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을 느낀, 변화한 대학 축제

입력 2010-05-20 23:24 수정 2010-05-20 23:25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5월을 여왕으로 모시는 여름, 가을, 겨울의 달들이 ‘5월 여왕’의 성대한 대관식을 올리는 다분히 만화적 상상을 해본다. 




여왕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중요한 행사와 기념일이 5월에 몰려 있다.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사람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5월의 아름다움을 수많은 사람들이 칭송했지만 독일 음악가 Schumann의 가곡 Im wunderschonen Monat Mai (아름다운 5월에)는 진솔하게, 그리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詩語로 5월을 표현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짝사랑에 빠져 이 가곡을 독일어로 외우려고 밤을 지세웠던 기억이 새롭다.

 





Im wunderschonen Monat Mai,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Knospen sprangen,    꽃봉오리들이 모두 피어났을 때,

Da ist in meinem Herzen       나의 마음 속에도

Die Liebe aufgegangen         사랑의 꽃이 피어났네

Im wunderschonen Monat Mai,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Vogel sangen,        새들이 모두 노래할 때

Da hab' ich ihr gestanden     나도 그 사람에게 고백했네

Mein Sehnen und Verlangen     그리운 마음과 소원을



 

5월의 이미지와 사랑의 이미지는 왠지 잘 어울리는 것이어서 5월에는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 살펴봐도 5월에 결혼식이 제일 많다고 한다. 이곳 저곳에서 받는 청첩장이 책상에 쌓여있는 걸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5월을 계절의 황제, 계절의 군주,또는 계절의 황태자라 부르지 않고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만큼 부드럽게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매혹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5월은 대학 축제의 계절이기도 하다.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이 5월 중에 축제를 연다. 언제부터인가 대동제라는 말이 더 친숙해졌다. 신입생들에게는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치른 중간고사의 긴장을 풀고 낭만을 누릴 수 있는 첫 행사이고, 군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 복학생들에게는 옛 추억의 장이 된다.

 

업무상 미팅을 한 장소가 내가 공부했던 대학 근처여서 막간을 이용하여 실로 오랜만에 대학 축제 현장에 다녀왔다. 예전과 다름없는 젊은 열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그 축제가 담아내는 콘텐츠는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라는 한자성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Tequila, 멕시코가 주산지인 독한 술. 그러나 한국에도 소개되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술이다. 그 Tequila가 대학 축제에 있다니. 동동주와 맥주로 대변되는 대학 축제에 멕시코 술이 등장했다. 한잔에 얼마라는 식의 가격표도 붙었다. 물론 외국 학생들을 배려해서 한글과 영어가 동시에 표기되어 있는 메뉴다. 대학 문화가 한 나라의 문화적 지표라고 말한다면 이미 우리나라 대학가는 글로벌화가 완성된 거처럼 보인다.

 








 

사물놀이로 대변되는 대학 축제에 흑인음악이 등장한 것도 이채롭다. 흑인음악 동아리에서 나왔다는 변준환 군(연세대 기계공학과)은 일 년에 정기 공연을 세 번하고, 자작곡까지 만들어 연합공연을 한다고 말한다. 흑인 음악의 리듬을 자작하는 정도라면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 자신의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는 젊음이 아름답게 보였다. 물론 그의 머리 스타일은 동아리에 걸맞는 것이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 변준환 군

 

먹거리 장터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압권이었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미국 음식조차 생소했던 그 옛날의 대학 축제에 비하면, 소위 '제 3세계' 라고 불리워지는 국가 음식들도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끄는 모습에 놀랐다. 네팔, 터키,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음식들이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9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적 모토로 부르짖었던 '국제화'라는 단어가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내가 이스라엘 유학 당시에 즐겨 먹던 'Falafel' 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한곳에 집중되지 않은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상아탑. 다름을 수용하고 다름의 미학을 향유하는 대학의 축소판을 보는 것에 기분이 상쾌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barometer 가 대학이라고 말한다면 이번 대학축제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되새기게 해주었다.

 















 











 

각국 음식의 흥미진진함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나오니 나의 시선은 이미 학생들이 전시해놓은 사진에 꽃혔다. 필리핀 어린이들을 돕기위해 와플을 만들어 파는 학생들이 보였다. 단순히 먹고 즐기고 노는 것이 아닌, 남을 돕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판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는 송언의 군(연세대 기계공학과)은 “수익금을 가지고 필리핀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사주려고 합니다.”“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선배로서 너무 기특했고, 대견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기성세대들이 버릇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현재의 대학생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넓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을 돕는 일에 직접 발벗고 나선 대학생,그리고 그 대학생들이 만들어가는 대학 축제. 2010년 계절의 여왕이 나에게 준 좋은 선물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콘텐츠와 우리나라 대학생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 학생들

 

세상은 변한다. 모든 것이 다 변한다. 대학도 변하고 대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대학 축제도 변하고 있다. 단순히 세월의 차이를 느끼는 격세지감의 수준이 아닌,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에 감동했다. 학교를 졸업하신지 오래 된 분이라면 잠시 짬을 내어 대학 축제에 가볼 것을 권유해보는 5월의 어느 날이다.

- 이 칼럼은 5월 20일 교과부 블로그 idea factory 에 본인이 기고한 글입니다. -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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