느꼈다. 호주로 돌아가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사는 그를 인터뷰했다.

 

 

Q1 호주에 이민을 언제 갔고 이민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1979년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다섯 살이 되던 1984년에 호주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봉급쟁이로 계속 살아간다는 것에 염증을 느끼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증권 거래인이셨는데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신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호주로 오기 4년 전인 1980년에 먼저 호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 모두가 호주로 가기 전에 미리 현지에서 사전 준비 작업을 하셨습니다.

 





 
Charles In 의 어렸을 적 모습







Q2 어렸을 적 호주에서 겪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호주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누나와 함께 친구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누나와 떨어지게 되어 길을 잃고 울고 있었는데 경찰이 와서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죠. 경찰이 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영영 미아가 될 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아찔한 순간이었죠. 그때 이후로 누나와 사이가 안 좋아져서 지금까지 안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호주 경찰은 아주 친절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호주 경찰이 한국 경찰보다 이미지가 좋은 거 같아요. 그것은 호주 경찰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한국 경찰에 비해 업무상 스트레스가 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녔던 1980년대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호주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것으로 알았죠. 제가 한국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저를 " 중국 아이 ", " 일본 아이 " 라고 부르면서 놀렸습니다. 그건 일종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고 그런 일들로 기분이 나빴을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인종차별은 고등학교에 가서나 끝났는데 그 이유는 제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수가 반이 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몇 군데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새로 다니게 된 모든 초등학교에서 언제나 유일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지역에 있지 않았거든요. 대학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한국인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국 친구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국체육대회에 호주 대표로 참가한 적도 있다.



 

Q3 성장하면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때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호주에 있는 한국인 테니스 클럽에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였죠. 그 곳에서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하고 놀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었으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기 전에는 호주 사람이나 호주에서 사는 외국인들과 어울렸었거든요. 시드니에 있는 테니스 클럽에는 20명 정도의 한국인이 있었는데 연령층이 다양해서 20대부터 70대까지였습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테니스를 치곤했는데 밤 11시까지 테니스를 치고 집에 돌아가면 자정이 넘었습니다. 금요일은 주말이었기 때문에 테니스를 즐긴 후에 한국 사람들과 뒤풀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과 만나고 교제하면서 나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여 테니스 종목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Q4  한국말을 잊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

 

우선 부모님이 영어를 못하시기 때문에 부모님께 말할 때 한국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하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말마다 운영되는 한국학교에 다녔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는 이제 아주 중요한 언어가 되었고 그것은 한국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5 호주와 한국의 가장 큰 문화적인 차이점은? 호주에서 한국이 꼭 배워야 하는 것은?

 

호주사람들은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이 스스로의 일을 결정합니다. 아주 개인적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단체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개인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차이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과 호주를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오렌지와 사과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주산 오렌지와 한국산 오렌지를 비교할 수는 있어도 오렌지와 사과를 비교할 수는 없겠죠. 왜냐하면 오렌지와 사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주는 엄청난 천연자원을 가지고 엄청난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국가이지만 한국은 국토 면적이 호주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천연 자원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구는 오히려 호주의 인구보다 많습니다. 이렇게 비교할 수 없는 두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이 호주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언제나 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학부모 스타일이셨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스포츠를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다시 개인 교습을 받으러 가야했는데 어머니는 제가 도망칠까봐 문 밖에서 한 시간이나 지키고 계셨지요. 물론 몇 번 도망치다가 어머니한테 혼난 적도 있습니다. 여전히 부모님은 제가 어떻게 대학을 입학해서 졸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의아해하십니다. 부모님은 제가 가진 재능을 아직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한국에서는 공부가 학생들에게 있어서, 아니 부모들에게 있어서 지상과제일 지 몰라도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점수를 높게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면 호주에서는 공부하는 전 과정을 봅니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잘 하게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닐까요. 이것이 호주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에는 골프에 심취해 있다.



 

Q6  현재의 직업을 갖게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앞으로 어떤 계획과 포부가 있는지.

  

한국은 모든 것을 시험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데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열한 시험을 봐야하고 다른 사람과 엄청난 경쟁을 다시 해야 하는데 호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호주에서는 어떤 사람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성실히 공부를 했고 학점을 이수했으며 여러 가지 일에 대한 경험을 쌓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단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대학 기간 내내 그 사람이 공부했던 전 과정을 보고 사람을 뽑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고 제 성적은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MENSA (전 인류 중 IQ 가 2프로 안에 드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입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좋아서 좋은 직장을 얻고 많은 연봉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즈음 골프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골프를 연습합니다. 지금은 Handicap이 15정도 되는 수준인데 향후 2년 안에 handicap 5 수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의 제 업무를 즐기고 있으며 행복합니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싶습니다.

 

 

Q7  한국 청소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한국 학생들에게는 꼭 취미 활동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공부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학교에서의 공부 또는 직장에서의 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행복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힐 때가 좋습니다.

 





 
2010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했다.





 
세계한인차세대대회 포럼에서 호주에 대한 발표를 하는 Charles In




Charles In 과의 인터뷰는 참으로 유괘 했다. 스스럼없이 쏟아내는 솔직한 답변들이 담백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답변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가 호주 사회에서 성공한 한국 청년이라는 사실도 날 기쁘게 했지만 일상을 즐기는 그의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가 말하는 성공은 균형 잡힌 생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삶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난 많은 것을 느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감에 차있다는 사실이었다.

- 이 글은 본인이 3월 27일 교과부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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