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입력 2011-02-17 11:09 수정 2011-02-17 11:11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신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떠나시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했던 분이셨기에 우리는 베푸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분의 뒷모습은 아름답게 보인다. 이미 선종하셨지만 우리 마음에 아름다운 등불을 켜주시고 가셨다. 눈이 불편한 사람에게 얇은 각막마저 주시고 가신 김 추기경님은 일찍이 1989년 9월에 각막 기증 의사를 밝히셨고, 이듬해인 1990년 1월에 안구 기증 신청서에 서명을 하셨다고 한다.

 

선종 직후 추기경님의 각막은 적출되었으며, 각막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 각막은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얇디얇은 막에 불과하지만 그 얇은 막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른 신체 부위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한들 세상의 사물을 볼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까.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주천기 교수님이 2월 14일에 출간한 '세상을 보여줄게'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각막을 적출한 의사는 가톨릭 의과대학 안과 주임교수를 역임하시고 현재는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으로 재직하시는 주천기 교수님이다. 그는 의사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이번 주에 출간했는데 추기경의 안구를 적출할 때의 긴장감을 이 책에서 자세하게 술회하고 있다. 20년간 수백 번이나 반복해온 눈 수술이었지만 너무나 긴장하여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는 그의 말만으로도 그 적출 순간이 상상된다. 김 추기경님께서 고령이셨기 때문에 적출한 안구에서 떼어낸 각막이 과연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느냐를 다시 검사하는 과정을 거쳐야했는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고뇌 또한 이 책에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상을 보여줄게'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 추천기 교수님(좌)

   

주교수님과 나는 2009년 아프리카 케냐에 봉사활동을 같이 다녀오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나의 역할은 총괄 코디네이터였는데, 현지에서 눈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한다. 예를 들면, 현지 병원의 시설과 관계자의 일정도 체크해야하고, 실제 수술이 가능한 환자를 선정해야 하며, 수술시 발생할 여러 가지 돌발 사태에 대한 사전 준비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협의하고 조율하는 일이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병원의 건물구조와 갖추어진 장비 또한 우리나라 너무도 다른 것이어서 현지에서는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아프리카 대륙의 검은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심장은 울렁거렸고 이방인인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들의 검은 손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돋는 거 같았다.

 

비위생적인 생활환경과 강력한 자외선 때문에 케냐에는 안과 질환에 걸린 환자가 넘쳐난다. 특히, 어린이들을 실명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소아 백내장이 만연하고 있다. 인구가 3천 8백만 명에 달한다는 케냐에서 안과의사 수가 83명이라고 한다. 수백만 명이 안과 질환을 가지고 있는데 안과의사가 고작 83명 있다니. 케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안과 의사 수 3천명을 고려하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와 케냐의 그것은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비교가 불가능하다. 아프리카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경악하고, 수술을 받고 싶어도 시신경이 다 훼손되어 수술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민하던 주교수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생나이 밖에 되지 않는 어린이를 국부마취만 한 채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을 못내 잊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내장 수술의 경우, 고등학교까지는 전신마취를 하는데 비해 케냐에서는 7살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무조건 국부마취를 한다는 사실에 교수님과 함께 엄청나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세상을 보여줄게' 판매로 나오는 모든 인세를 전액 기부한다는 서약식




'세상을 보여줄게' 의 뒷부분에 교수님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언제든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겠노라고 다짐을 거듭했다" 라고 쓰셨다. 교수님은 진정한 봉사는 상황이 좋아지고 때가 되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수술을 받고 세상의 빛을 본 후에 케냐 어린이와 어린이의 부모가 외치는 "아산테사나" (스와힐리어로 고맙습니다)는 남을 도움으로써 느끼는 기쁨과 뿌듯함 그 이상이었다. '세상을 보여줄게' 출판으로 얻어지는 저자 인세 전액은 실명예방기금으로 조성되어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액 기부된다고 하니 이 또한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주천기 교수님의 카톨릭 의과대학 제자들




평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있다. 죽는 그 순간에도 아직 기능을 발휘하는 장기가 남아있다면 그것마저 남에게 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신이 창조한 인간의 몸이 병들었을 때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훌륭한 의사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기 전에 겪어야 했던 성장통과 좌절. 인생의 멘토를 만나서 다시 용기를 얻고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모습들. 그리고 최고의 의사가 되어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을 적출해내고 다른 환자에게 이식하는 순간과 검은 아프리카 대륙에 가서 처참한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고 봉사하는 삶을 다짐하는 그의 모습을 진솔한 문체로 그는 책에 담아내고 있다.

  



 
성공적인 출판을 기원하는 참석자들의 방명록




나는 고등학교 때는 보이스카우트 활동의 일환으로 양로원과 고아원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동료들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보린원에서 두 명의 학생들을 선정하여 후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며 나보다 못한 환경의 사람들을 뒤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케냐에서의 봉사활동때문이다. 금전으로 하는 봉사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봉사는 실천하는 봉사라는 사실도 케냐였다. 그리고 주교수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통해 많은 용기를 얻었다.

 

교수님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각막 적출을 집도한 최고 명의가 되기까지의 많은 에피소드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무엇보다 추기경님이 남겨주시고 간 봉사라는 큰 씨앗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본인이 교과부 블로그에 2월 16일 기고한 글입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12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75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